隔江望幸州(격강망행주)[2]
/ 매천 황현

해지고 저물어도 봉화는 연락 없고
봄바람 부는 속에 한강 물 유유하네
종군 뜻 평생 있어도 감행 못한 이 몸은.
落日邊烽斷    春風漢水流
낙일변봉단    춘풍한수류
平生請纓志    揮涕暮江州
낙일변봉단    휘체모강주
 
변방 봉화 연락 없고 봄 바람 속 한강 물만, 
종군할 뜻 평생 있어 눈물 훔쳐 날 저물고
 
행주산성 내에는 권율 장군 영정을 모셔놓은 충장사가 있다. 원래 행주나루터 안마을에 정면3칸, 측면1칸의 규모의 행주기공사가 있었으나 6.25전쟁 때 소실되고 1970년 대대적인 행주산성 정화공사 때 이곳에 다시 짓고, 정자와 문을 세워 경역을 조성했다. 1602년 건립한 행주대첩비가 비각 속에 남아 있으며 1963년에 세운 대첩비도 서 있다. 이곳은 자유로가 개통되고 신행주대교가 완공되면서 교통이 편리하다. 시인은 해가 저물어도 변방의 봉화는 연락이 없고, 봄바람 부는 속에 한강물만 흐른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나라를 위해 종군할 뜻이 평생 있었건만(隔江望幸州2)로 제목을 붙여 본 율의 후구인 오언이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해가 저물어도 변방의 봉화는 연락이 없고 / 봄바람 부는 속에 한강 물만 흐르네 // 나라를 위해 종군할 뜻이 평생 있었건만 / 눈물 훔치는 사이 강가에는 날이 저무네]라고 번역된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유추해 본다. ‘변방 봉화 연락 없고 봄 바람 속 한강 물만, 종군할 뜻 평생 있어 눈물 훔쳐 날 저물고’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강 건너 행주산성을 바라보며2]로 번역된다. 매년 3월 14일 행주산성에서는 임진왜란 때 왜군을 격파하는데 큰 공을 세운 권율 도원수의 행주대첩을 기념하기 위한 제례행사를 개최한다. 행주대첩제는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충장사에서 행해지는 이 제례에는 고양시장이 초헌관으로 향을 피우고 술을 따라 모토 위에 붓는 강신례, 장군의 신위를 봉헌하는 헌폐, 제사에 사용한 술과 제물을 마시고 먹는 음복례, 그리고 망요례, 사신례 등의 순으로 제례가 진행된다. 복원된 충장사에서 제례한 유래다.
시인은 이와 같은 역사적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행주산성까지 당도하지는 못했지만 멀리서나마 조망하고 싶었음을 알게 된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도 변방의 봉화는 아무런 연락이 없고, 봄바람 부는 속에 한강물만 유유히 흐른다는 당시의 봉화제도 생각하는 후정의 시상을 열어두었다.
화자의 기막힌 시심은 이어지는 미구(尾句)인 결말에서 보이게 되는데 보국하려는 마음을 담아 훗날 절명시를 남기게 되는 은유된 마음을 읽게 된다. 나라를 위해 종군(從軍)할 뜻이 평생 동안 있었건만 그렇지 못한 심정 눈물을 훔치는 사이 강가에는 날이 저물었다는 후정을 다복하게 담아 놓았다. 진정으로 미세하다고 할런지는 모르겠지만, 진정한 애국을 엿보는 구절에 가슴이 저미어진다.
 
【한자와 어구】
落日: 해가 저물다. 邊烽斷: 주변 봉화가 끊어지다. 春風: 봄바람. 漢水流: 한강 물이 흐르다. // 平生: 평생. 일생동안. 請纓志: 종군할 뜻을 청하다. 혹은 생각하다. 揮涕: 눈물을 훔치다. 暮江州: 강가의 날이 저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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