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농촌이나 도심을 망라하여 밤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린다. 짝을 찾는 소리임에 틀림없다. 낮에는 실컷 자다가 밤이면 먹을 것을 찾는 애잔한 소리란다. 봄에 태어나서 여름에 훌쩍 자라버린 벌레들이 어미가 그리워서 찾는 소리란다. 얼굴도 보지 못한 아버지의 얼굴이 그리워서일까?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형제들이 제 갈 길을 찾아 떠났는데 형제를 그리는 소리는 아닐까? 시인은 산밭 김매고 나면 품삯을 준비해야 하지만, 사주는 가져와서 아직 동이에 남아 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앞으론 서로 만나 다른 얘기 좀 들었으면(夜坐2)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율시 후구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산밭 김매고 나면 품삯을 준비해야 하지만 / 사주를 가져와서 아직 동이에 남아 있네 // 뽕 삼 얘기만 하는 것 또한 흥미가 없으니 / 앞으로는 서로 만나 다른 얘기 좀 들었으면] 이라고 번역된다. 시상 주머니를 열면서 시인과 대화하듯이 시심의 세계를 들춘다. ‘김맨 품삯 준비하고 동이에는 사주 남고, 뽕 삼 예기 흥미 없어 다른 말도 들었으면’이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夜坐(야좌)[2]
 
                   / 매천 황현
 
산밭에 김을 매면 품삯을 준비하고
사주를 가져와도 동이에 술은 남네
뽕 삼의 그 얘기일랑 앞으로는 안 했으면.
山田鋤了須防雇    社酒持來剩在樽
산전서료수방고    사주지래잉재준
滿說桑麻亦無味    從今相見待他言
만설상마역무미    종금상견대타언
 
위 시제는 [밤에 서로 마주 앉아서2]로 번역된다. ‘사주(社酒)’는 춘사나 추사를 지내기 위해 머리 목욕으로 정성 드려 제계하고 음식을 장만하면서 빚었던 술이다. 그래서 흔히 봄에 담는 술을 춘주(春酒)라 했고, 가을에 담는 술을 추주(秋酒)라 했을 것이다. 또한 이 술을 마시고 농사를 기원하게 되면 풍년이 들면서 무탈하다는 속설이 전해 오고 있다. 이어서 추사 때에는 추주를 마시면서 가을 풍년에 대한 감사의 인사는 물론 한겨울의 무탈까지 기원했을 것이다. 
 
                김맨 품삯 준비하고 동이에는 사주남고   
                뽕 삼 예기 흥미 없어 다른 말도 들었으면
 
시인은 밤에 골똘한 생각에 잠기면서 앉아있더니만, 이제는 낮에 있었던 김매던 일을 생각하게 된다. 산밭에 김을 매고 나면 오늘 일의 품삯을 준비해야 하지만, 그래도 제사를 모시기 위한 사주를 가져와서 아직도 동이에 남아 있다는 선경의 시상은 밤과 낮을 연장시켜 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모양새를 갖춘다. 밤을 낮의 연장선상에서 보았다.
화자는 낮에 간단히 했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하루 일을 보냈던 일을 생각했을 것으로 보인다. 애써 지은 뽕이며 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제 흥미가 없을 것이니 앞으로는 서로 만나 다른 얘기 좀 들었으면 하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후정을 담아내는 그릇치고는 시상의 진폭이 매우 작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작은 것에서 큰 것을 찾는 정반합의 진리도 때로는 멋을 자아내겠다.
【한자와 어구】
山田: 산밭, 鋤了: 호미로 매다. 須防雇: 품삯을 준비하다. 社酒: 사주. 持來: 가지고 오다. 剩在樽: 동이에 남아 있다. // 滿說桑麻: 뽕 삼의 이야기만 하다. 亦無味: 또한 흥미가 없다. 從今: 이제는. 앞으로는. 相見: 서로 보다. 待他言: 다른 말을 기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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