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들이 있어 세상이 아름답습니다 태인동 나눔의 집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평범한 우리의 이웃들이다. 7일 자원봉사에 나선 봉사자들. 사진 앞줄 왼쪽부터 김명자, 김성옥, 이향숙, 박해란씨. 뒷줄 왼쪽부터 서정자, 양순례, 강순옥씨. 맨 오른쪽이 자원봉사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채미례 실장이다.

 아무런 대가없이 타인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그 곳은 살만한 곳이 될 것이다. 자신의 재능을 활용하여 다른 사람을 돕거나,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봉사, 혹은 나눔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를 실천에 옮기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기에 기꺼이 자원봉사에 나서는 사람들은 충분히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지역과 함께 하는 기업이미지 정착을 위해 태인동과 광영동의 어르신과 장애우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를 대접하는 나눔의 집을 개설한지 10년이 넘었다. 기업이 운영비를 지원하더라도 결국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직접 식사를 대접하는 일은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참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묵묵히 자신의 노력을 투자하여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의 자기헌신이 1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64만여명의 어르신과 장애우들의 따뜻한 점심을 책임져 왔다.

 

광양시민의 날 전야제 행사가 열린 지난 7일 오전 11시, 태인동 나눔의 집을 찾았다.

점심시간으로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나눔의 집을 찾는 어르신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고, 어르신들에게 식사를 배달해 주고, 설거지를 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은 쉴 틈이 없었다.

이날 자원봉사에 나선 사람은 조장을 맡고 있는 김명자(55)씨를 비롯해 김성옥(55), 이향숙(51), 박해란(54), 서정자(57), 양순례(55), 강순옥(55)씨 등 7명과 나눔의 집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채미례 실장이었다.

태인동을 순환 운영하고 있는 마을버스가 나눔의 집 앞에 도착하자 자원봉사자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채미례 실장은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부축해 식당 안으로 안내했으며, 자원봉사자들은 분주하게 배식을 시작했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온 자원봉사자들은 주어진 일을 분주하게 해내면서 어르신들이 식사에 불편이 없도록 시중을 들었다.

 

이날, 어르신들에게 식사를 직접 가져다 주고 식사 시중을 드는 역할을 맡은 이향숙씨는 2010년 7월부터 자원봉사에 참여해 4년째를 맞고 있다.

“평소에 기회가 주어지면 봉사활동을 해보고 싶었는데 아는 사람이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같이 참여하게 되었어요. 아이들이 크면서 여가시간을 보람있게 보내고 싶었는데 나눔의 집 운영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어요.”

금호동 주택단지에 거주하는 이날의 봉사자들은 모두 포스코패밀리로 봉사활동에 참여하기 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다고 한다.

이들이 나눔의 집 봉사를 위해 집을 나서는 시간은 오전 10시쯤이다.

카풀을 통해 나눔의 집에 도착한 봉사자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포스코의 사내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포스웰에서 준비해 배달해 온 음식을 옮기는 일이다.

태인동 나눔의 집은 태인공중목욕장과 같은 건물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봉사자들이 도착하기 전부터 어르신들이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음식을 옮기면서 일찍 도착한 어르신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다 보면 점차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이향숙씨는 “어르신들이 준비한 식사를 맛있게 드시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고 기분이 좋아진다”며,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한다.

일하면서 애로사항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개인 사정으로 인해 봉사활동을 해야 하는 날 빠지게 될 경우 동료들에게 미안한 것 말고는 특별한 어려움은 없다”고.

 

이날 봉사활동에 나선 7명의 봉사자 중 양순례씨와 김성옥씨는 태인동 나눔의 집 개설 첫 해인 지난 2005년 5월부터 현재까지 10여년동안 한결같이 나눔의 집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같은 아파트의 위, 아래 층에 살면서 평소부터 친한 친구로 살아 온 두 사람은 “회사에서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말을 듣고 별다른 계획없이 접수해 활동하다 보니 어느 덧 10여년이 되었다”며 밝게 웃는다.

1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자식들은 어느 덧 장성해 품을 떠났다.

“처음 봉사활동을 시작할 당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어요. 10년 세월이 흐르면서 시아버님은 돌아가시고, 어머님은 치매로 요양원에 계시는데 내가 조금 어렵고 힘들더라도 참고 살다보니 아이들이 올바로 커주었어요. 요양원에 계시는 할머니를 보겠다고 아이들이 찾아가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에 대한 가장 중요한 교육은 부모의 행동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살다 보니 요즘도 아이들은 종종 할아버지랑 같이 살던 시절이 그립다는 말을 하곤 해요.”

