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의 소설 배경 토대로 메밀 밭 가꿔 지역 브랜드화

 
메밀꽃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넓은 들판을 하얗게 뒤덮는 꽃무더기는 한국인 모두에게 고향의 정취를 떠올리게 할 것이다. 파종부터 꽃을 피우기까지 한 달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 작기가 짧은 작물인 메밀은 보는 이들에게 많은 향수를 불러일으키지만, 정작 소득이 높은 작물은 아니다. 요즘이야 메밀이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메밀은 다른 작물이 잘 자라지 않는 척박한 토양에서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심었던 구황작물이었다.
그렇지만, 메밀은 가을을 대표하는 경관작물로 각광받고 있다.인근 하동군의 북천면에서 열리고 있는 메밀·코스모스 축제도 메밀 꽃의 이러한 이미지에 기댄 것이라 할 수 있다. 유채가 봄을 대표하는 경관작물이라면 메밀은 가을을 대표하는 경관작물인 셈이다.
국내 최대의 메밀 주산단지는 제주도다. 또, 고창 등지에서도 메밀이 대규모로 재배된다. 그렇지만, 인근의 대형 마트에 가서 메밀국수나 메밀 부침가루 등의 상표를 확인해 보라. 가장 흔하게 찾을 수 있는 것이 강원도 평창의 한적한 시골마을인 봉평을 브랜드로 하는 제품일 것이다. 그렇지만 평창의 경우 메밀을 재배하기에 썩 좋은 여건을 갖고 있지 않다. 남부지방의 메밀 꽃이 개화 후 한달여동안 이어지는데 반해 서리가 일찍 내리는 강원도 평창의 경우 메밀꽃을 볼 수 있는 시기는 개화 후 1주일 정도에 불과하며, 메밀을 재배하기에 썩 좋은 여건을 갖고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창군 봉평면이 국내 최대의 메밀 주산단지인 것처럼 인식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다른 지역의 메밀이 생산이나 대단지 식재를 통한 경관조성에 방점을 두고 있다면 봉평의 메밀은 경관조성 목적도 있지만 스토리텔링과 연계시켰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 대부분은 가산 이효석 선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알고 있다. 직접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은 있을 것이다. 봉평은 이 소설의 무대가 되는 곳이기도 하고 이효석 선생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메밀의 고장 봉평 만들기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은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이 태어난 곳이다. 평창이 배출한 대표적인 문인인 이효석을 기리기 위해 평창군민들은 사단법인 이효석 문학선양회를 결성하고, 문학과 자연의 만남을 주제로 매년 9월 첫째 주에 효석문화제를 개최해 오고 있다. 올해로 18회째를 맞는 효석문화제는 지난 9월 2일부터 11일까지 10일간 평창군 봉평면 효석문화마을 일원에서 펼쳐졌다.
지난 1990년, 문화관광부로부터 ‘전국 제1호 문화마을’로 지정된 효석 문화마을에는 이효석생가터와 소설 속의 배경인 물레방앗간, 충주집, 가산공원, 이효석문학관, 메밀향토자료관 등이 소재하고 있다. 문화마을 지정 이후 소설 속의 물레방앗간을 복원한 평창군은 1997년부터 효석문화마을 일원에 메밀을 심는 것을 적극 장려했다. 봉평면으로 접어드는 관문부터 가을이면 하얗게 들판을 뒤덮고 있는 메밀밭을 볼 수 있는데, 행사장 주변 5만여평의 들판은 온통 메밀밭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 메밀밭은 효석문화제를 주관하는 (사)이효석문학선양회에서 직접 관리하고 있다. 평창군은 2005년부터 문화마을 인근 지역의 농토에 대해 보조금을 지원하면서 메밀꽃을 심을 것을 장려하여 이효석문학선양회가 직접 관리하는 메밀밭 외에도 약 5만여평의 메밀밭이 민간의 참여로 조성되어 효석문화제 기간 동안 봉평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메밀=봉평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
봉평의 메밀은 이효석이라는 탁월한 작가의 작품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으로 농업을 통한 경관가꾸기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민간이 주도하는 효석문화제
 
