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라는 말을 들으면 고향의 푸근함이 느껴져 정겹다. ‘남도작가’라는 말도 떠올려 본다. 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입장에서 필자는 ‘남도작가’라는 말을 글에서 종종 사용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남도작가’라는 말에 대해 다소 신중할 필요가 있어 스스로 제한된 의미로 사용 한다. ‘남도작가’라는 용어는 학술적으로 엄밀하게 정제되고 합의된 용어는 아니다. 더욱이 ‘남도’라는 특정지역을 염두에 두거나 지역성을 배타적으로 적용한 개념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남도작가’라는 범주에는 ‘남도’에서 출생해서 어린 시절 혹은 학창시절을 남도에서
宿山寺(숙산사) 기재 신광한 고요한 산사에서 옛 글을 읽었었고 늙어서 우연하게 옛 절을 찾았는데 지금도 부처님 앞에 등잔불이 켜있네. 少年常愛山家靜 多在禪窓讀古經 소년상애산가정 다재선창독고경 白首偶然重到此 佛前依舊一燈靑 백수우연중도차 불전의구일등청사람에겐 귀소성(歸巢性)이 있다. 한국민에게는 그 진함이 더 한 것 같다. 한 번 있었던 곳을 다시 찾으려 하고, 한 번 갔던 길로 가려고 한다. 타향에 있으면서도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 친구를 만나면 등이라도 칠 양으로 반가움을 금치 못한다. 어쩔 수 없는 귀소성의 현상이다. 그래서 수
途中[2](도중) 지봉 이수광 풍경은 시속에서 그림처럼 읊어지며 개울은 물속에서 악보처럼 연주하고 산마루 넘어가는 해 멀리에서 부서져. 景入詩中畵 泉鳴譜外琴 경입시중화 천명보외금 路長行不盡 西日破遙岑 노장행부진 서일파요잠개울물 주절거리는 소리가 악보 없는 가락이요, 소나무가 한 소리 창을 해대면 어울리는 리듬인 것을. 바람을 품속에 안고 댓잎이 한 바탕 울어대면 멋진 서편제 한 마당이요, 버들가지가 덩실덩실 춤추게 되면 멋진 자진모리 풍류가 아니던가. 선인들은 자연을 두고 그런 생각을 했고, 자연이 그와 같은 한 마당을 연출해 낸다
‘광양의 작가’ 이균영(1951-1996)은 1977년 신춘문예에 「바람과 도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주요 작품집으로 『바람과 도시』(1985), 『멀리 있는 빛』(1986)이 있으며, 장편소설로 『노자와 장자의 나라』(1995), 『떠도는 것들의 영원』(2001)이 있다. 1984년 중편 「어두운 기억의 저편」으로 을 수상하는 등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다가 1996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광양사람이면 두루 알고 있는 이균영 작가의 약력이다, 그의 유고집(遺稿集) 『나뭇잎들은 그리운 불빛을 만든다
途中[1](도중) 지봉 이수광 강둑의 버드나무 사람보고 춤을 추며 숲 속의 꾀꼬리는 나그네와 노래하고 산 모습 산뜻 하구나 풀잎들이 돋는다. 岸柳迎人舞 林鶯和客吟 안류영인무 임앵화객음 雨晴山活態 風暖草生心 우청산활태 풍난초생심자연은 시심 덩어리 한 아름씩을 안고 있다. 시어가 쑥쑥 솟아나오기도 하고, 시제가 움칠움칠 머리를 내밀기도 한다. 오른 쪽으로 비틀면 갑순이고, 왼쪽으로 돌리면 갑돌이 된다나. 행여나 다칠세라 시지에 곱게 싸서 담기도 하고, 행여나 튕겨나갈새라 시통에 깊숙이 담기도 한다. 길을 걸으며 고개 내민 시심을 어찌
以烏几遣容齋(이오궤견용재) 읍취헌 박은 퇴락한 서재이나 쓸데없는 물건 없고 평생에 수많은 책 성현님들 모습에서 저녁에 소슬 바람에 새소리가 여유롭네. 容齋寥落無長物 唯有平生萬卷書 용재요락무장물 유유평생만권서 獨倚烏皮對聖賢 晩風晴日鳥聲餘 독의오피대성현 만풍청일조성여오궤(烏几)는 검은 양가죽으로 꾸민 안석을 뜻한다. 옛날 사대부들이 안방에 두고 앉아 있을 때 몸을 기대는 데 쓰는 안석(案席)의 한 종류다. 안석 또한 앉아서 몸을 뒤로 기대는 데 사용하는 방석의 일종이었다. 모두 방에서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도구다. 선현들은 최소한 방
포스코의 정비자회사 설립이 한달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이를 둘러싼 지역사회 반발이 포스코 측의 소통을 통한 설득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이달 중 성과도출을 공언했던 상생협력 T/F는 회의 일정도 잡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지역과 기업의 갈등 장기화는 양측 모두에게 상처만 남길 뿐이다. 포스코 측은 정비자회사 설립에 따른 지역 소상공인들의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지역사회에서는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이는 포항지역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소식이다. 지역사회는 구두약
