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한 가락으로 서풍에 강개하게 노래하니
 
시제(詩題)로 선택한 시적상관자인 동명(東溟)은 정두경(鄭斗卿, 1597~1673)의 호다. 자는 군평(君平)이고, 이항복의 문인이다. 조부 정지승을 비롯한 선대가 시인으로 이름이 높았다. 14세 때 별시 초선에 합격했으며, 1626년 문장으로 유명한 중국 사신의 접대에 포의의 신분으로 참여하였던 인물이다. 1629년 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부수찬과 정언 등을 지냈다. 문장에는 사마천, 시로는 이백과 두보를 닮았다고 평했다. 시인은 한위에 찾아봐도 정녕 찾기 어려우니, 끝내는 창연히 고색이 짙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비장한 가락으로 서풍에 강개하게 노래하니(東溟 鄭斗卿[12]:1597~1673)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비장한 가락으로 서풍에 강개하게 노래하니 / 동명이 우뚝 솟아 쇠한 물결 되돌렸네 // 한위에서 찾아봐도 정녕 찾기가 어려우니 / 끝내는 창연히 고색이 짙어졌다네]라는 시상이다. ‘시인과 대화하려면 평설을 보라!’ 평설의 진수를 요약했더니만… ‘비장 가락 서풍 강개 동명 우뚝 솟은 물결, 한위 정녕 찾기 어려 창연 고색 짙어가네’라는 화자의 상상력이다.
 
東溟-讀國朝諸家詩[동명-독국조제가시]
  / 매천 황현
비장한 가락으로 서풍을 노래하니
동명이 우뚝 솟아 되돌린 쇠한 물결
끝내는 창연한 고색 정녕 찾기 어렵네.
變徵西風慷慨歌   東溟崛起挽頹波
변징서풍강개가   동명굴기만퇴파
求諸漢魏誠難似   終是蒼然古意多
구제한위성난사   종시창연고의다
 
위 시제는 [동명 정두경의 시를 읽고]로 의역해 본다. 시어로 쓰인 ‘강개(慷慨)’는 의롭지 못한 것을 보고 정의심이 복받치어 슬퍼하고 한탄함을 뜻한 상용어다. 강개청직. 감개무량 등의 성어로 두루 많이 쓰인 용어다. ‘한위{漢魏}’는 중국의 한나라와 위나라로, 산문으로는 당나라와 송나라의 고문이 발생하기 이전, 운문으로는 당나라의 근체시가 발생하기 이전의 시기에 해당된다. 이는 조선 후기에 들어오면서 정두경(鄭斗卿) 등 일군의 문장가들은 당송 이전, 한위 시대의 시문에 심취하여 악부체(樂府體)의 시를 짓는 등의 활발한 시도를 했던 시기다.
이와 같은 시대적인 시기나 시적인 풍부성이 완만하게 성숙되는 시기에 함께 묻어가야 된다는 신념에 불탔던 시인은 동명의 우뚝 솟는 시상을 들추어냈다. 비장한 가락으로 서풍에 강개하도록 노래하는가 하면, 동명이 이를 더욱 우뚝 솟도록 쇠했던 거센 물결을 되돌렸다는 후정의 한 소쿠리를 만지게 된다.
시인의 입을 빌은 화자는 이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시상의 멋을 되돌리는 시적인 맛과 멋을 우려낸다. 한위에서는 아무리 찾아봐도 정녕 찾기가 어려웠으니 끝내는 창연하게 고색이 짙었다는 상승곡선을 그려내는 후정이란 한 줌 시상의 맛을 멋지게 우려내는 가락을 동반한다. 동명의 우수한 시상이 이미 이런 단계에 이르렀다는 증거겠다.
 
【한자와 어구】
變徵: 비장한 가락. 西風: 서풍. 慷慨歌: 강개하여 노래하다. 東溟: 동명(정두경). 崛起: 우뚝 솟다. 挽頹波: 솨한 물결 되돌리다. // 求諸漢魏: 한과 위에서 찾다. 誠難似: 진실로 어려운 것 같다. 終是: 끝내. 蒼然: 창연하다. 古意多: 고색이 많이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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