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暴炎)이 연일 지속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의 끝자락에 있는 필자는 한 여름 땡볕에도 부모님께서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성장했다. 유례없는 장마나 폭우가 쏟아진 뒤에는 농사일이 산더미처럼 쌓이기 마련이다. 그러면 삼복더위에도 부모님은 논밭에서 일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던 것 같다. 그래서 필자도 이렇게 사는 삶이 근면이라고 생각했고 또 이런 삶을 지향하며 살기도 했다. 옛말에도 “일근무난사(一勤無難事)”라는 말이 있는 걸 보면 선대(先代)들도 근면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요즈음 같은 폭염에 무리하게
國島(국도) 봉래 양사언 화려한 누각은 자주 빛을 쏟아 내며 구름길을 따라서 신선들이 내려오고 산들은 세상이 싫어 바다가로 날아드네. 金屋樓臺拂紫煙 濯龍雲路下群仙 김옥루대불자연 탁룡운로하군선 靑山亦厭人間世 飛入滄溟萬里天 청산역염인간세 비입창명만리천이국의 정취라고 한다. 해운대 앞바다에서 보면 눈썹같이 보인 대마도가 남의 땅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다. 가까운 나라이지만, 막상 이국에 가면 자연과 공기맛까지 새롭게 느껴졌을 것이다. 시인도 아마 그랬던 모양이다. 자연 뿐이겠는가.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낯선 사람들을 만
2026년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20%에 이른다는 통계를 보았다. 지금의 출산율이 지속되는 것을 전제한 것이지만 우리나라는 고령사회를 넘어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실감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접하면 심각하다는 생각이 든다. 초고령 사회의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는 셈이다. OECD 국가 중 고령사회 진입 속도가 제일 빠르다는 통계도 여러 면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소이다. 일말의 불안감마저 스멀거린다. 알려진 바와 같이 고령사회는 출산율 저하와도 밀접하게 연동되
大人說(대인설) 토정 이지함 귀함으로 벼슬 않는 더 귀함은 없는 것 부유하여 욕심 않는 더 부유는 없는 것 강함은 다투지 않는 것 현명한 것 그것이. 貴莫貴於不爵 富莫富於不欲 귀막귀어불작 부막부어불욕 强莫强於不爭 靈莫靈於不知 강막강어불쟁 령막령어불지서울 오천에 사는 이씨는 대대로 부자였는데, 증손 현손에 이르러 가산을 탕진하고 홍씨에게 집을 팔았다. 대청 기둥 하나가 기울어져 무너지자 홍씨가 수리하던 중 은자 삼천 냥이 나왔다. 이씨의 조상이 간직하였던 돈이었다. 홍씨가 이씨를 불러 이를 주려고 하자, 이씨가 사양했다. 이렇게 홍씨
2003년 7월 23일, 광양제일신문이라는 제호로 창간호를 내며 광양시민과 인연을 맺은 광양만신문이 창간 20주년을 맞았다. 창간 20년을 맞는 2023년 7월은 극한의 호우 가운데 서 있다. 연일 산사태로 인한 인명피해 소식이 뉴스 화면을 장식하고, 인재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지하차도의 참사가 가슴 아프게 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을 상시적으로 겪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따라서 비로 인한 피해를 마냥 천재지변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게 됐다. 철저한 준비와 대비만이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늘 교훈은 사후에 떠올
고정선(시인, 전라남도 지정 명예 예술인) 도선(道詵國師)의 눈빛과신재(新齋 崔山斗)의 지성과매천(梅泉 黃玹)의 소리를 품은 광양만 신문남녘 바다에 울려온 정필(正筆) 20년무적(霧笛)의 소리를 다시 듣는다누구나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바른 귀로 바른 소리를 들을 수 있는바른 입으로 바른말을 할 수 있는그 피안(彼岸)을 향한 힘찬 순항(順航)을우리는 보고 있었다광양만 시대의 첨병(尖兵)이 되어무한 경쟁 속에서도 가슴을 열고차고 투명한 이성의 힘으로잉걸불의 곁을 지킨민심의 가운데에 서서바른길이라면 서슴없이 가슴 내밀어어울려 함께 나가며
人生(인생) 하서 김인후 어디로 좇아와서 어디로 향하는지 오고감 일정하게 자취가 없어서라 공연한 백년 계획에 인생만이 아득해. 來從何處來 去向何處去 래종하처래 거향하처거 去來無定蹤 悠悠百年計 거래무정종 유유백년계수많은 선현들은 인생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물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철학공부를 했고 인생 공부에 전념했다. 그렇지만 정답을 얻지 못했다. 시작점과 종착점이 어디있지 모르기 때문이다. 성인군자나 진시황을 비롯해서 천하를 호령했던 자나 사서인에 이르기까지 어느 누구도 정답을 찾지 못한 채 봇짐을 싸들고 갔다.
