村居暮春(촌거모춘)[3]
/ 매천 황현

사립문 비껴 닫혀 시내엔 바람 불고
물 넘친 못 둑에는 좁은 길 나 있다네
꾀꼬리 끊어졌으니 이랴 저랴 소 몰고.
荊扉斜掩碧溪風    水溢塘坡細路通
형비사엄벽계풍    수일당파세로통
衝却幽鶯聲乍斷    叱牛人過柳陰中
충각유앵성사단    질우인과유음중
 
 
사립 닫고 시내 바람 못 둑에는 좁은 길이, 
꾀꼬리 소리 끊어지고 소 몬 사람 버들 지나
 
조선시대 문관을 지냈던 하의생(荷衣生) 홍적(洪迪: 1549년~1591) 시인은 작품 [모춘(暮春)]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풀 더부룩 깊은 궁항이라 찾은 손님 드물고(草深窮巷客來稀) / 새 우는 소리 속에 낮잠을 자네(鳥啼聲中午枕依) // 차 마시고 할 일이 없이 창밖을 보니(茶罷小窓無個事) / 떨어지는 꽃잎 마구 날리는구나(落花高下不齊飛)]라고 했다. 이 작품을 읽으면 매천 시인의 작품과 은근하게 비교된 부분이다. 시인은 가시 사립문 비껴 닫혔고 푸른 시내 바람 불고, 물 넘친 못 둑엔 좁은 길 나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이랴 자랴 소모는 사람 버들그늘 지나네(村居暮春3)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배율이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가시 사립문이 비껴 닫혔고 푸른 시내 바람 불고 / 물이 넘친 못 둑에는 좁은 길 나있네 // 숲 속 꾀꼬리 소리 끊어진다 했더니만 / 이랴 자랴 소 모는 사람 버들그늘 지나네]라고 번역된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사립 닫고 시내 바람 못 둑에는 좁은 길이, 꾀꼬리 소리 끊어지고 소 몬 사람 버들 지나’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늦봄을 시골에서 보내면서3]로 번역된다. 조선시대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 1538∼1593) 모춘(暮春) 작품도 있어 이 또한 시적 대비성에 의한 늦봄을 시샘하는 듯함을 인지하면서 작품성을 대비해 본다. 시적 대비 자리에 놓았던 하의생 홍적의 작품에선 풀이 더부룩하게 깊은 궁항이라 찾은 손님이 드물고, 새우는 소리 속에 낮잠을 청해 잔다는 선경의 시상을 일구었다. 이어지는 후정에서는 차를 마시고 할 일도 없이 창밖을 내다보았더니만 마구 떨어지는 꽃잎이 사방으로 흩날리고 있다는 서정적 지향세계까지 그려놓았다.
낮잠을 자는 하의생의 시심과는 다르게 펼쳐지는 시인은 푸른 시내에 부는 바람과 물이 넘친 둑을 연상해 보이는 모습이다. 가시 사립문은 비껴 닫혔고 푸른 시내 바람 부는데 물이 넘치는 못 둑에는 좁은 길 나있다는 선경의 시상이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겠다는 시적인 몸부림을 만난다.
화자는 꾀꼬리가 잠을 청하러 간 사이에 소를 몰고 밭 갈기 위한 농부의 발길이 분주했었다는 시상 앞에 자연의 섭리를 만난다. 숲 속의 꾀꼬리 소리가 자지러지다가 끊어진다 했더니만, 그 때를 놓칠세라 이랴 자랴 소 모는 사람 버들그늘 지나가고 있다는 후정을 다소 곳이 담아냈다. 문학의 특수성을 거스르지 않는 자연의 섭리에 찾으려는 시인의 마음을 읽게 된다.
 
【한자와 어구】
荊扉: 가시 사립문. 斜掩: 비껴 닫다. 碧溪風L 푸른 시내 바람. 水溢: 물이 넘치다. 塘坡: 못 둑. 細路通: 좁은 길이 나있다. // 衝却幽鶯: 부딪친 꾀꼬리. 聲乍斷: 소리 잠시 끊어지다. 叱牛: 이랴 자랴(소를 모는 소리) 人過: 사람이 지나다. 柳陰中: 버들 그늘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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