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에 성공했지만 우왕좌왕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한 듯 보이는 창의예술고 설립, 위탁자 선정 후 오랜 기다림 끝에 간신히 문을 열고 입주 작가를 모집하는 사라실 예술촌, 설계공모 당선작을 발표하고 올 10월에 착공을 앞둔 전남도립미술관, 광양시의 역사와 문화를 한 눈에 읽을 수 있는 역사관 등등.
예술인을 길러내는 학교도, 예술인들이 시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아고라도, 미술에 관한 모든 것을 감상할 수 있게 될 미술관도, 시민들이 우리 고장의 역사문화를 느끼고 체험해 볼 수 있는 역사문화관도, 대중문화의 아이콘 ‘영화관’도 머지않아 들어선다.
여기까지만 보면 철강.항만 산업도시의 이미지에 ‘문화예술’이라는 또 다른 옷을 입고 문화예술의 도시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조건이 다 갖춰진 듯 보이지만 왠지 ‘앙꼬 없는 찐빵’처럼 중요한 무엇인가가 빠진 석연찮음은, 문인(文人)을 배출했거나 또는 흔적이 남아있는 전국의 어느 도시에나 하나쯤 있는 ‘문학관’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도시 면모 갖추려면 ‘문학, 미술, 음악’ 등 각각의 아이템 충족돼야
문학관 하나 없이 ‘문화예술의 도시’로서의 체면을 세울 수가 있을까?
‘문화예술’을 한마디로 말하기란 광범위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사전적 의미를 빌려 풀어보자면 우선 ‘문화(culture)’는, 경작이나 재배 등을 뜻하는 라틴어(colore)에서 유래했듯 인간이 자연을 변화시켜온 물질적·정신적 과정의 역사적 산물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생활양식이자 상징이다.
‘예술(art)’은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등을 활용해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창조활동으로 개성과 보편성을 가진 작품을 통해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문화예술은 문학, 미술, 음악 등 광범위한 각 각의 아이템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문화예술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려면 이 세 가지가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
▶광양은 정채봉, 이균영 등 한국 문학사에서 주목할 만한 작가들을 키워낸 곳
철강·항만이 광양시민의 배를 채워주는 ‘육신의 밥’이라면 문화예술은 먹고 사는 일에 치여 지치기 쉬운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영혼의 음식’이다.
광양시민들이 누리는 문화예술 중 미술과 음악은 지역의 예술가들이 준비하는 작은 전시회나 음악회를 통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간간이 있지만 문학은 누구나 알고 있듯 시 ·소설 ·수필, 등 글을 통해 창조되는 예술작품이 분명함에도 그 대열에서 빠져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글로 풀어내는 문학예술’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꼭 필요하다.
침체된 한국의 아동문학을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하고 '생각하는 동화' 시리즈와 ‘오세암’이라는 감동적인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어른이 읽는 동화라는 새로운 문학 장르를 개척한 국내 최고의 동화작가 故 정채봉을 비롯해 1977년 신춘문예로 등단해 1984년 발표한 ‘어두운 기억의 저편’으로 이상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이자 역사학자로서도 주목할 만한 업적을 남긴 故 이균영 등 광양에서 태어나 태를 묻고 성장한 훌륭한 작가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도시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는 문학관 하나 갖추지 못한 광양은 문학예술의 불모지 아닌 불모지다.
문학관은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시대를 앞서 간 훌륭한 문인들의 숨결을 만나기 위해 작가들의 친필원고, 작품 등을 접하기 위해 문학관을 찾는 문학기행을 즐기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한번쯤은 여행 삼아 다녀오곤 하는 하나의 여행·관광 코스로 거쳐 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김승옥, 정채봉을 기억할 수 있는 순천의 순천문학관과 벌교의 태백산맥 문학관, 하동의 이병주 문학관, 남해의 유배문학관 등 광양과 가까운 순천과 벌교, 하동, 남해지역에도 문학관이 다수 있다.