평소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고 좋아한다. 선대(先代)의 지혜가 담겨있는 말과 뜻을 잘 새겨두면 21세기 첨단사회를 사는 오늘의 현대인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대목들이 적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비슷한 말로 법고창신(法故創新)이라는 말도 있다. 선대의 슬기가 집약적으로 담겨있는 경우로 고사성어 및 사자성어가 더 실감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물론 우리의 말과 글에 담겨있는 뜻도 소중하고 웅숭깊지만 간혹 사자성어가 더 가슴에 와 닿을 때가 종종 있다는 얘기다. 담겨진 뜻도 비교적 명료하게 전달될 뿐 아니라 기억에 오랫동
德山卜居(덕산복거) 남명 조식 하늘이 가까워서 봄 산에 집을 지었다 빈손으로 왔으니 무얼 먹고 살 것인가 은하가 십리나 되니 배불리고 남겠지. 春山底處无芳草 只愛天王近帝居 춘산저처무방초 지애천왕근제거 白手歸來何物食 銀河十里喫猶餘 백수귀래하물식 은하십리끽유여하늘을 지붕 삼고 이리저리 떠돌다가 어느 지점에 정착하여 영원한 자기 안식처를 잡는 경우가 많다. 나이들수록 더하리. 생명이 다할 때까지 살겠다는 자기 의지다. 낯선 곳도 정이 들고, 이웃 사촌이라고 했던가 모든 이웃이 사해동포다. 이사를 오면 떡을 해서 이웃에 돌리는 아름다운 풍
義州(의주) 퇴계 이황 구름기운 쓸쓸한데 지는 해 낮아지고 산성 성문 닫히기를 앉아서 기다리니 뿔피리 은은한 소리 서쪽으로 지나가. 龍淵雲氣晩凄凄 鶻岫磨空白日低 용연운기만처처 골수마공백일저 坐待山城門欲閉 角聲吹度大江西 좌대산성문욕폐 각성취도대강서의주는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도시다. 중국으로 사신으로 갈 때는 이곳을 거쳐서 압록강을 건넜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국경지방인 이곳까지 피신을 왔다. 이곳에서 얼마 가지 않으면 위화도에 있어 우리의 역사의 한 장도 알려준다. 최근에 압록강에 더 가까운 국경 부근에 신의주가 생겨 중국 단
2026년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20%에 이른다는 통계를 보았다. 우리 사회가 고령사회를 넘어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구체적으로 실감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접하면 심각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우리 사회는 초고령 사회의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는 셈이다. OECD 국가 중 고령사회 진입 속도가 제일 빠르다는 통계도 여러 면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소이다. 일말의 불안감마저 스멀거린다. 알려진 바와 같이 고령사회는 출산율 저하와도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다. 미래를
題路傍松(제로방송) 충암 김정 바람 소리 불어가니 그림자가 성글구나 바람 소리 곧은 뿌리 샘 아래 뻗어가니 차가운 눈과 서리도 높은 품격 털지 못해. 海風吹去悲聲壯 山月高來瘦影疎 해풍취거비성장 산월고래수영소 賴有直根泉下到 雪霜標格未全除 뇌유직근천하도 설상표격미전제바람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을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태풍을 몰고 오고, 모진 비바람을 몰고 오기 때문이다. 서 있는 나무가 쓰러지고 집이 무너지는 상황까지도 연상하기 때문이겠다. 바람이 창문을 두들기면 도둑이라도 들어 올 느낌을 받는다. 나들이도 할 수 없고, 꼼짝
勸學者(권학자) 회재 이언적 학문의 바른 뜻은 성인을 배움이요 성인된 바른 공은 인륜에 근본이라 진실로 표준 되오니 수신제가 합시다. 爲學應須學聖人 聖功元是本彛倫 위학응수학성인 성공원시본이륜 數編格語眞繩墨 熟講精通可律身 수편격어진승묵 숙강정통가율신성리학은 중국 남송의 주희가 집대성한 유학의 한 파로 이기설과 심성론에 입각한 격물치지를 중시하는 실천 도덕과 인격과 학문의 성취를 역설하였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기에 들어와 조선의 통치 이념이 되었고, 길재, 정도전, 권근, 김종직에 이어 이이, 이황에 이르러 조선 성리학이 체계화되었다
