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시 광양읍 숲샘길 29에 소재한 광양서초등학교는 여순사건과 관련한 중요한 역사의 공간이다.여수·순천10·19사건의 봉기군을 진압하기 위해 진주한 토벌군이 주로 이곳에 본부를 두고 백운산 지역에서 토벌 작전을 수행했다. 15연대 2대대 7중대원 허모씨(당시 21세)는 광양서국민학교에 주둔하면서 백운산 토벌작전에 참여했다.허씨는 광양에서 “직접 봉기군 가담 혐의자를 잡아서 총살한 적이 있다”며, “총살 시 조사나 재판과정은 없었고, 연대장 지시를 받아 실행했다”고 진술했다. 1949년 9월 16일, 빨치산의 광양읍 습격 당시 광양서
광양시 광양읍 매천로 829번지에 소재한 광양역사문화관은 일제강점기부터 6・25전쟁 시기 광양군청으로 사용됐던 건물이다.이곳은 조선시대에 6방이 근무하던 작청(질청)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인 1943년에 광양군청 건물로 신축됐다. 1981년에 광양군청이 칠성리로 옮겨가면서 광양읍사무소로 이용됐으며, 2010년에는 광양읍사무소도 칠성리로 옮겨갔고, 현재는 광양역사문화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2009년 10월 12일자로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444호로 지정됐다. 여수・순천10・19사건이 일어나고 광양군청 옆 광양읍사무소 건물을 민간에
광양 서천을 따라 성불계곡을 향해 오르다 보면 비봉산이 나오는데 이 비봉산 기슭 가장 안쪽에 상봉마을이 있다. 서천을 끼고 있어 자연경관과 어울리면서도 봉강면사무소, 봉강우체국, 봉강초등학교가 소재한 마을이기도 하다.■상봉과 봉계 유래상봉마을은 본래 광양현 북면(北面) 며내리(㫆內里)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광양현 며내면에 속했다. 1789년경 호구총수에는 며내면 봉서촌(鳳棲村)지역이었으며 1872년 광양현 지도에는 며내면 상봉리(上鳳里)라 하여 마을이름이 문헌상 처음으로 기록되어 전해진다.상봉마을은 당저(堂底)
계곡마을은 광양읍 우산리에 속한 마을로 위치상으로는 옥룡 은죽마을과 맞닿아 있다. 광양 동천이 마을 앞을 지나고 있어 계곡교를 통해 마을로 들어 설 수 있다. 마을 안쪽에는 1943년 준공된 계곡저수지가 있다.■마을이름 및 지명 유래계곡마을은 본래 광양현 북면(北面) 옥룡리(玉龍里)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옥룡면(玉龍面)에 속했다. 1789년 호구총수에는 옥룡면 죽산촌(竹山村)지역으로 추정된다.왜정시대 행정구역 개편이전인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는 광양군 옥룡면 계곡리(桂谷里)라 하여 문헌상 마을이름이 처
석곡마을은 예부터 풍요롭고 살기 좋은 곳으로 전해오는 광양12실(室) 중의 하나로 백운산에서 흐르는 동천을 사이에 두고 상평마을을 마주하고 있다. 옥룡면사무소와 옥룡우체국이 가깝고 동천 위를 지나는 석곡교를 지나면 마을이 나온다. 석곡교 앞에는 마을을 알리는 이정표와 마을을 설명하는 조형물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석실(石室)과 석실(席室)석곡마을은 본래 광양현 북면(北面) 옥룡리(玉龍里)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이후에는 옥룡면에 속했다. 1789년경 호구총수에는 옥룡면 석곡촌(石谷村)이라 했다.마을의 정확한 마을형성 시기
신기마을은 옥곡5일장과 옥곡버스정류소가 자리하고 있는 옥곡삼거리 일대의 마을로 정토천이 흐르는 신금교에서부터 진상면 경계에 있는 밤골산까지 이른다. 행정리상 신금리가 되며 자연마을인 대곡, 세곡, 산요가 있다.■대곡·세곡·산요 유래신기마을은 본래 광양현 동면(東面) 옥곡리(玉谷里)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옥곡면 지역이었으며, 1789년경 호구총수에는 옥곡면 신흥촌(新興村)지역에 속한 것으로 추정된다.신기마을은 신금뜰에서 묵백천 건너 동쪽에 위치한 대곡(大谷)에서부터 옥곡5일시장이 있는 ‘세곡(細谷)’ 그리고 옥곡
하봉마을은 백운산 중봉의 하나로 꼽히는 비봉산 언저리에 자리잡은 마을로 봉강면사무소 소재지인 상봉마을과 맞닿아 있다. 마을 앞쪽에 백운저수지가 있어 심심한 농촌 풍경에 운치를 더해 주며, 마을 안쪽은 당저마을과도 인접해 있다. 당저마을과의 구분은 당저교를 기점으로 한다.■마을의 형성 및 유래하봉마을은 본래 광양현 북면(北面) 며내리(㫆內里)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이후에는 며내면(㫆內面)에 속했고 1872년 광양현 지도에는 며내면 하봉리(下鳳里)로 표시됐다. 조선시대에 이 지역을 며내면이라고 했는데 마을이 내우산 안쪽에 있