양순례씨의 말이다. 60년생 동갑나기인 양순례씨와 김성옥씨는 같은 아파트의 위, 아래 층에 살면서 나란히 아들만 둘을 두고 있다고 한다.

김성옥씨는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를 대접한다는 것만으로도 보람을 느낀다”며, “1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처음에 자주 찾았던 어르신들 중 돌아가셨거나, 거동을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어 안보이는 사람들이 많은데, 한 분, 한 분 안보일 때마다 가슴이 시리다”고 말한다.

“시부모를 모시고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어려서 할아버지, 할머니랑 같이 살았어요. 그런 영향 때문인지 어르신들에게 식사대접 하는 것이 더욱 보람이 있어요.”

김씨는 두 아들이 농담처럼 “엄마, 아빠가 할아버지, 할머니 모시는 것처럼 나중에 모시겠다고 하는 말을 듣고 어르신들에게 항상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뼈저리게 느꼈다”며, “아이들의 교육에 부모의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했다”고 말한다.

포스코가 제철소 거점지역인 광양과 포항에 무료급식소인 '포스코 나눔의 집'을 운영한 것은 지난 2004년 5월부터다.

광영동 나눔의 집 운영에 대한 이용자들의 호응이 높게 나오자 포스코는 이듬해 태인동에 나눔의 집을 하나 더 운영하기 시작했다.

광양지역 포스코 나눔의 집은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11시부터 1시까지 운영되는데, 포스코 직원 부인과 지역민으로 구성된 자원봉사자 348명이 급식을 담당하고 있다.

보호가 필요한 노인이나 장애인들이 스스로 매일같이 식사를 준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분들에게 하루 한끼라도 따뜻한 밥을 대접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나눔의 집은 당초 배식시간을 오전 11시로 정했지만, 이용자들 상당 수가 아침을 거르고 나눔의 집을 찾는 현실을 감안해 배식준비가 끝나는 대로 급식이 이뤄지고 있다.

‘아점’(아침과 점심)이 자연스레 자리잡게 된 셈이다.

 

이날 자원봉사에 나선 7명의 주부들 중 조장을 맡고 있는 김명자씨는 비교적 뒤늦게 합류한 봉사자이다.

노인복지관 등을 찾아 봉사활동을 해오던 김씨는 주변의 친구들이 나눔의 집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지난 해 3월, 나눔의 집 봉사자로 합류했다고 한다.

“가장 경력이 짧은데 얼떨결에 조장을 맡게 되었어요. 원래 조장을 맡았던 봉사자가 개인사정으로 그만두게 되면서 그 자리를 메꾸게 되었는데, 동료들이 조장 대타로 왔으니 조장을 맡아야 한다고 우겨 얼떨결에 맡은 셈이지요.”

김씨는 “같이 일하는 동료들 대부분이 상조회 활동을 통해 평소 친분이 있거나 취미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이라며, “여럿이 모여 의미있는 일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기쁨”이라고 말한다.

포스코 나눔의 집은 단순히 어르신들이 모여 식사만 하는 공간은 아니다. 이곳은 소통과 만남의 공간이기도 하다.

나눔의 집에서 만난 박예순(67) 할머니는 “참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말한다.

“걸어다닐 수만 있으면 마을버스로 이곳에 와 목욕도 하고, 식사도 할 수 있어요. 또, 보건소에 들러 약도 타갈 수 있고요.”

42살에 남편과 사별하고 5남매를 키웠다는 박 할머니는 “아들도 장애인이 되었는데 정부에서 먹여 살려주고 있다. 모든 것이 다 좋다”고 말했다.

“마을 경로당에서도 쌀을 가져다 주고, 반찬을 가져다 주니 경로당에서 밥을 먹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이곳을 찾아오는 것이 경로당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좋아요. 밥맛도 좋고, 여러 사람들을 만난 수도 있고, 목욕이며, 병원까지 돈 하나도 들지 않고 다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태인 2구에서 태어나 다압으로 시집을 갔다가 남편과 사별한 후 태인 1구에 정착해 살고 있다는 박 할머니는 젊은 시절 김을 만들고, 조개를 캐며 고생했던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연신 세상 살기 좋아졌다고 말했다.

나눔의 집을 찾는 지역민들이 일방적으로 수혜만 보는 것은 아니다. 지역민들이 직접 농사를 지은 고구마나 옥수수를 가져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 일도 드믄 일은 아니라는 것.

밥 한 끼로 나눔과 소통을 실천하는 곳, 나눔의 집. 그 곳에는 미소가 여유로운 아름다운 마음을 간직한 자원봉사자들의 정성이 항상 같이 하고 있었다.

황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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