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사건 전개과정 한눈에 보여주는 4.3평화공원 등 스템프 투어로 역사의 진실 알리려 노력 여순사건을 돌아보기 위해서는 그 전에 있었던 제주4.3사건을 알아야 한다. 1948년 10월 여수에 주둔한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이 제주4·3사건 진압명령을 거부하고 무장봉기를 일으켜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주민들이 희생을 당한 게 여순사건이기 때문이다. 제주4.3사건은 이 보다 앞선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까지 발생한 무력충돌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억만마을은 마로산 동쪽 앞자락에 자리한 마을로 사곡 사라실예술촌(구, 사곡초등학교)과 맞닿아 있다. 마을 앞으로는 억만천이 흐리고 억만교를 통해 마을로 들어서면 약 300년 된 마을 보호수인 팽나무가 그 위세를 뽐낸다. 마을 안쪽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마로 산성으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어마정의 유래억만마을은 본래 광양현 동면(東面) 사라곡리(沙羅谷里)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사라곡면(沙羅谷面)에 속했다. 1789년경 호구총수에는 사곡면(紗谷面) 본정촌(本井村)지역으로 어마정(禦馬亭)이라 했다.억만마을을 어마정(禦
윤동주 기념관, 정병욱 선생과의 인연 자세히 소개…망덕포구 정병욱 생가 활용 방향 재검토 필요 망덕포구 무접섬과 그 인근에는 윤동주 쉼터와 윤동주 시인의 시가 적혀있는 윤동주 시(詩)공원이 조성돼 있다. 이곳에 윤동주 관련 콘텐츠가 조성된 것은 망덕에 소재한 정병욱 가옥에서 윤동주 시인이 생전에 써서 남긴 원고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광양시는 ‘민족시인’ 윤동주라는 문화 브랜드를 선점하고 관광과도 연계시키겠다는 방침이지만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두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된 방향을 잡은 것은 아닌지
제주 4.3항쟁 진압명령 거부한 좌익 군인들의 봉기… 반군 토벌 과정에서 숱한 민간인 군경에 의해 학살 74년 전인 1948년 10월 19일, 여수시 신월동에 주둔한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이 제주4·3사건 진압명령을 거부하고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군인들은 다음 날인 20일, 여수와 순천을 점령하고 곧이어 광양을 포함한 전남 동부지역까지 점령해 나갔다. 이에 전라남도 동부지역에 그 여파가 미쳤다. 실제로 여수, 순천은 명백히 14연대 군인들이 점령했다고 할 수 있지만, 나머지 지역은 거의 지나가는 수준이었고, 대신 미군정
기동마을은 성황동을 지나 황길역으로 향하다 보면 통사마을로 들어서는 길이 나오는데 그 길을 기준으로 우측에 있는 벌등마을과 갈림길 좌측으로 가다 보면 나오는 본 마을을 합친 마을이다. 벌등마을과 통사마을의 경계지역이 되는 갈림길을 구문장이라고 부르며, 기동마을 입구까지는 마을버스가 들어온다.■기동과 벌등 기동마을은 본래 광양현 동면(東面) 골약리(骨若里) 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골약면(骨若面) 지역에 속했다. 학자들 간에는 마을 이름인 기동(基洞)과 이곳 지형적 여건으로 보아 고려 또는 그 이전에 특수행정구역인
부여군은 약 2,500여 년 전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송국리 문화가 개화했던 유서 깊은 도시다. 무엇보다 백제 26대 성왕이 국가 중흥의 원대한 뜻을 품고 풍요로우면서도 국가정책의 융통성이 많은 사비로 도읍을 옮겨 123년간 국력 신장과 활발한 외교활동을 펼쳤다.성왕이 사비로 도읍을 옮긴 것은 당시 중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새로운 도약의 시기를 맞이하면서다. 이전의 도읍지인 웅진(공주)은 급격히 성장하는 백제의 역량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했고, 결국 사비로 도읍을 옮겨 뛰어난 토목기술과 건축 기술을 발휘해 당시 황무지였던 사비 지역