1999년부터 시작된 효석문화제는 철저히 민간이 주도하고 있다. 전국의 자치단체들이 추진하는 행사가 민간주도 행사를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공무원들이 행사 진행을 도맡아 하는 것과 차별화되는 것이다. (사)이효석문학선양회(이사장 곽영승) 축제위원장을 맡고 있는 곽희갑씨는 “효석문화제의 행사 기획이나 진행은 공무원들의 도움 없이 순수 민간주도로 이뤄지고 있다”며, “군에서 보조금을 받기는 하지만, 공무원들이 행사 기획에 참여하는 것은 없다. 도움이 필요할 경우만 요청한다”고 말한다.
효석문화제는 (사)이효석문학선양회가 주최하고 있는데, 이 문화제는 봉평이 낳은 이효석 선생의 문학적 업적을 널리 알리고, 계승 발전시켜 지역의 문화창달 및 이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에 그 목적을 두고 열리고 있다.
효석문화제는 3가지 테마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 첫째는 문학의 향기이고, 둘째는 자연의 향기이며, 셋째는 전통의 향기이다.
문학의 향기란 가산 이효석 선생의 문학적 향기가 남아있는 봉평 만들기를 목표로 행사기간 중 전국 단위의 효석백일장을 비롯, 소설 ‘메밀 꽃 필 무렵’이 거리 상황극으로 펼쳐진다. 또, 행사기간 중 매일 문학특강이 진행되기도 한다.
자연의 향기는 청정이미지 봉평과 그 속에서 잠시 머물러 자연을 느낄 수 있는 평안한 봉평 만들기를 내걸고 있다. 행사장을 찾은 관광객들은 효석문화마을 주변에 조성된 메밀꽃 밭을 거닐며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어 볼 수도 있으며, 소설에 등장하는 당나귀 타기 체험도 할 수 있다.
전통의 향기란 과거에는 볼 수 있었고, 즐길 수 있었지만 지금은 볼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찾아내어 옛것에 대한 소중함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행사장 주변에 시골장터를 조성해 특산품 등을 직접 구입할 수 있도록 하고, 전통놀이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들이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다.
효석문화제는 면단위 행사로는 이례적으로 매년 수십만명의 관광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는데, 행사장에서 만난 곽희갑 위원장은 “올해 행사는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지난 해의 경우 60만명의 관람객이 찾았다. 이들 중 90% 이상이 수도권에서 찾은 사람들이다. 봉평의 메밀꽃밭은 남부지역에 비해 크게 볼거리는 없지만, 이효석이라는 걸출한 작가의 스토리텔링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주행사장 맞은 편에 조성된 대규모 메밀꽃 단지에는 관람객을 위한 데크가 설치되어 있고, 곳곳에 하트 모양의 벤치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곳은 1인당 2천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기자가 취재차 이곳을 방문한 날은 평일이면서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어 입장권을 구입하고 있었다.
 
봉평메밀의 브랜드화
 
봉평의 메밀은 화려하지도, 생산량이 많지도, 재배여건이 뛰어나지도 않다. 그렇지만, 봉평메밀은 높은 브랜드가치를 갖고 시장에서 통용되고 있다.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재배되는 메밀의 대부분이 봉평을 거쳐 나간다고 한다. 봉평농협은 메밀수매를 하고 있는데, 농협수매는 봉평산에만 그치지 않고 전국적으로 이뤄진다. 또, 봉평메밀의 브랜드가치가 높아지면서 봉평에는 메밀가공영농조합이 3개나 결성되어 가공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민간 영농조합에서도 전국적으로 수매를 통해 메밀을 확보해 가공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스토리텔링과 연계된 경관가꾸기가 지역의 새로운 브랜드 창출에도 도움이 되고 있는 셈이다.
 황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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