揖翠軒-讀國朝諸家詩[읍취헌-독국조제가시](2)
/ 매천 황현
 
택지는 땀 흘리고 사화는 자빠지고
연소한 기재들은 당하지 못했구려
노련한 읍취헌 기재 가을 일찍 맞았네.
擇之流汗士華僵   年少奇才不可當
택지류한사화강   연소기재불가당
老氣橫秋嫌太早   莫將瓊樹怨飛霜
노기횡추혐태조   막장경수원비상
 
 
시제(詩題)로 채택한 시적상관자인 읍취헌(揖翠軒) 이행(李荇)은 본관이 덕수이고 자는 택지(擇之), 호는 용재(容齋), 읍취헌 등으로 썼다. 기묘사화 이후 승승장구하여 이조 판서, 우의정에 올라 대제학을 겸한 인물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찬술에 참여했고, 김안로를 논박하다가 함종에 귀양 가서 죽었다. 문장에 뛰어나고 글씨와 그림에도 능하였다. 시호는 문헌(文獻)으로 개시(改諡)되었으며, 문집에는 ‘용재집’ 등이 있다. 시인 택지는 땀 흘리고 사화는 자빠지니, 연소한 기재들을 당해 내지 못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노련한 기재는 너무 일찍 가을에 맞섰으니(揖翠軒 이행李荇2: 1478∼1534)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택지는 땀 흘리고 사화는 자빠지니 / 연소한 기재들을 당해 내지 못하였구나 // 노련한 기재는 너무 일찍 가을에 맞섰으니 / 경수에 서리 날림을 원망하지 마시라]라는 시상이다. 이어진 오른쪽 평설에서 시상의 범상함을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택지 사화 자빠지니 연소 기재 당치 못해 노련 기재 가을 맞아 경수 서리 원망 말게’ 라는 화자의 상상력이다.
위 시제는 [읍취헌 이행의 시를 읽고]로 의역해 본다. 시어로 쓰인 ‘사화(士華)’는 대사헌, 이조 판서, 영의정을 역임한 벌쭉한 인물이기도 하다. 당대에 손꼽히던 문장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심정(沈貞) 등과 기묘사화를 주도하여 신진사류를 해친 탓에 후대에까지 소인배로 지목되었으며, 만년에 자괴감을 못 이겨 자신의 저작을 모두 불태워 버렸던 인물이다. 자기를 부끄러워 그렇게 했음도 보인다. ‘경수(瓊樹)’는 보배로운 자질을 지닌 읍취헌(挹翠軒) 박은(朴誾)을 비유한 말로 보인다. 그렇지만 뛰어난 시재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찍 죽었음을 빗댄다.
시인은 읍취헌의 고고한 사문의 문장력과 시학의 도도함을 높이 평가하는 모습을 보인다. 택지는 구슬땀을 흘리면서도 결국 사화에 자빠지고 말았으니 연소한 기재들을 결국은 당해 내지 못하였다는 소회를 피력하게 된다. 문장과 시에 능했다고 다 잘한 것만은 아니겠다. 자기를 돌아 볼 줄 알고 끈끈한 처세가 더욱 중요함을 말해 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렇지만 화자는 읍취헌의 노련한 기운과 재주가 한 여름에 꽃을 피울 겨를도 없이 수확을 거두어버리는 늦가을을 맞이했다는 비유법 덩치를 쓰고 있다. 노련한 그의 기재(氣才)는 너무 일찍이 풍성한 수확인 양 가을에 맞게 되었으니 보배스러운 경수에 서리가 날렸던 그 때를 원망하지 마시라고 충언한다.
【한자와 어구】
擇之: 택지(이행). 流汗: 땀을 흘리다. 士華僵: 사화(박은)는 자빠지다. 年少: 연소하다. 奇才: 기재다. 不可當: 당하지 못하다. // 老氣: 노련한 기재. 橫秋: 비낀 가을. 嫌太早: 너무 가뭄이 싫다. 莫將: 장차 ~하지 말라. 瓊樹: 경수. 怨飛霜: 서리 날림을 원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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