광영동의 도촌(渡村)마을은 마을이름에서나루터를 연상케 한다. 1789년경에 광양현 옥곡면 광포촌(廣浦村)지역인 것으로 문헌상에 처음 기록되어 전하는데 여기서도 광포촌의 ‘포(浦)자가 강가나 바닷가를 뜻하고 있어 나루터와 연관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현재의 도촌마을을 생각하면 도촌선착장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마을유래도촌마을은 1780년 쯤 밀양박씨(密陽朴氏)가 처음 입촌했다고 전해오나 문헌으로 전해오는 기록에 의하면 이전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호도에 1600년경부터 사람이 살았으며
차동마을은 진상면 입암마을에서 진월면으로 통하는 고개를 넘어서면 바로 좌측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세종실록지리지 등 국가주요문헌에는 차동마을을 차의포소(車依浦所)라 기록되어 전하는데, 차의포(車依浦)라는 이름은 마을 뒷산 고개와 관련이 있으며, 1872년 제작된 광양현 지도에서 차동마을이 차의포(車依浦)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차동마을의 유래차동마을은 적어도 고려시대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그 당시 마을 연혁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약 570년 전 안동권씨가 처음 입촌
궁기마을은 태인동 삼봉산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남쪽에는 삼봉산에서 뻗어 내린 산등성이가 있으며, 그 산등성이 너머의 용지마을과 맞닿아 있다. 궁기(宮基)를 ‘궁터’(궁땅)라고도 하는데 이를 역사문헌으로 살피면 1840년에 편찬한 ‘호남도서도’에 대안도(大安島)가 궁장으로 표기되었고, 옥곡면 태인도 지역의 해태((海笞) 및 진포세(鎭浦稅)를 적은 『명례궁수세절목』이란 문헌에 태인도가 옛날 궁땅이었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전우치전설과 땅이름 이 마을 원주민들은 전우치가 궁(宮)을 짓고 살았으므로 궁터라는 땅이름이 생겼다고
옥곡 의암(衣岩)마을은 1789년경에는 옥곡면 신진촌(新津村)지역에 속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신진리(新津里), 금촌리(錦村里), 신기리(新基里) 일부지역과 함께 병합해 신금리(新錦里)에 속하게 됐다. 1987. 1. 1기준(광양군행정구역일람)에 의하면 광양군 옥곡면 신금리(법정리)에 속해 행정리상 신금5구가 되어 상의(上衣), 하의(下衣), 월앙(月仰)의 자연마을이 있었고, 현재는 광양시 옥곡면 신금리(법정리)에 속해 행정리상 의암(衣岩)이라 한다.■마을형성과 지명유래의암마을은 1687년경 진원박씨(珍
불로마을은 오늘날 광양시 행정의 중심지다. 이 마을에는 전라남도 광양지구 출장소 설치, 동광양시에서 광양시로 승격 등 대대적인 행정구역 변경에 따른 영향으로 시청사를 비롯한 각급 공공기관이 들어서 있다.특히 이 지역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옛 마을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져 찾아 볼 수 없으며, 아파트 등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불로(不老)∙행정(杏亭)∙세동(細洞) 마을로 구성본래 불로는 자연마을로 불로(不老)·행정(杏亭)·세동(細洞)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광양현 동면(東面) 골약리(骨若里)지역으로 추정되
옥룡계곡으로 올라가는 길목을 가다보면 하얀 건물의 예배당이 눈에 들어온다. 예배당 입구에 서 있는 표지석이 대방교회임을 알려주고 있는데, 사실 대방교회는 현재의 대방마을회관이 들어서 있는 마을 안쪽(용곡리 349번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부터 시작한 대방교회가 어느덧 110년의 세월을 넘기고 지금의 자리에서 대방마을의 이정표 역할을 해 주고 있다.■ 대방의 의미대방마을은 대방교회를 지나 대방교(大方橋)를 건너면서부터 시작된다. 대방교를 건너기 전 대방마을의 보호수와 대방마을을 지칭하는 표지석을 볼 수 있다.대방마을은 본래
봉강면 석사리 서석(西石)마을은 구석기시대 후기(BC 약 8000년) 유물이 산포되어 있는 마을로 그 역사를 추산하게 되면 선사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의 내용에 대해서는 기록으로 확인할 수 없으나 광양고을에서 구석기시대 유물이 확인된 것만으로도 광양 고을 역사에 있어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문헌상 기록으로 마을연혁을 살펴보면 1600년경 광양현 북면 며내리(旀內里) 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이후에는 며내면(旀內面)에 속했다. 1789년 경에는 며내면 석현촌(石峴村) 지역이었으며,