세상의 변화가 빠름을 실감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운위(云謂)하는 세태를 감안한다면 그럴만도 하다. 시공간의 한계를 초월한 초연결 지능형 사회로 급속하게 재편되고 있어 보통 사람들은 사회변화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녹록지 않다. 진즉부터 로봇이 인간을 대신해서 많은 일을 수행해 왔는데, 이제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으로 우리네 삶의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이를테면 대화형 인공지능으로 널리 알려진 챗GPT의 등장으로 우리의 일상에 주는 변화는 예전과 격이 좀 다른 것 같다. 무엇보다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까지 주고 받
盆城贈別(분성증별) 모재 김안국 연 자루에 제비 날아 꽃잎이 나부끼고 봄바람 살랑 살랑 이별의 한 심었는데 저 멀리 애끓는 봄은 돌아가리 그대여. 燕子樓前燕子飛 落花無數惹人衣 연자루전연자비 낙화무수야인의 東風一種相離恨 腸斷春歸客又歸 동풍일종상리한 장단춘귀객우귀가락국을 대표하는 유물을 꼽으라면 아마 연자루가 아닌가 싶다. 청백리로 널리 알려진 맹사성도 일찍이 연자루(燕子樓)란 시를 썼다. [가락국 옛터전에 몇 봄이 오고갔나(駕洛遺墟幾見春) / 수로왕 세운 문물 티끌따라 없어졌네(首王文物亦隨塵) // 가련하구나 제비만이 옛정회 를 못잊
霜月(상월) 용재 이행 저물녘에 가랑비가 하늘을 씻기더니 밤 되어 바람 부니 안개를 걷어 내고 서릿발 달빛에 비춰 아름다움 다투네. 晩來微雨洗長天 入夜高風捲暝煙 만래미우세장천 입야고풍권명연 夢覺曉鐘寒徹骨 素娥靑女鬪嬋娟 몽각효종한철골 소아청녀투선연맑은 날 밤이면 어김없이 내리는 촉촉한 이슬은 꽃이나 풀벌레들에겐 단비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추분이 지나면 날씨가 싸늘해지면서 무서리가 촉촉히 내린다. 한기(寒氣)를 느끼면서 동지 이후에 살을 에는 듯하게 찾아은 손님이 삭풍(朔風)이다. 시인은 이런 늦가을의 문턱에서 맑은 날 하룻밤의 정경
아내가 상경(上京)해서 나흘 정도를 홀로 지냈다. 이런 경우 흔히 남자들이 잠시나마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다고 좋아들 한다. 아내로부터 상대적으로 간섭을 좀 덜 받으니 홀가분한 기분을 이렇게 표현한 것 같다. 개인차도 있겠지만 대체로 그렇다는 말이다. 특히 정년 후 아내와 함께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경우, 다른 말로 해서 흔히 ‘아내와 동선이 많이 겹치는’ 날에는 좋을 때도 있지만 아내로부터 잔소리(?)를 듣는 빈도가 많으면 아내의 외출이 반갑다. 아내의 부재를 ‘자유로운 영혼’을 들먹이는 속내는 남편의 입장에서 아내의 잔소리
閨怨(규원) 매창 이계랑 말하지는 못했어도 너무나 그리워서 하룻밤 마음고생 귀밑머리 희었는데 가락지 헐거워졌으니 소첩마음 알겠소. 相思都在不言裡 一夜心懷鬢半絲 상사도재불언리 일야심회빈반사 欲知是妾相思苦 須試金環減舊圍 욕지시첩상사고 수시금환감구위‘술은 왜 마시느냐’는 질문에 흔히 하는 대답은 ‘취하려고 마신다’고 한다. 주색(酒色)이라고 했다. 아마 술과 여자는 불가분의 상관관계로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시문에서 보인 시기(詩妓) 매창과 잔술을 나누었던 인사도 그랬던 것 같다. 짓궂은 사내에게 시 한 수를 남겼으니 ‘증취객(
유명한 관광도시 불란서 파리를 생각하면 에펠탑이 떠오르고, 호주의 시드니를 생각하면 오페라하우스가 떠오르며, 미국의 뉴욕을 생각하면 자유의 여신상이 상기된다.광양에는 이순신대교가 있고, 구봉산 정상에서 보면 왜교성 전투가 일어난 왜교성과 그 앞바다에서 이루어진 해상 전투지였던 장도, 송도 일대와 묘도의 광양 앞바다를 조망할 수 있고 멀리 정유재란의 마지막 해상 전투지인 남해해협과 이충무공 전몰지가 바라보인다.우리 광양은 컨부두와 광양제철소가 있지만 순천과 여수에 비해 인구수와 관광객 방문자 수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여수는 낭만 바다
伯牙(백아) 용이 신항 나 혼자 즐거워 거문고 타나니 누구를 위하여 듣게 할 것인가 종자기 남을 위하여 거문고를 탔던가. 我自彈吾琴 不須求賞音 아자탄오금 불수구상음 鍾期亦何物 强辯鉉上心 종기역하물 강변현상심사상이 같거나 마음을 함께 담을 수 있는 벗을 빗대었을 때 흔히 백아와 종자기를 생각하게 된다. 이를 빗대어 백아절현(伯牙絶絃)이라고 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자기를 알아주는 벗이 없다면 더없이 쓸쓸하다. 진정으로 대화 나눌 수 있는 벗이나 친자가 없다면 인생의 참 맛을 알기가 어렵다는 말도 흔히 하기는 한다. 노래를 잘
