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제(詩題)로 선택한 시적상관자인 석주(石洲)는 권필(權韠, 1569~1612)의 호다. 송강 정철의 문인으로 알려지고 있다. 성격이 자유분방하고 구속받기 싫어하여 벼슬하지 않은 채 야인으로 일생을 마쳤다. 명나라 사신이 왔을 때는 뛰어난 시재를 인정받아 포의의 신분으로 제술관이 되었다. 잘못된 사회상을 비판하는 시를 잘 썼다. ‘궁류시(宮柳詩)’를 지어 광해군의 노여움을 사 귀양 도중 장독으로 동대문 밖에서 죽었다. 시인은 천추를 오시하니 누가 나를 알아줄까, 어떤 이는 봉황지에 드는 것보다 낫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石洲-讀國朝諸家詩[석주-독국조제가시]
  / 매천 황현
천추를 오시하니 내가 나를 알아줄까
봉황지 드는 것보다 낫다고 했었던가
회계방 감히 들지 못해 황진보다 낫겠네.
傲睨千秋孰我知   人言勝到鳳皇池
오예천추숙아지   인언승도봉황지
縱然未入花溪室   不墮黃陳轉可師
종연미입화계실   불타황진전가사
 
황진보다 나아서, 외려 배울 만은 하겠네(石洲 權弼[11]:1569~1612)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천추를 거만하게 바라보니 누가 나를 알아줄까 / 어떤 이는 봉황지 든 것보다 낫다 했네 / 화계의 방에는 감히 들지는 못해도 / 황진보다 나아서, 외려 배울 만은 하겠네]라는 시상이다. ‘시인이여, 상상력을 발휘하라!’ 상상했던 시주머니를 펼쳐보니… ‘천추 누가 나를 알아 봉황지에 듦이 낫지, 화계 방에 들지 못해 배울 만은 하겠구나’라는 화자의 상상력이다.
위 시제는 [석주 권필의 시를 읽고]로 의역해 본다. 시어로 쓰인 ‘봉황지(鳳皇池)’ 이하는 최립이 권필에게 주었던 시에, ‘듣기로 지존께서 원고를 구해들이라 하셨다니, 봉황지에 직접 드는 것보다 훨씬 나은 걸(見說至尊徵稿入 全勝身到鳳凰池)’라 한 것을 가리킨다. 봉황지는 위진남북조 시대에 금원에 있었던 못 이름이다. ‘화계(花溪)의 방’은 당나라 두보와 같은 경지를 가리킨다. ‘화계(花溪)’는 중국 성도에 있는 완화계의 준말로, 두보가 만년에 은거했던 초당이란다. ‘황진(黃陳)’은 송(宋)나라 때의 시인인 황정견과 진사도를 가리킨다. 강서시파 선두 주자들이다.
시인은 이와 같은 시적 배경을 등에 업고 천추에 대한 생각을 더 삐딱하게 바라보고 싶었음을 알게 한다. 천추를 좀 더 거만하게 바라보니 누가 나를 알아나 줄까를 묻고 어떤 이는 봉황지에 드는 것보다 더 낫다 했었다는 자기 합리화의 지경에 도달하는 선경이란 꽃다발 한 묶음이다. 좋은 시상은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화자는 한 단계 앞선 시적인 구성을 하면서 시상의 멋을 우려내는 후정을 가득 쏟아내고 만다. 화계의 방에는 감히 사람이 들지는 못하더라도 황진보다는 더 나아서 외려 배울 만은 하겠다는 시상의 멋을 부린다. 어느 때 누구에게나 새로운 문제는 배워야 한다는 진리를 가르친다.
【한자와 어구】
傲睨: 흘겨보며 깔보다. 千秋: 천년의 세월. 孰我知: 누가 나를 알겠나. 人言: 어떤 이는 말한다. 勝到: 이르는 것이 낫다. 鳳皇池: 봉황지. // 縱然未入: 따라 들지 못하다. 花溪室: 화계의 실. 不墮黃陳: 황진에 떨어지지 않다(낫다). 轉可師: 가히 배울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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