“종업원이 주인인 회사이니 만큼 새해에는 종업원 복리증진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또, 직원 모두가 지역출신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회사로 만들고, 회사의 경쟁력을 높여 보다 좋은 회사로 만들어 가족 친화적인 회사, 지역에 기여하는 회사로 만들겠습니다.”직원 모두가 회사의 주주로 구성된 주식회사 다원 하이텍의 이수남 사장의 새해 포부는 남다르다. 광양에 입주해 있는 수많은 기업 중 다원하이텍은 지역 최초의 종업원 지주회사다. 회사의 주인이 종업원인 최초의 회사인 셈이다. 포
2021년 신축년(辛丑年)은 육십간지 중 38번째 해로 ‘하얀 소의 해’이다. 십간 중 여덟 번째인 신(辛)이 색으로 보면 흰색으로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민족은 전통적으로 소를 가족으로 여기며 소중히 해왔으며, 특히 흰 소는 신성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신축년에는 흰 소의 신성한 기운을 받아 좋은 일만 일어나기를 바라며, 시민 새해소망을 들어본다. “사고 없는 안전한 한해 되길”“지난해에는 유난히 사고가 많이 발생했는데 올해에는 사고로부터 안전한 한해가 됐으면 좋겠어요.
산저(山底)마을은 본래 광양현 동면 우장리 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우장면에 속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912년 행정구역개편 이전에 광양군 우장면 산저리라 했고 행정구역 개편 후인 1917년에는 광양군 광양면 칠성리에 포함되기도 했다. 지금은 광양읍 우산리(牛山里)에 속하여 산저마을로 불리고 있다. ■ 휴식과 문화공간의 마을마을 이름을 산저(山底)로 부르게 된 것은 마을이름에서 암시하듯 마을 뒤쪽에 위치한 산인 우산(牛山)아래 삶터를 잡은 마을이란 의미를 담고 있어서다. 우장면은 우산 산자락에서부터 장내(藏
도움의 손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봉사의 원천…봉사하는 삶 아이들도 자연스레 받아들여평창강이 유유히 흐르는 강원도 평창 출신으로 지난 1991년 12월 포스코 광양제철소에 입사하면서 광양에 정착한 장상복(51) 과장과 부인 신은희(49)씨는 소문난 봉사자 부부다.광양제철소 제선부 원료공장에서 근무하는 장상복 과장은 부인과 함께 사내외 봉사단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광양시 금호동에 거주하는 장상복 과장의 봉사활동 시간은 6,017시간, 부인 신은희씨의 봉사활동 시간은 7,300시간에 달한다. 부부가 무려 1만3,317시
장애인시설 봉사로 시작해 도움 필요한 곳곳에 사랑의 손길 내밀어…가족 응원이 가장 큰 힘한 개인이 1만시간의 봉사활동 기록을 달성하는데는 얼마나 걸릴까? 하루 평균 4시간씩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활동을 했다고 가정하면, 1만시간의 봉사활동을 하는데는 무려 2,500일이 걸린다. 이는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봉사활동에 참여해도 6년이 넘게 걸린다. 그러기에 봉사활동 1만시간을 달성한다는 것은 결코 아무나 넘볼 수 없다. 그런데, 광양에는 이러한 기록을 넘어서는 사람이 있다.광양시 광양읍에 거주하는 김융하씨의 자원
5개 봉사단체 대표로 활동…전문적인 봉사 위해 도배강습 받고 도배재능봉사단 발족시켜 포스코 광양제철소 도배재능봉사단을 이끌고 있는 최광석 단장은 지역내 봉사단체에는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그는 도배재능봉사단을 비롯해 지역내 5개 자원봉사단체의 회장이나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바쁜 일상 속에서도 6,778시간의 자원봉사 기록을 갖고 있는 최 단장은 부인 권치숙씨가 4,011시간, 자녀들이 1,034시간 등 가족 합계 1만1,823시간의 자원봉사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봉사 자체가 일상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활동 통해 가족애 다지고, 활동 마치면 행복하고 마음 따뜻해져 광양제철소 제강부 제2제강공장에 근무하는 김정윤 과장의 가족들은 ‘봉사의 달인’으로 불린다.전북 군산 출신으로 지난 1991년 포스코에 입사한 김 과장은 본인과 부인, 자녀들의 봉사활동 시간이 1만5,518시간에 달한다.광양지역 6개 사회복지시설과 연계해 꾸준한 봉사활동에 참여해 오고 있는 김 과장은 본인의 봉사시간이 6,763시간, 부인 채정희씨의 봉사시간이 6,822시간, 두 자녀의 봉사시간이 1,933시