개룡마을은 계족산 언저리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로 봉강면 마시마을을 지나 조령마을 가기 전 좌측으로 들어가는 길에 있다.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개룡교를 건너야 하는데, 현재 개룡교 입구에는 전원 주택단지인 해랑마을이 조성돼 있다.■개룡마을 유래개룡마을은 본래 광양현 북면(北面) 며내리(㫆內里)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며내면에 속했다. 1872년 광양현 지도에는 이 지역이 며내면 개룡리(開龍里)와 본사리(本寺里)에 속해 문헌상 처음으로 마을이름이 나타났다.개룡마을은 1750년경 전주이씨(全州李氏)가 처음 입촌해
이경모 선생 기념관, 형태는 중요하지 않아… 신속한 건립이 중요 세계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수 있는 곳이 있다. 제주 세계자동차&피아노박물관은 국내 최초 개인소장 자동차 박물관으로 세계 클래식 자동차 100여대와 300년 역사의 선율이 울리는 피아노 300대를 한곳에 진열하고 있다.■세계자동차박물관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자동차는 이제 단순한 운송 수단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의 상징이자 인류의 꿈과 미래가 되고 있다. 제주 세계자동차&피아노박물관에는 각 시대를 대표하는 전 세계에서 수집된 100여 대의 자동차가 있는데 박물관의
각비마을은 동천과 서천 사이에 형성된 광양읍 삼각 퇴적지에서 서천을 따라 연결되는 계곡평지 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이다. 광양읍 우두마을 앞에 마련된 지석교를 건너 지곡마을삼거리 좌측으로 500m정도 가면 마을이 나온다. 각비마을과 지곡마을이 통하는 세갈림 길에는 큰 바위가 있는데 이러한 이유로 이쪽 마을 앞 도로를 ‘왕바위길’이라 한다.■마을유래각비마을은 지석묘 44기가 대량으로 분포되어 있어 청동기시대에 이미 이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당시 내역은 알 수 없고 문헌상 기록에 의한 마을 연혁을 살피면
작가가 마지막 혼과 열정 쏟아부어 완성된 갤러리, 제주의 관광 명소로 우뚝 자리잡아이경모 선생을 주제로 한 기획취재를 준비하면서 사진에 온 열정을 쏟은 또 한명의 사진작가를 알게 됐다. 이 작가는 필름을 사기 위해 굶주린 배를 부여잡으며 막노동도 마다하지 않았고, 루게릭병으로 온몸의 근육이 굳어가는 순간까지도 카메라를 놓지 못했다. 제주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는 그가 오롯이 사랑한 제주의 숨결이 그대로 담겨있다.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로 137번지에 자리한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은 폐교였던 삼달분교를 개
마산마을은 순천 구상천과 광양 서천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 광양시농업기술센터를 정면에 두고 있다. 마을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서천을 가로지르는 마산교를 건너면 된다.■마을형성 및 지명유래마산마을은 본래 광양현 서면(西面) 칠성리(七星里) 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칠성면(七星面)에 속했다.1872년 광양현 지도에는 칠성면 마산리(馬山里)라 하여 문헌상 마을이름이 처음으로 나타났다. 왜정시대 행정구역 개편 이후인 1917년 조선면리동일람에는 광양현 구산리(龜山里)에 속했다.마산마을은 구산리에서 으뜸 되는
일강 김철선생 기념관 건립 이어 항일 역사의 산실 상해임시정부 청사 국내 최초로 재현 ■김철 기념관전남 함평군 신광면에는 호남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인 일강김철(一江金澈) 선생의 애국정신과 호국충절을 계승하기 위한 기념관이 있다. 이 기념관은 1만 770㎡의 부지 내에 김철 선생의 사당, 수양관, 기념관, 상해임시정부청사 등으로 구성돼 있다.김철 기념관을 방문하면 무궁화꽃받침 위에서 오른손을 들어 방문하는 이들을 반기는 김철선생의 동상이 눈에 띈다. 이곳에서는 문화해설사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관람할 수 있다.김철선생 기념관이 이곳에
고길마을은 구봉산을 뒷배경삼고 광양항 컨테이너부두를 정면에 두고 있는 마을로 황금동 일원의 황금산업단지 오른편에 위치해 있다. 마을 진입부에 광양항 서측배후도로가 통과하고 있다.■마을형성 및 지명유래고길마을은 본래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되어 전하는 고지포(古之浦)지역으로 추정된다. 1600년경에는 광양현 동면(東面) 골약리(骨若里) 지역이었으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골약면(骨若面)지역에 속했다.고길마을의 형성은 약 470년 전 밀양박씨 박대문(朴大文)이란 사람이 처음 이곳에 정착하면서 이뤄졌다. 현재 마을은 밀양박씨 집성촌을 이
