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영담 현감은 임진년 여러 해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고 계사년 2월까지 계속된 동계 대수색 작전에도 60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왜적을 소탕하는데 앞장섰다. 그런데 어 현감이 이 수색작전인 웅천해전에 참전하고 있는 바로 그시기에 공에게 큰 어려움이 닥친다.

공은 광양 현감으로 부임한 이래 줄곧 선정을 펴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그는 흉년이 들면 농민들이 연명을 위해 종곡까지 먹어치워 막상 파종 시는 종자를 구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거듭되는 것을 직시하고 이를 대비코자 600여석의 구휼미와 종곡을 별도로 마련해 두었었다.

그런데 전란 중 해이해진 지방의 기강을 바로잡고 군량과 구수물자를 감찰하기위해 파견된 독운어사(督運御使) 임발영이 이것을 사욕을 위한 것으로 잘못 판단, 조정에 파직을 상소하여 현감에서 파직되고 만다. 광양 현감 부임 후 2년만의 일이다.

이 조치가 잘못된 것으로 생각한 백성들이 연명으로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에게 선처를 건의했고 이 통제사도 바로 조정에 자세한 전후 사정을 적어 어 현감의 파직을 재고해 줄 것을 장계했다.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순신 장군은 다시 어영담을 통제영의 조방장으로 삼겠다는 장계를 올려 조정의 허락을 받는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제해권 장악으로 수륙병진 전략이 수포로 돌아가자 부산포 등에서 선단 방어에만 치중하던 왜 수군은 명군과 왜군간의 화평교섭이 진행되고 있는 틈을 이용하여 점차 견내량 쪽으로 진출하여 거제와 내륙을 오가면서 약탈과 살인을 일삼고 있었다.

왜 수군의 준동으로 한산도 통제영이 압박을 받게 되자 갑오년 3월 4일, 통제사 이순신 장군은 124척의 전선으로 기동 함대를 편성하고 어영담 조방장(助防將)을 함대사령관으로 삼아 당항포(고성)에 있는 왜 수군 전단에 대한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이 전투를 역사는 2차 당항포 해전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기습작전에서 어영담 장군은 적선 30여척을 분멸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전투가 어영담 장군이 치룬 마지막 전투였다.

당시 모든 진중에는 전염병이 나돌고 기근이 심해 비전투 손실이 막대한 상황이었고 한산도 통제영도 예외는 아니었다. 선조실록의 기사를 보면 통제영 전체 병력 1만7천명 중 3할이 역병에 감염되었고 그중 3할이 사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바로 이 전염병으로 노구의 조방장 어영담 장군은 병을 이기지 못하고, 4월 10일 통제영 진중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이순신 장군은 자신도 역병에 걸려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음에도 “통탄함을 말로 할 수 있으랴”라고 난중일기에 기록하고 있다. 실로 이순신 함대에는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어영담 현감의 전기 하나만으로 광양 수군의 활약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만, 장군의 사망 이 후로는 광양 수군과 관련한 기록은 거의 없어 유감스럽다. 다만 충무공의 난중일기에는 두 사람의 광양 현감이 등장하는데 한사람은 정유년 5월과 6월의 일기에 전 광양 현감 김성(34대,1596)이 제찰사의 군관이 되어 화살대를 구하려고 순천에 왔다가 인사를 온 것이 기록되어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되어 부임하던 중 부유 창에서 공을 피해 달아나던 구덕령(36대, 1596) 광양 현감을 명을 내려 불러들였다는 아름답지 못한 기록이 있을 뿐이다.

이와는 달리 이춘원(37대,1597) 광양 현감은 그 휘하들과 남원성 전투에 참전하여 위급에 처한 아군을 구출하는 큰 공을 세운 것이 임진전란사에 기록되어 있다. 이 현감은 이 공이 인정되어 후일 좌승지, 병조참의, 충청관찰사를 지냈다.

그러나 임란 초기부터 광양 지역에서는 많은 의병과 승병이 봉기하여 구국 전선에 뛰어 들었으며 대부분 전라좌수사 관할 수군으로 편성되어 이순신 장군 연전연승의 일익을 감당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형제 의병장 강희열․강희보의 진주성 싸움, 승병이 중심이 된 중흥산성 전투, 전술한 남원성 전투에서의 이춘원 현감과 광양 관군 및 의병들의 활약상은 오늘날까지 광양인 들의 가슴속에 자랑스럽게 각인되어 있다.

어찌되었던 어영담 장군이 임란 종전 이후까지 생존하여 광양 수군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을 남겼다면 하는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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