‘남도’라는 말을 들으면 고향의 푸근함이 느껴져 정겹다. ‘남도작가’라는 말도 떠올려 본다. 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입장에서 필자는 ‘남도작가’라는 말을 글에서 종종 사용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남도작가’라는 말에 대해 다소 신중할 필요가 있어 스스로 제한된 의미로 사용 한다. ‘남도작가’라는 용어는 학술적으로 엄밀하게 정제되고 합의된 용어는 아니다. 더욱이 ‘남도’라는 특정지역을 염두에 두거나 지역성을 배타적으로 적용한 개념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남도작가’라는 범주에는 ‘남도’에서 출생해서 어린 시절 혹은 학창시절을 남도에서
宿山寺(숙산사) 기재 신광한 고요한 산사에서 옛 글을 읽었었고 늙어서 우연하게 옛 절을 찾았는데 지금도 부처님 앞에 등잔불이 켜있네. 少年常愛山家靜 多在禪窓讀古經 소년상애산가정 다재선창독고경 白首偶然重到此 佛前依舊一燈靑 백수우연중도차 불전의구일등청사람에겐 귀소성(歸巢性)이 있다. 한국민에게는 그 진함이 더 한 것 같다. 한 번 있었던 곳을 다시 찾으려 하고, 한 번 갔던 길로 가려고 한다. 타향에 있으면서도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 친구를 만나면 등이라도 칠 양으로 반가움을 금치 못한다. 어쩔 수 없는 귀소성의 현상이다. 그래서 수
途中[2](도중) 지봉 이수광 풍경은 시속에서 그림처럼 읊어지며 개울은 물속에서 악보처럼 연주하고 산마루 넘어가는 해 멀리에서 부서져. 景入詩中畵 泉鳴譜外琴 경입시중화 천명보외금 路長行不盡 西日破遙岑 노장행부진 서일파요잠개울물 주절거리는 소리가 악보 없는 가락이요, 소나무가 한 소리 창을 해대면 어울리는 리듬인 것을. 바람을 품속에 안고 댓잎이 한 바탕 울어대면 멋진 서편제 한 마당이요, 버들가지가 덩실덩실 춤추게 되면 멋진 자진모리 풍류가 아니던가. 선인들은 자연을 두고 그런 생각을 했고, 자연이 그와 같은 한 마당을 연출해 낸다
‘광양의 작가’ 이균영(1951-1996)은 1977년 신춘문예에 「바람과 도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주요 작품집으로 『바람과 도시』(1985), 『멀리 있는 빛』(1986)이 있으며, 장편소설로 『노자와 장자의 나라』(1995), 『떠도는 것들의 영원』(2001)이 있다. 1984년 중편 「어두운 기억의 저편」으로 을 수상하는 등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다가 1996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광양사람이면 두루 알고 있는 이균영 작가의 약력이다, 그의 유고집(遺稿集) 『나뭇잎들은 그리운 불빛을 만든다
途中[1](도중) 지봉 이수광 강둑의 버드나무 사람보고 춤을 추며 숲 속의 꾀꼬리는 나그네와 노래하고 산 모습 산뜻 하구나 풀잎들이 돋는다. 岸柳迎人舞 林鶯和客吟 안류영인무 임앵화객음 雨晴山活態 風暖草生心 우청산활태 풍난초생심자연은 시심 덩어리 한 아름씩을 안고 있다. 시어가 쑥쑥 솟아나오기도 하고, 시제가 움칠움칠 머리를 내밀기도 한다. 오른 쪽으로 비틀면 갑순이고, 왼쪽으로 돌리면 갑돌이 된다나. 행여나 다칠세라 시지에 곱게 싸서 담기도 하고, 행여나 튕겨나갈새라 시통에 깊숙이 담기도 한다. 길을 걸으며 고개 내민 시심을 어찌
以烏几遣容齋(이오궤견용재) 읍취헌 박은 퇴락한 서재이나 쓸데없는 물건 없고 평생에 수많은 책 성현님들 모습에서 저녁에 소슬 바람에 새소리가 여유롭네. 容齋寥落無長物 唯有平生萬卷書 용재요락무장물 유유평생만권서 獨倚烏皮對聖賢 晩風晴日鳥聲餘 독의오피대성현 만풍청일조성여오궤(烏几)는 검은 양가죽으로 꾸민 안석을 뜻한다. 옛날 사대부들이 안방에 두고 앉아 있을 때 몸을 기대는 데 쓰는 안석(案席)의 한 종류다. 안석 또한 앉아서 몸을 뒤로 기대는 데 사용하는 방석의 일종이었다. 모두 방에서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도구다. 선현들은 최소한 방
포스코의 정비자회사 설립이 한달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이를 둘러싼 지역사회 반발이 포스코 측의 소통을 통한 설득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이달 중 성과도출을 공언했던 상생협력 T/F는 회의 일정도 잡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지역과 기업의 갈등 장기화는 양측 모두에게 상처만 남길 뿐이다. 포스코 측은 정비자회사 설립에 따른 지역 소상공인들의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지역사회에서는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이는 포항지역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소식이다. 지역사회는 구두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