실제 폐갱도 사용승낙 못얻어 사업효과 반감… 광양와인동굴 지역 특산품과 연계 미흡해 아쉬워폐광이나 폐터널의 재활용은 역사성과 지역적 특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광양에는 폐터널을 이용한 와인동굴과 폐광이 된 금광이 있다. 폐철도의 터널을 재활용한 와인동굴은 민간사업자가 개발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고, 폐광산은 점동금광관광명소화사업으로 광양시가 개발했다. 그렇다면 광양에 있는 폐터널과 폐광산의 관광자원화는 어떤 성과를 거두고 있는가?광양금광의 폐광이용 가능성점동마을 금광 관광명소화 사업과 관련, 광양시는 지난 20
금광석 채굴 과정서 발견된 천연동굴, 상하부 갱도 연결‘금광’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말이 떠오르는가? 땅 속에서 보물을 캐내는 일은 일확천금의 꿈과 맞닿아 있다. 이러한 꿈은 대개가 허황된 것이기도 하지만, 더러는 인생역전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오늘 날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하는 미국의 초기 서부개척사도 이러한 일확천금을 쫓는 인간의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노다지를 캐는 꿈은 누구에게나 달콤하다.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나온 김유정의 소설 ‘금 캐는 콩밭’은 이러한 인간욕망의 허황함을 해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평범
태백 석탄박물관, 석탄 관련 유물과 채탄과정 등 전시삼척 환선굴과 대금굴, 대자연이 빚어낸 지하세계 체험관광자원으로, 혹은 지역특산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공간으로 활용되는 동굴이나 터널은 사람이 만든 것이다. 터널과 달리 동굴의 경우 천연동굴도 있지만, 폐광 등을 활용해 역사나 교육의 공간으로 재탄생한 경우가 많다. 강원도 태백과 삼척, 정선 등은 우리나라의 유일한 부존 에너지 자원인 석탄광이 산재된 곳이었다. 19공탄으로 불리는 연탄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추억의 연료가 되었지만, 추운 겨울을 훈훈하게 만들어 주는 생활연료였다. 그
청도 와인터널, 감 와인 숙성 저장고로 활용무주 머루와인동굴, 머루와인 판매장 역할도 광양시가 관광자원화하고 있는 동굴은 폐광과 폐터널이다. 천연동굴과 달리 폐광이나 폐터널의 활용은 대부분 지역 특산품과 연계된다.터널은 기본적으로 햇볕이 차단된 지하세계다. 따라서 외부 기후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일정온도가 유지되는 이러한 터널의 특성은 여름철의 피서나 겨울철의 피한에도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농수산물의 발효나 숙성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해 준다.폐터널을 개발해 전국적인 명성을 얻는
인간은 잘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환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낯선 곳으로의 떠남을 항상 갈구하고, 이는 여행이나 관광이라는 하나의 문화가 된다. 일상 생활공간과 다른 장소는 모든 사람들이 한번 가 보고 싶고, 경험해 보고 싶은 생각을 갖게 만든다. 이러한 공간은 천연적인 곳일 수도 있고, 인위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낯선 도시나 지역을 방문하게 되면 그 도시나 지역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장소를 찾는다. 그런데, 이러한 공간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적인 공간이 아닌 땅속이나 해저라면 더욱 특별한
6차산업이 농가 경제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6차산업이 내포하고 있는 부가가치 창출 과정에 있다. 원료가 되는 생물이나 자원이 다양한 처리과정을 거치게 되면 부가가치가 창출된다는 개념인 것이다.상품의 가치가 다소 약한 하품 농산물의 경우 수요가 없어 거의 버려지거나 헐값에 판매 될 수밖에 없지만 가공수요가 생기면 기존의 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광양의 대봉감은 당도가 높고 크기와 품질이 우수한데 대봉감이 하품일 경우 그대로 팔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감말랭이로 만들어 팔면 별도의 소득을 창출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