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사(春社)와 무일(戊日)은 밀접한 관련이 있었겠다. 그래서 민속적인 의미를 담아서 사일(社日)이란 말도 자주 썼다. 입춘이나 입추가 지난 뒤 각각 다섯째 날이 무일(戊日)이다. 입춘 뒤를 춘사(春社), 입추 뒤를 추사(秋社)라 했는데, 춘사에는 일 년간 농사에 곡식이 잘 자라기를 빌고, 추사에는 곡식 수확에 감사했단다. 왜 무일을 택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 ‘무탈(無脫)’이나 ‘무일(無日)’을 생각했으리라. 시인은 함께 배워 훌륭한 아우 진취함 보기 좋고, 농사일을 할 만하니 거친 밭 있는 것 기쁘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맑은 밤 거닐며 노래할 때 달이 문을 비추네(春社2)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율시 후구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함께 배워 훌륭한 아우 진취함은 보기가 좋고 / 농사를 할 만하니 거친 밭 있는 것 기쁘네 // 지금 다시 어느 때 풍족함을 기대할까 / 맑은 밤 거닐면서 노래하니 달이 문 비추네]라고 번역된다. 서문격 일곱 줄 초입문장은 이 글의 요점이자 가이던스가 된다. ‘아우 진취 보기 좋고 거친 밭농사 지을 만, 어느 때 풍족함 기대 노래하니 달이 비춰’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제삿술을 마시고 나서2]로 번역된다. 다시 호접몽(胡蝶夢)에 대한 고사로 이어진다. 장자는 ‘하늘과 땅은 나와 같이 생기고, 만물은 나와 함께 하나가 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그러한 만물이 하나로 된 절대의 경지에 서 있게 되면, 인간인 장주가 곧 나비일수도 있고, 나비가 곧 장주일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꿈도 현실도 아니고 죽음도 삶도 구별이 없다는 것이겠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깊은 사고로 느끼는 것은 한낱 만물의 한 변화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를 ‘호접춘몽(胡蝶春夢) 혹은 장주지몽(莊周之夢)’이라고 했다.
여기까지 생각했던 시인은 촌사의 깊은 의미에 자기를 몰입시키는 모습을 보인다. 사람이 함께 배워 훌륭한 아우의 진취함은 더욱 보기가 좋고, 농사를 지을 만하니 거친 밭이 있는 것도 또한 기쁘다는 선경의 시상을 이끌어 내고 만다. 아우만 한 형이 없다는 말의 의미를 새겨볼 만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화자는 춘사에 만족하며 다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을 것만 같다는 풍만함을 보이는 느낌을 받는다. 지금 다시 어느 때나 더 이상의 풍족함을 기대할 수 있을까를 물으면서 맑은 밤을 거닐면서 노래하니 달이 문에 비춘다는 후정의 시상은 양보할 듯, 챙길 듯이 놓은 듯이, 잡힐 듯한 품성이 한결 돋보이는 후정이란 한 사발의 국수를 삶아냈다.
 
春社(춘사)[2] / 매천 황현
 
동학의 훌륭한 아우 진취함 보기 좋고
거친 밭 쟁기질에 농사도 지을 만도
풍족함 기대할꺼나 맑은 밤에 달 보며.
同學好看佳弟進    可耕猶喜薄田存
동학호간가제진    가경유희박전존
如今更待何時足    淸夜行歌月到門
여금갱대하시족    청야행가월도문
 
【한자와 어구】
同學: 함께 배우다. 好看: 좋게 보다. 佳弟進: 좋은 아우 나아가다. 可耕: 가히 갈 만하다. 猶喜: 기쁘다. 薄田存: 거친 밭. // 如今: 지금과 같다. 更待: 다시 기대하다. 何時足: 어느 때 만족하다. 淸夜: 맑은 밤. 行歌: 거닐며 노래하다. 月到門: 달이 문에 비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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