작가 한 사람에 관한 자료들을 모아 전시해놓은 곳도 있지만 담양의 가사문학관이나 남해의 유배문학관처럼 하나의 주제로 여러 문인들의 작품과 자료를 전시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문학관도 있다.
이중 남해 유배문학관은 국내 최대 규모의 문학관으로 유배문학을 연구하고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지난 2010년, 서포 김만중이 태어난 음력 9월 25일을 기념해 11월 1일 개관한 향토역사실, 유배체험관, 유배문학관 등 박물관의 성격을 함께 갖춘 이색문학관이다.
권력도 부귀영화도 모두 빼앗기고 ‘유배’라는 이름으로 가족과 떨어져 살며 절망적인 삶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구운몽’의 서포 김만중을 비롯한 자암 김구, 약천 남구만, 후송 류의양 등 6명의 남해 유배객들의 작품과 2백여명의 남해 유배객을 시대별로 정리·전시해 역사공부도 함께 할 수 있고 예술작품의 전시가 가능한 넓은 로비를 갖춘 다목적문학관이다.
남해 유배문학관은 힐링 여행지로 각광 받는 남해여행의 필수 코스가 되어 많은 여행객들의 발길이 머물다 가는 곳으로 경제적인 효과로 이어지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광양시는 지난 해 11월 21일, ‘광양시 문예진흥종합계획 수립용역완료 최종 보고회’를 통해 오는 2021년까지 4백 89억원을 들여 문예진흥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지만 문학관 건립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이균영 20주기 추모 모임을 추진한 정회기 광양학 연구소장은 “도선 국사. 매천황현, 산재 최산두에서 부터 정채봉, 이균영 등 광양이 키워 낸 작가들을 기념하는 것은 광양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사업 중 하나이다”라고 말했다.
윤선도, 김자점, 이현일, 김간, 이수공 등 시대를 불문하고 광양에서 유배생활을 한 유배자들도 20여명이 넘는다고 한다.
광양 유배자들에 대한 관심을 갖고 한권의 책으로 엮어내고 싶어 하는 김미정(시인.글쓰기 지도)씨는 조선왕조실록 등 관련 문헌과 사료, 잘 알려지지 않아 자료 찾기가 어려운 유배자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문중을 찾아다니며 혼자서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김미정 씨는 “김간이라는 사람은 광양에서의 유배생활을 기록한 문헌을 남겼다. 문학은 이야기다. 김간이 남긴 이야기를 해석해보면 그 시대의 광양의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만약 광양에 문학관이 생긴다면 유배자들의 작품을 같이 전시해서 아이들에게 문학과 역사공부를 함께 할 수 있는 효율적인 기능을 할 수 있는 멀티 공간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학기념관’건립은 광양의 문학적 성과 재조명하고 광양이 문화예술도시로 거듭나는 기반
역사는 문학을 비롯한 미술, 음악, 영화 등 각각의 문화 아이템으로 기록되고 또 기억되어지고 있다.
그렇기에 ‘문화예술’은 그 어떤 분야보다도 ‘시대정신’이 스며들어 있는 것이고 광양문화예술발전의 ‘중심축’은 도선국사, 매천 황현, 산재 최산두 등 옛 시대의 문인에서 부터 정채봉, 이균영 외에도 안영 등 국내에 널리 알려진 광양을 대표하는 문학예술가를 키워 낸 곳이기에 ‘문학’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관련된 각종 자료를 수집하고 문학적 성과를 재조명할 수 있는 기반을 하루속히 조성해 광양 시민들이 지역의 문학가들을 기억함은 물론 그들의 시대정신을 담은 문학예술을 향유하고 계승.발전 시킬 수 있는 공간 ‘문학기념관’이 건립되어 광양시가 문화예술도시로서의 명성을 쌓아가기를 기대한다.
김영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