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미 씨와 열연부 직원들이 밑 작업을 해놓은 억만마을 골목 담장

 사곡 억만 마을에 가면 오래된 마을 담장에 알록달록 동심을 자극하는 그림들이 그려지고 있다.

‘억만길 55’ 쯤을 가운데로 나뉘어 한 쪽은 단 한 사람이, 다른 한 쪽은 3~4명이 팀을 이뤄 벽화작업을 진행한다.
 
이 마을에 벽화를 처음 그리기 시작한 건 이은미(49)씨다. 광양과 순천 인근지역의 허름한 벽에 벽화를 그려 넣어 골목을 예쁘게 만들어가는 재능봉사를 하던 이 씨는 4년 전 억만 마을 노인정 벽에 처음으로 매화를 그려 넣었다.
 
사곡이 고향인 이 씨는 모교인 사곡초등학교 뒷동네 억만 마을이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점차 쇠락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일제가 전쟁 무기 조달을 위해 개발한 금광의 후유증으로 사곡 마을은 진폐증을 앓는 어르신이 많았고, 이 씨의 아버지도 진폐증으로 오랜 투병생활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
 
이 씨는 억만 마을에 벽화를 그리러 가면 아버지 생각이 나서 좋다고 한다.
 
이 씨가 이 마을에 벽화를 그리게 된 이유는 진폐증의 아픔을 간직한 어르신들이 아직도 국도와 고속도로에서 나는 끊임없는 자동차 소음에 시달리며 변전소에서 흐르는 나쁜 기운까지 견디며 살아가는 모습이 안타까워 어르신들에게 작은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서였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열연부의 자매마을이기도 한 억만 마을은 직원들의 봉사활동으로 마을 입구와 골목들은 어느 시골마을 보다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열연부 직원들은 사비를 들여 혼자서 벽화그리기에 열중하는 이 씨에게 페인트를 지원해주며 이 씨를 격려하고 있다.
 
이 씨는 열연부 직원들과 함께 본격 벽화작업을 위해 마을 벽을 깨끗이 청소하고 밑 작업을 마쳤으나 직원들의 사정으로 봉사일정을 서로 맞추지 못해 마무리 작업을 미뤄두고 있는 터였다. 그러던 어느 날, 벽화를 그리러 억만 마을에 간 이 씨는 깜짝 놀랐다.
 
이 씨와 열연부 직원들이 공들여 준비해놓은 깔끔한 벽에 느닷없는 낯선 그림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사태를 알아보기 위해 수소문한 결과, 광양시 문화예술과에서 벽화작업을 하는 ‘큰 그림 기획연구소’라는 업체와 계약을 하고 그 업체에게 그림을 그리게 했다는 것.
 
사실을 알게 된 이 씨는 황당했다. 큰 그림 기획연구소는 자신들이 1,800만원에 광양시와 계약을 했고 이곳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말하며 이 씨에게 오히려 불편한 마음을 드러냈다고 한다.
광양시 문화예술과 담당자를 찾아간 이 씨는 자신이 이곳에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을 설명했고 담당자는 사실을 시인하고 알았다며 이 씨가 밑 작업을 한 부분에 큰 그림기획연구소가 완성한 그림을 지우도록 조치했다.
이 씨는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고 또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니 사비를 들여서 하더라도 행복했다고 한다. 그래서 금전적인 문제 같은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이 씨가 기분이 상한 이유는 “시청 담당자가 먼저 그 부분에 대해 지원을 암시하는 듯한 분위기의 말을 꺼냈고 시간이 지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올해는 벽화예산이 전무하므로 지원이 어렵겠다’.”는 일관성 없는 태도였다고 한다. 게다가 담당자는 이 씨가 먼저 금전적인 지원을 요구했고, 어디서 어떻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주변 사람들이 이 씨에게 ‘정말 그런 것이었냐?“는 어이없는 물음에 이 씨는 현재 심한 정신적인 스트레스까지 겪고 있다고 한다. 이 씨는 자신이 문화예술과를 찾아간 이유에 대해 “포스코 열연부 봉사단과 함께 열심히 밑 작업을 해 놓은 공간에 ’떡 하니 그려져 있는 낯선 그림‘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 하러 간 것이었지 금전적인 문제를 이야기 하러 간 것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담당자는 “마을 벽에 그림 작업을 하다 만 곳이 있다는 사곡 마을과 관련한 민원이 접수됐었다. 마을 이장에게 확인해보니 오랫동안 작업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광영동에서 벽화작업을 하는 사회적 기업과 1,800만원의 수의계약을 체결하고 작업을 진행했다.”며 “연말에 바쁜 일이 많았고 12월이 지나면 벽화부분 예산이 없어지기 때문에 서둘러 사업을 집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이미 사업계약을 한 상태라 취소를 할 수는 없는 입장이고 작업을 진행하는 업체가 광영동 벽화작업도 잘 해 온 점을 충분히 생각해서 결정한 일이었다.”며 “전후사정을 꼼꼼히 확인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벽화 그리기 재능봉사자 이은미 씨가 벽화 작업을 위해 페인트와 붓을 준비하는데 든 비용은 110만원 남짓. 광양시가 사회적 기업 ‘큰 그림 기획 연구소’라는 업체에 의뢰해 196.88제곱미터에 그리는 벽화 계약 금액은 1,800만원.
 
사곡 억만 마을의 벽화작업은 지역과 함께하려는 기업과 고향을 아끼는 평범한 한 시민 재능봉사자의 마음이 한데 모아져 완성되는 아름다운 벽화로 남는 것이 더 좋음에도 상황을 꼼꼼히 확인하지 못하고 시간에 쫓겨 일을 처리한 광양시의 졸속행정으로 인해 불용처리 해도 되는 1,800만원의 예산이 낭비되었음은 물론 순수한 재능봉사자의 마음에 상처만 남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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