除夜(제야)[1]
/ 매천 황현

한 해가 저무는데 지난해 다른 이 밤
의병들 시체들이 눈 속에 쓰러졌구나
거리엔 정치꾼들이 목전에서 설쳐대고.
艱難又到歲除天    此夜今年異往年
간난우도세제천    차야금년이왕년
幾處猿虫僵雪裏    千郊豺虎起人前
기처원충강설리    천교시호기인전
 
한 해가 또 저무는데 지난해와는 다르네, 
의병 시체 즐비한데 정치꾼들 설쳐대네
 
제(除)는 섣달그믐을 뜻하고, 야(夜)는 밤을 뜻하는 말로 섣달그믐날 밤을 가리킨다. 수옹(壽翁) 최해(崔瀣:1287∼1340)의 ‘스물한 살 섣달그믐날 밤(二十一除夜)’이란 작품을 살펴보면 짤막한 오언절구에 공감대를 형성한다. “나는 이미 나이 지났는데(我今旣云過) / 일찍 일명의 벼슬도 못 얻었네(一命未曾縻) // 스물한 살의 섣달그믐 밤(二十一除夜) / 속절없이 해를 보며 슬퍼한다네(空作徂年悲)”라는 구절이다. 시인은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또 다시 저물어 가는데, 올해 이 밤은 지난해와는 사뭇 다르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곳곳에 의병들 시체 눈 속에 쓰러져 있는데(除夜1)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율시의 전구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다난했던 한 해가 또 다시 저물어 가는데 / 올해 이 밤은 지난해와는 많이 다르구나 // 곳곳에 의병들 시체 눈 속에 쓰러져 있는데 / 거리마다 정치꾼들은 목전에서 설쳐대네]라고 번역된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한 해가 또 저무는데 지난해와는 다르네, 의병 시체 즐비한데 정치꾼들 설쳐대네’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섣달 그믐날 밤에1]로 번역된다. 수옹 최해의 오언절구에 공감대를 형성한다. 시적상관자인 수옹은 이미 나이 지났는데 일찍이 일명 벼슬도 못 얻었다는 선경의 시상을 이끌어 내고 있다. 다시 스물한 살의 섣달그믐 밤에 속절없이 또 한 해를 보면서 나이 먹어 감을 슬퍼한다는 후정의 시상에 시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 또한 나이 먹어 감을 한탄하는 감성적인 제야에 무게를 두는데 반하여 한 편에서는 의병 시체가 즐비한데 반해 정치꾼들이 나라를 통째로 넘겨주는 못난 꼴을 보면서 착잡한 심정을 보이고 있다.
시인은 시를 쓴 시기가 1907년으로 알려진다면 그가 경술국치를 보고서 절명시 4수를 남기고 자결하기 3년 전이니 그도 그럴 만도 하겠다. 다난했던 한 해가 또 다시 저물어 말없이 가는데, 올해의 이 밤도 지난해와는 많이 변화가 있어 다르다는 선경의 시상을 일으킨다. 나라가 어수선할 때 맞이하는 제야가 올해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두려워하는 마음을 담았다.
화자는 지금 못 볼 모습을 눈여기며 차마 땅이라도 치면서 한탄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본다. 나라 안 곳곳에는 의병들의 시체가 즐비하게 눈 속에 쓰러져 있는데도 거리마다 못난 정치꾼들은 목전에서 제 잘난 모습으로 설쳐댄다는 후정의 시상이다. 많은 의인들이 자결하는 모습을 본 심정의 토로다.
 
【한자와 어구】
艱難: 다난하다. 又到: 또 일어나다. 歲除天: 한 해가 지나다. 此夜今年: 금년의 이 밤. 異往年: 지난해와는 다르다. // 幾處: 곳곳에. 猿虫: 의병들. 僵雪裏: 눈 속에 쓰러지다(僵:쓰러질 강). 千郊: 거리마다. 豺虎: 정치꾼들. 起人前: 목전에서 설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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