개인 박물관 중 가장 많은 소장품 보유 한국카메라박물관, 시대별로 카메라 변천사 볼 수 있어이경모 선생은 여순사건과 6·25 한국전쟁 등 대한민국의 아픈 격동기의 순간들을 현장에서 직접 촬영하며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큰 업적을 남겼다. 이경모 선생의 고향인 광양에 그가 남긴 카메라와 사진을 전시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마련될 수 있기를 바란다. ■ 카메라 렌즈를 닮은 건물디자인개인 카메라박물관 중 세계에서 제일 많은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다는 과천 한국카메라박물관을 찾았다. 한국카메라박물관은 과천 서울대
오류마을은 옥곡 새똠에서 골약동 재동으로 넘어가는 고개길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 우측에 위치한 산고개를 넘으면 골약동 군재마을이 나오며,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에 마을 공동우물이 있다.■오류마을 유래오류마을은 본래 광양현 동면(東面) 옥곡리(玉谷里)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옥곡면이었으며, 1789년경 호구총수에는 광양현 사점촌(蒒店村)지역에 속했던 것으로 추정된다.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 왜정시대 행정구역 개편이전에는 옥곡면 오류리(五柳里)라 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상선리(上仙里)·하선리(下仙
카메라 100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동신대 이경모 카메라박물관지난해 전남도립미술관에서는 대한민국 기록 사진계의 거목, 이경모 선생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조망하는 전시회가 개최됐다. 미술관 개관 이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사진전이며, 국공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최초의 이경모 개인전이었다.전남도립미술관에 이경모 사진전이 개최될 수 있었던 것은 이경모 선생이 여순사건과 6·25 한국전쟁 등 대한민국의 아픈 격동기의 순간들을 현장에서 직접 촬영하며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사진으로 기록한 큰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다.최근 여순사건과 관련한 특별법
중양마을은 중마동에서 광양읍으로 넘어가는 길에 있는 고삽치(高揷峙) 고개 언저리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 바로 앞쪽에 동광양 톨게이트가 위치하고 있다. 마을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옛 골약역이 있는 국도를 이용하면 된다.■중양마을 형성 및 유래중양마을은 중군지역에서 으뜸이 되는 마을로 약 270년 전에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처음 입촌해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이 마을은 고려 또는 그 이전에 이 지역의 지방행정 단위였던 아마대부곡(阿磨代部曲)이라는 특수 지명이 있어 고려시대부터 이 마을에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
수평마을은 옥곡 대죽마을과 백양마을을 잇는 대치길을 지나 수평저수지 위쪽에 자리한 마을이다. 마을 서북쪽에 옥룡면 용곡리로 가는 땅재 고개가 있으며, 북쪽에는 진상 웅동 곰골로 가는 고개가 위치한다. 옥곡천과 만나는 수평천이 이 마을에서부터 시작한다.■마을유래수평마을은 본래 광양현 동면(東面) 옥곡리(玉谷里)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옥곡면에 속했다. 1789년경 호구총수에는 광양현 옥곡면 수평촌(水平村)지역이었다.마을의 시작은 1580년경 김해김씨(金海金氏)가 처음 이곳에 들어와 정착하면서라고 전한다. 입촌 사연
황방마을은 구봉산 아래 황금지구 일원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로 고길마을과 광양황금 일반산업단지 사이에 위치한다. 바로 인근에 황금지구 공동주택단지가 들어서 있고, 지난해 골목 벽면을 활용한 벽화 그리기가 눈에 띈다.■마을유래황방마을은 본래 광양현 동면(東面) 골약리(骨若里)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골약면(骨若面)지역에 속했다. 1789년경 호구총수에는 광양현 칠골약면(七骨若面) 황방촌(黃方村)지역이었고,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 행정구역 개편 이전에는 골약면 염포리(塩浦里)・황방리(黃方里)라 하여 2개의 행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