용계마을은 수어댐 바로 아래에 위치해 마을 앞으로 수어천이 흐르고 갈대밭이 풍경을 이룬다. 마을주민들은 김 양식이 한창이던 당시에 이곳의 갈대를 이용해 섶, 김발로 만들어 판매하면서 경제 활동에 도움을 얻었다. 예전만큼은 못해도 지금도 갈대를 구경할 수 있다. 현재 갈대가 있는 수어천 하구 주변은 양귀비와 코스모스를 덤으로 구경하며 그라운드골프를 칠 수 있는 수어천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용계라고 불린 이유용계마을은 본래 광양현 동면(東面) 진상리(津上里)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진상면에 속했으며 1789년경
광양은 풍수지리의 천년수도 될 수도 있지만, 옥룡사 복원은 요원…황룡사지 복원과 비교돼 지역마다 유·무형의 역사적 문화유산은 존재한다. 문화유산이 많이 내재 되어있는 특별지역이 아니어도 그렇다. 지역의 문화유산은 존재만으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니며 역사적 가치를 넘어 그 지역의 정체성까지 반영한다.광양시 문화유산도 마찬가지다. 광양 마로산성을 비롯해 옥룡사지, 옥룡사지 동백나무숲, 중흥산성 삼층석탑, 장도장, 광양읍수와 이팝나무, 윤동주 유고보존 정병욱가옥, 매천황현선생사당, 진월 신아루보루, 광양 김시식지 등은 광양의
염창마을은 구례방향으로 가다보면 섬진강으로 합쳐지는 중대천이 나오기 전의 마을이다. 다압의 마을들은 비교적 섬진강을 따라 쭉 늘어진 길가에 형성된 반면 염창마을은 높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어 섬진강 풍경을 바라보기에 더욱 좋다. 마을을 가리키는 이정표에도 전망 좋은 곳으로 소개를 하고 있다.■소금창고염창(塩倉)마을은 적어도 고려시대(918~1392년)부터 이 지역에 소금을 보관하고 출납하던 창고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세종실록지리지(1452)에 의하면 이곳 마을에는 염간(塩干:조선시대 제염장에서 작업을 하던
광양항 자동화부두, 국산기술 개발에도 방점…원활한 사업추진 위한 추진협의체 공식 발족부산항 6부두가 자동화부두로 개장하고, 광양항 자동화부두 개장과 같은 시기에 개장하는 인천신항도 자동화부두로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이를 보면 광양항에 건설이 추진되는 자동화부두에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옳지 않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정부와 여수광양항만공사는 ‘국내 최초’로 광양항 컨테이너부두 4개 선석을 자동화부두로 건설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왜 광양항이 ‘국내 최초’인가?지난 5월, 정부는 새정부 110대 국정과제
진목마을은 진상면 청암리와 진월면 차사리 경계에 있는 잼비산(116.8m) 능선에 자리한 마을이다. 청암리 삼정마을이 수어천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뒤편이 바로 진목마을인 셈이다. 삼정마을에서 진목마을 사이에는 삼정치 고개가 있어 왕래 가능하며, 진목마을 옆으로는 항동마을이 있다.■ 홍씨가 살았다는 홍천골진목마을은 본래 광양현 동면(東面) 진하리(津下里) 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에는 진하면에 속했고 1789년경 호구총수에는 진하면 직목촌(直木村) 지역이었다.이 마을은 약 370년 전 밀양박씨(密陽朴氏)가 처음 입촌해 마을을
국내 최초로 원격 조정 안벽크레인 도입…탄소중립 실현 위해 야드트렉터 연료 LNG로 전환 중 정부는 10년주기로 항만기본관리계획을 수립하고, 신항만건설기본계획을 수립한다. 또, 5년주기로 이 계획을 갱신한다. 10년 주기의 이러한 장기계획에 따라 항만공사를 비롯한 항만유관기관은 항만건설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항만 자체가 국가 기간시설이기 때문이다.윤석열정부는 이러한 신항만건설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부산신항 6부두, 자동화항만 개장우리나라 대표항만인 부산항은 이달 부
관동마을은 백운산의 갈비봉을 지나 쫓비산으로 오르는 등산코스의 시작점으로 유명하다. 쫓비산은 해발 537m에 지나지 않은 작은 산이지만 매화마을을 둘러싸고 있어 매화가 만개하는 3월이면 등산객들이 매화도 볼 겸 자주 찾는다. 호남정맥이 끝나는 백운산 동편 산줄기에 솟은 갈비봉은 관동마을에서 1시간이면 오를 수 있다.■ 마을형성과 유래관동마을은 본래 광양현 동면(東面) 다압리(多鴨里)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다압면에 속했다.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1600년 경 경남 진주에 살던 청주정씨(清州鄭氏) 부
