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12일 한국 인천공항에 돌아와 가장 먼저 한 것은 휴대전화의 정지를 해지한 일이었다. 
휴대전화 정지이력에 찍혀있는 일수는 327일이었다. 327일의 중국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마지막 기고문을 작성하고 있다.
사람에 따라 327일의 시간은 짧을 수도 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에게 중국에서의 327일의 시간은 길었다. 단기적으로 해외에 나가있던 경우는 있었지만 ‘유학’이라는 명목 아래 ‘나의 집’을 해외에서 마련하고 생활한 경험은 처음이었고,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새로운 언어 문화권에서의 생활이었기에 더욱 긴 시간으로 느껴졌다.
모든 일과 인생에는 단계가 있듯이 필자의 중국 생활에도 단계가 있었다. 
언어를 익히고 ‘나의 집’을 진정한 ‘나의 집’으로 받아들이던 적응단계를 거쳐 언어를 활용하고 생활에 녹아드는 정착단계가 있었다. 그리고 중국에서 느낀 것을 정리하고 배운 것과 잃은 것에 기뻐하고 아쉬워하는 마무리 단계를 거치고 있다. 이번 기고는 마무리 단계의 한 과정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알베르 까뮈’는 ‘당신은 경험을 창조해 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반드시 체험해야 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렇다 경험은 그런 것이다. 그렇기에 경험이 없던 필자의 적응단계는 힘들었다. 
중국어를 학습해본 경험이 없었고 해외에서 혼자 체류하기는 쉽지 않았다. 모든 것에 새로움을 느꼈고 모든 것이 서러웠고 낯설었다. 마치 처음 대학에 입학하고 자취를 시작하던 그때의 기분과 같았다. 의지할 사람 없는 혼자인 상태. 그것이 필자의 적응기였다. 
때문에 사람을 찾아다녔다.
중국인, 한국인, 그 이외의 외국인, 그리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도움을 청했고 감사함을 느끼며 의지하고 서로 도왔다. 그렇게 비자문제를 해결해 나갔고 학교에 적응했다. 이 과정에서 평소 자존심이 강했던 필자의 성격이 유해지고 실리적으로 변했던 것 같다. 도움을 청하는 게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성격이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이 정답이며, 사람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서로 주고받는 도움은 큰 게 아니라는 것도 느꼈다. 현금이 오가는 도움이 도움만은 아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사소하게 본인이 알고 있는 정보를 나눠주는 것도 큰 도움이고 서로에게 삶의 지혜가 되어준다.
필자의 적응에 큰 도움을 준 한국인 친구 이승연과 중국인 친구 钟丽琴(zhongliqin, 종려금)에게 이번 기고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들 같은 친구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필자의 중국생활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다.
첫발을 떼고 본격적인 학업과 인턴생활에 익숙해져가는 스스로를 보며 기뻤다. 이런 기쁨은 종종 오만을 불러왔고 실수를 반복했다. 크고 작은 학업과 일에서의 실수를 거치며 노하우를 축적하고 중국과 중국생활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갔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어느 샌가 출근하는 버스를 익숙하게 타고, 늦은 시간에도 불안함을 느끼지 않으며 혼자서도 어디든 찾아가고, 무엇이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제야 중국에서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씩 홍콩에 놀러갔다가 선전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해외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는 기분처럼 ‘집에 돌아왔구나! 오늘 참 힘들었다. 집에 가서 쉬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집’이었고 나의 생활공간이었다.
 
황준영(경희대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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