村居暮春(촌거모춘)[1]
/ 매천 황현

활짝 연 대나무 창 열흘이 지났구려
고운 해 맑은 하늘 누대에 가득하네
늦은 봄 알지도 못해 버들개지 어지럽고.
竹牖經旬始暢開    晴天姸日滿池臺
죽유경순시창개    청천연일만지대
不知春暮已如許    飛絮紛紛去又來
부지춘모이여허    비서분분거우래
 
대나무 창 활짝 열고 맑은 하늘 가득하네, 
늦은 봄을 알지 못해 버들개지 휘날리네
 
모춘의 뜻은 대체적으로 늦봄인 음력 3월을 가리킨다. 이와 동의어로 모춘삼월(暮春三月)이라 하여 봄이 저물어 가는 음력 삼월이란 뜻이다. 곧 음력 3월을 달리 부르는 말로 모(暮)는 해가 지평선 너머 숲으로 사라지는 것에서 때가 늦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일 년을 석 달씩 4계절로 나눈 가운데 모춘은 봄에 해당하는 석 달(1월·2월·3월) 중 봄이 저무는 달이라는 뜻이다. 만춘(晩春) 또는 계춘(季春)이라고도 한다. 시인은 대나무 창 열흘 만에 활짝 열었더니, 맑은 하늘 고운 해 연못 누대 가득하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늦은 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지도 못한데(村居暮春1)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배율이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대나무 창 열흘 만에 활짝 열었더니 / 맑은 하늘 고운 해 연못누대 가득하네 // 늦은 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지도 못한데 / 버들개지 어지러이 흩날려 왔다 갔다 하네]라고 번역된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대나무 창 활짝 열고 맑은 하늘 가득하네, 늦은 봄을 알지 못해 버들개지 휘날리네’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늦봄을 시골에서 보내면서1]로 번역된다. 중국 당나라 두보의 시 ‘두견(杜鵑)’에서 “늦봄에 두견새 날아와 숲 사이에서 슬프게 운다(杜鵑暮春至 哀哀叫其間)”라고 했던 구절과 ‘모춘(暮春)’에 “늦봄 물가에 서 있던 원앙과 해오라기 새끼 데리고 날아올랐다 풀숲에 돌아오네(暮春鴛鷺立洲渚 挾子翻飛還一叢).”라고 한 구절들이 있다. 조선시대 작자 미상의 시조에 “동졍에 건닌 달도 금음이면 무광이요, 무릉도화도 모츈 만나면 쓸 곳이 업다”라고 했고, 다른 작자 미상의 시조엔 “暮春 三月 節조흔 제 春服 初成 때 맛거늘”이라고도 했다.
모두가 모춘에 대한 시인들의 아쉬움을 한껏 담아냈다고 할 수 있겠다. 시인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나 있듯이 대나무 창에 열흘 만에 활짝 열었더니만, 맑은 하늘 고운 해 연못누대 가득하다는 선경의 시상은 풍만하기만 하다. 봄이자만 봄 같지 않는 추위에 창문을 닫아걸고 있었건만 모처럼 포근한 기운을 받아 문을 열게 되었다는 모춘의 환희를 열어젖힌다.
화자는 아직 봄이 다 지났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버들개지가 실눈을 뜨는 그런 모습에서 봄이 스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됨을 알게 된다. 늦은 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아직 알지는 못한데도. 버들개지 어지러이 흩날려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아 알게 된다는 후정의 시상을 다복이 담았다.
 
【한자와 어구】
竹牖: 대나무 창. 經旬: 열흘 만에. 始暢開: 비로소 활짝 열었다. 晴天: 맑은 하늘. 姸日: 고운 해. 滿池臺: 연못 누대 가득하다. // 不知春暮: 늦봄을 알지 못하다. 已如許: 이미 얼마나 지나다. 飛絮: 버들개지가 날다. 紛紛: 흩날리다. 去又來: 가고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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