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희 구 (필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시조시인 / 문학평론가 / 문학박사
宿金浦酒幕(숙김포주막)[1]
/ 매천 황현

다리가 끊어져서 빗돌로 나무다리
고을은 피폐해져 나무가 성이 되고
들판 집 봄이 되면은 강과 하늘 더 밝아.
斷橋碑作渡    殘邑樹爲城
단교비작도    잔읍수위성
野屋春還白    江天夜更明
야옥춘환백    강천야갱명
 
빗돌로 나무다리 삼아 나무 성을 만들며, 
들판 집은 봄에 희고 강과 하늘 더욱 밝네
 
서울로 들어오는 길목이 김포였겠다. 지금 도로 구조와 비교하는 일은 의미가 없다. 육로를 이용할 수도 있었겠지만, 해운을 이용하다 보면 김포와 강화를 지나는 염하강(鹽河江)의 통로를 이용하는 배를 이용하여 입경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보면 운양호 사건 등 입경(入京)의 통로 구실을 했음 직하는 도시가 김포였을 것이다. 발도 아프고 목이 컬컬하여 주막을 찾은 시인의 피곤함을 알 것 같다. 시인은 다리 끊어져서 빗돌로 나무다리 만들고, 고을은 피폐해져 나무로 성을 만들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강과 하늘은 밤이 들면 더욱 더 밝구나(宿金浦酒幕1)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율시의 전구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다리가 끊어져서 빗돌로 나무다리 만들고 / 고을은 피폐해져 나무로 성을 만들었구나 // 들판의 집은 봄이 되면 더욱 하얘지고 / 강과 하늘은 밤이 들면 더욱 밝구나]라고 번역된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빗돌로 나무다리 삼아 나무 성을 만들며, 들판 집은 봄에 희고 강과 하늘 더욱 밝네’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김포주막에서 하룻저녁 자면서1]로 번역된다. 김포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 걸음 달려 강화의 북단에는 안보관이 있어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전망대는 우리의 마음을 섬뜩하게 한다. 멀리 예성강, 개성공단, 임진강과 한강이 합류하는 지역을 조망할 수 있다. 김포 애기봉전망대와 파주 오두산통일전망대, 중립지역인 나들섬 예정지, 북한주민의 생활모습과 선전용 위장마을, 송악산, 각종 장애물 등을 조망할 수 있다. 이런 지역을 지나서 주막에 들린 시인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곳은 아마도 주막이었을 것이다.
시인은 전쟁 참화를 견디지 못하여 다리가 끊어졌음을 상상하면서 고을은 피폐해졌음을 떠올리는 시상이다. 전쟁의 인해 다리가 끊어져서 빗돌로 나무다리 만들어 놓았고, 고을은 피폐해져서 나무로 성을 만들었구나 라는 선경의 시상은 당시의 참화를 알 수 있게 한다. 조선을 거치면서 많은 침략과 전쟁의 참화를 그대로 말해 준다고 하겠다.
화자는 본래의 삶의 터전이 되지 못하고 어수선하기만 한데 자연의 변함이 없이 계절과 시기를 같이 한다는 생각을 했다. 들판의 모든 집들은 봄이 되면 더욱 흰색을 띠겠고, 강과 하늘은 밤이 들면 더욱 밝다는 후정의 시상을 차분하게 놓고 있다. 김포의 하룻저녁의 소회를 담았지만 나라 흔적의 일면까지 보인다.
 
【한자와 어구】
斷橋: 다리가 끊어지다. 碑作渡: 빗돌로 나무다리를 만들다. 殘邑: 고을이 피폐해 지다. 樹爲城: 나무로 성을 만들다. // 野屋: 들판 집. 春還白: 봄이 되면 흰색이다. 江天: 강과 하늘. 夜更明: 밤이 되면 더욱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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