옛 말에 ‘우는 아이 젖 준다’는 말이 있다. 무언가를 요구했을 때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포스코가 지주회사인 포스코 홀딩스의 본사와 미래기술연구원의 본원을 포항으로 이전한 것은 결국 포항시민들의 반발에 굴복했기 때문이다. 포항시와 포스코의 관계는 협력관계 보다는 치열한 갈등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반면, 포스코의 핵심사업장이 있는 광양은 포스코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해 왔다. ‘우리 포스코, 우리 광양시’란 구호가 포스코에 대한 광양지역민의 애정을 대변한다 할 것이다.그런데 최근 광양시와 포스코의 관계
근자에 치유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치유(治癒)는 치료(治療)와 많이 다르다.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우선 치료는 물리적인 측면(혹은 신체적인)과 보다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반대로 치유는 정신적인 질환의 개선과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 사람이 다치면 흔히 ‘치료를 받는다’고 하는 걸 보면 치료라는 말도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던 것 같다. 치유도 진즉부터 사용되기 시작했겠지만 치료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그 연원이 짧은 셈이다. 그럼 왜 근래에 치유라는 말을 부쩍 많이 쓰게 됐을까. 우선 현대인들이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되어 있고 정
悲秋(비추) 삼괴당 신종호 하얀 옥 갈고리에 가는 달 걸려 있고 서리바람 이슬 국화 뜰 속에 가득한데 시름에 묻을 곳 없이 흰머리를 심는다. 月子纖纖白玉鉤 霜風露菊滿庭秋 월자섬섬백옥구 상풍로국만정추 天翁不辦埋愁地 盡向寒窓種白頭 천옹불판매수지 진향한창종백두가을이 되면 소소함을 느낀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움츠리는 겨울을 맞이해야 되기 때문이다. 다시 겨울은 폐장(閉藏)이란 한 해의 쉼을 말해준다. 활동하는 시기엔 순간적으로 지나는 계절을 잊지만 한가한 겨울이 되면 고향을 생각한다. 희끗희끗 길어진 하얀 머리털을 보면 친지와 친구가
春睡(춘수) 월헌 정수강 연기는 곳곳마다 밝은 햇빛 집집마다 사람들은 한가하게 베개를 즐기는데 봄 풀은 연못가에서 젖어 있소 꿈속에. 處處靑煙起 家家白日長 처처청연기 가가백일장 人閑好憑枕 春草夢池塘 인한호빙침 춘초몽지당매서운 바람에 어깨를 움추렸던 겨울을 지내고 봄이 돌아오면서 어깨가 무겁고 몸이 나른해 진다. 흔히 ‘봄을 탄다’고 했던가. 온 몸이 나른해 지고 모든 생활에 의욕이 없다. 논밭에 나가는 씨를 뿌리고 겨울살이를 거두어 들이는 것조차 잊고 춘몽(春夢)을 꾸거나 춘수(春睡)를 즐기는 것도 연중 행사처럼 빼놓을 수 없는 예
근래 들어 인문학의 열풍(?)이 사라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 예전 같은 분위기는 아니다. 한 때 열풍이라고 할 정도면 대단한 유행이 함축되어 있다. 대중들은 다소 변덕스럽기도 하지만 탓할 건 못 된다. 대중들 입장에서 기대한 만큼 얻는 게 없다면 철회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중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유지하기 힘들다. 인문학의 열기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인문학은 문학, 역사,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외에도 사회학, 심리학 등 그 범위를 확대할 수 있겠지만 문학, 역사, 철학을 핵심 범주에 넣는데 무리는
書懷(서회) 사옹 김굉필 한가한 곳에 사니 오가는 이 드물고 달 부르니 외롭고 쓸쓸한 나를 비춰 안개의 물결 위에서 산들만이 가득하네. 處獨居閒絶往還 只呼明月照孤寒 처독거한절왕환 지호명월조고한 憑君莫問生涯事 萬頃煙波數疊山 빙군막문생애사 만경연파수첩산자서전(自敍傳)이라고 했다. 자서전이라고 해서 살아 온 행적을 필설로는 다 쓸 수는 없으리. 그럼에도 다른 사람이 멀리서 가까이서 응시하면서 질곡의 삶을 왈가왈부하는 사람도 더러 만나게 된다. 붓을 들었다 해서 나의 생애를 다 쓸 수도 없어 보인다. 누구보다 자기 자신은 자기가 잘 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