除夜(제야)[2]  / 매천 황현

화내도 소용없고 하늘도 무심해라
땅 치며 미친 노래 자신만 가련할 뿐
봄소식 아득하구나 상상하기 싫은데.
向空怒罵終無補    斫地狂歌只自憐
향공노매종무보    작지광가지자련
設想不堪鷄唱後    王春消息轉茫然
설상불감계창후    왕춘소식전망연
 
화내 봐도 소용없고 자신만이 가련할 뿐, 
상상하기 싫어져라 봄소식만 아득한 걸
 
고려 말 때 고적(髙適: 중국에도 동명이인이 있음)이 제야(除夜)를 시제로 한 다음 작품이 전한다. [여관 차가운 등불 아래 홀로 잠 못 이뤄(旅館寒燈獨不眠) / 나그네 속마음 무슨 일로 이리 처절해(客心何事轉凄然) // 고향서도 오늘밤 먼 곳의 나 생각하리니(故鄕今夜思千里) / 서리 같은 흰 머리 또 한 해 지나가네(霜鬢明朝又一年)]라고 했다. 매천의 제야와 비교해 보면 확연하게 다른 제야 한 구절이다. 시인은 하늘 향해 화내 봐도 끝내 아무 소용이 없고, 땅을 치며 노래해도 자신만 가련할 뿐이라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정월 봄소식이 갈수록 아득하기만 한 것을(除夜2)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율시의 후구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하늘 향해 화내 봐도 끝내 아무 소용이 없고 / 땅 치며 미친 노래 자신만 가련할 뿐 // 상상하기 싫어라, 닭이 울고 난 뒤에 / 정월 봄소식 갈수록 아득하기만 하네]라고 번역된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화내 봐도 소용없고 자신만이 가련할 뿐, 상상하기 싫어져라 봄소식만 아득한 걸’ 이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섣달 그믐날 밤에2]로 번역된다.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음이 시상의 곳곳에 묻어나는 한탄을 본다. 평자가 같은 시제로 쓴 시적 대비자로 선정한 고적의 시상과는 또 다른 대비가 될 수 있겠다. 여관 차가운 등불 아래 홀로 잠 못 이루고 있는데, 나그네 속마음 무슨 일로 이리 처절해 하는가 라는 선경의 시상을 놓고 있다. 고향에서도 오늘밤 먼 곳의 나 생각하리라는 상상을 하면서 서리와 같은 흰 머리 또 한 해 지나감을 한탄하는 시상의 대비다. 가련한 나라꼴을 목전에 다가옴을 한탄해 보인다.√ 시인은 이제 누구를 한탄하거나 나무랄 수는 없다. 하늘에나 한탄하는 수밖에…하늘을 향해 화를 내봐도 끝내 아무 소용이 없고, 땅을 치며 위안의 노래해 봐도 자신만 가련할 뿐이라는 처량한 자신의 아픔이란 선경의 시상을 놓는다. 하늘과 자신이라는 대구를 놓아가면서 원망하는 대상자를 찾고 있는 모습이다.
화자는 누구를 원망하거나 제야의 의미를 상상하기 싫다는 절망적인 시대적인 배경에 몸부림치고 있다. 결국 이제는 ‘상상하기조차 싫다’ 시정(詩情)을 노출하더니만 닭이 울고 난 뒤에는 이제 정월 봄소식 갈수록 아득하기만 하다는 비통의 심정으로 후정을 담는다. 나라(國)와 나(我)라는 동위 선상에 놓고 희망이 없음을 보인다.
 
【한자와 어구】
向空: 하늘을 향하다. 怒罵: 화를 내다. 終無補: 끝내 소용이 없다. 斫地: 땅을 치다. 狂歌: 노래하다. 只自憐: 다만 스스로 가련하다. // 設想不堪: 상상하기 싫어라. 鷄唱後: 닭이 울고 난 뒤. 王春消息: 정월 봄소식. 轉茫然: 아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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