전남도, 수소산업육성종합계획 수립…김영록 지사, 선거공약으로 광양만권 수소산업 융복합플랫폼 구축 제시 ‘수소경제’라는 개념이 등장한지 불과 4~5년에 불과하지만, 수소는 4차산업혁명시대 미래산업의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그러기 때문에 세계 각국은 수소와 관련된 정책을 수립하고 있으며, 국내 지자체들도 앞다퉈 관련 용역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는 수소항만조성방안을 밝힌바 있다.항만은 수소경
웅동마을은 진상면 황죽리에 속한 마을로 백운산자락 깊숙한 곳에 자리해 있다. 수어천을 따라 어치계곡으로 오르다 백학동체험마을에 이르면 좌측으로 들어서는 황죽교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 한참을 올라가야만 웅동마을이 나온다. 그렇지만, 웅동마을 입구에는 주변 산세와 다르게 광양기독교100주년기념관이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어 마을을 쉽게 찾을 수 있다.■곰골의 유래웅동마을은 1780년경 전북 남원(南原)에 사는 곡부공씨(曲阜孔氏)가 화승총을 가지고 이곳 백운산 일대를 무대로 사냥하다가 이곳에 정착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문헌에 의하면 이보
자동화항만 구축 시기 광양항 자동화항만과 겹치지만 개념 달라… 광양항, 최첨단기술 도입 실증 국내 항만 중 부분적으로나마 자동화를 도입해 실제 운용하고 있는 항만은 인천항과 부산신항이다. 그렇지만, 이들 부두에서의 자동화는 기존 운영방식과 큰 차별화를 보이지 않는다.인천항의 경우 지난 2015년 준공된 신항에 부분적으로 자동화가 도입됐다.그렇지만, 인천항의 자동화는 지극히 초보적인 수준이다. 컨테이너부두에서의 업무영역은 하역구간과 이송구간, 장치장구간, 서비스구간으로 분류할 수 있다.하역구간은 육상에서 선박으로 화물을
삼존마을은 옥곡면 묵백리의 한 마을로 옥곡중학교에서 정토천을 따라 오르다 점터마을을 지나면 나온다. 마을로 들어서는 삼거리에는 버스정류소와 함께 삼존마을을 알리는 표지석이 마련돼 있고, 그 안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마을회관이 나온다. 마을회관은 묵백천이라는 지방하천이 맞닿은 곳에 자리해 쉽게 눈에 띈다.■ 사자형국의 마을삼존(三尊)마을은 본래 광양현 동면(東面) 옥곡리(玉谷里)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옥곡면에 속했다. 문헌상 기록을 보면 1789년경 호구총수에 이 지역이 처음 표기됐으며 삼존동(三尊洞)지역으로 추
YGPA-포스코-현대차, 운송부문 탈탄소화 위해 수소트럭 개발 협력…수소 야드 트랙터 도입 추진 글로벌항만경쟁에서 친환경항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친환경항만, 또는 탄소중립 항만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지만, 최종 목적지는 수소항만 구축이라 할 수 있다.여수광양항만공사(사장 박성현)는 지난해 3월, 탄소중립 항만을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2040 친환경 스마트항만 구상’을 수립하고, 이를 기초로 산업계의 의견 등을 수렴해 ‘여수광양항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마련했다.앞서 2020년 2월에는 현
광양 동천을 거슬러 옥룡면사무소를 지나면 설립 110주년이 넘은 대방교회가 나온다. 흥룡마을은 이 대방교회 우측에 있는 흑룡교를 건너면 나오는 마을이다. 마을 진입로를 따라 100여m를 지나면 마을회관이 나오며 회관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의 정자나무가 있다. 여기서 더 안쪽으로 향하면 대방마을과 맞닿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용이 하늘로 오르려는 형국흑룡(興龍)마을은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조사된 지역으로 기원전 8000년경에 이 지역에 사람이 살았음이 확인되고 있다. 당시 마을역사는 알 수 없고 문헌상으로 마을연혁을 살피
자동화항만 구축시 생산성 30% 상승, 운영비 37% 이상 저감 가능 광양경제를 이끄는 두개의 축은 철강과 항만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이차전지를 비롯한 미래 먹거리가 새로운 전략산업으로 대두되고 있다. 정부의 양항정책의 일환으로 시작된 광양항은 개항 이후부터 현재까지 항상 화물부적에 시달리면서 양항체제가 빛을 바랜지 오래다. 그렇지만, 차세대 산업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출입물류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는 광양항은 광양경제의 활성화를 위한 근간일 수 밖에 없다.1997년 1단계 컨테이너터미널이 준공되면서 개항한 광양항 컨테이너부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