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희 구 (필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시조시인 / 문학평론가 / 문학박사
賣暑(매서)[1]
/ 매천 황현

아이들 봄추위 잊고 고드름 깨물면서
이웃집 바라보며 불러댄 이쪽저쪽
떼 지어 시끄럽구나 동네마다 들썩들썩.
塡街小兒無春寒    嚼冰如破蕪菁根
전가소아무춘한    작빙여파무청근
西舍東隣相望呼    刁聒合杳連村喧
서사동린상망호    조괄합묘연촌훤
 
봄추위도 모두 잊고 무를 씹듯 고드름을, 
이웃집을 불러대도 동네마다 시끄럽네
 
대보름날이 되면 아이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이웃에 사는 친구를 찾아가 그의 이름을 부른다. 친구에게 이름이 불린 아이가 무심코 대답을 하면, ‘내 더위 사가라’ 또는 ‘내 더위 네 더위 먼 데 더위’ 하고 외친다. 먼저 이름을 부른 사람은 더위를 팔게 되고, 대답을 한 사람은 친구의 더위를 산 셈이 된다. 그러나 친구가 더위를 팔기 위하여 이름을 부른 것임을 알았을 때는 대답 대신 ‘내 더위 사가라’ 외친다. 시인은 골목에 가득한 아이들 봄추위도 잊은 채, 무를 씹듯이 고드름을 깨물어 먹고 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들썩들썩 떼를 지어서 동네마다 시끄럽구나(賣暑1)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배율이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골목에 가득한 아이들 봄추위도 잊은 채 / 무우를 씹듯이 고드름을 깨물어 먹고 있네 // 이쪽저쪽 이웃집을 바라보며 불러 대니 / 들썩들썩 떼를 지어서 동네마다 시끄럽구나]라고 번역된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봄추위도 모두 잊고 무를 씹듯 고드름을, 이웃집을 불러대도 동네마다 시끄럽네’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내 더위사세요1]로 번역된다. 대보름날의 행사가 여름철 더위에 영향을 준다고 믿기 때문에, 사람뿐만 아니라 심지어 가축들의 더위를 막을 예방책으로 이와 같은 풍습이 있었다. 이는 소나 돼지의 목에 왼새끼를 걸어주거나 또는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무의 가지를 꺾어 둥글게 목에 걸어주는 데서 비롯된다. 왼새끼를 목에 걸어주는 것은 고대 중국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며,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무의 가지는 악귀를 쫓는 민속적 주술로 쓰이는 일이 많아 더위를 막는 효과가 있다고 믿는 데서 유래했다고 여겨진다.
시인은 더위를 먹지 않도록 한 해를 준비하는 더위팔기를 했을 것으로 보이면서도 건강과 무탈을 기원했음을 알게 한다. 아침 일찍 골목에 가득한 아이들이 봄추위도 잊은 채, 무를 씹듯이 고드름을 깨물면서 먹고 있다는 선경의 시상을 이끌고 있다. 더위를 사거나 더위를 파는 사람의 장난기어린 속성을 아름다운 풍습으로 여기는 경향을 알 수 있는 미풍이기도 하다.
화자는 더위를 팔기 위해 좌우로 이웃집을 바라보면서 들썩들썩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을 것이란 시상이다. 친구가 서로 이쪽저쪽 이웃집을 바라보면서 힘껏 불러 댔다고 했으니 들썩들썩 떼를 지어서 동네마다 시끄럽다는 후정을 담아냈다. 어찌 보면 우습기도 하고 단결의 모습, 건강 기원의 모습이다.
【한자와 어구】
塡街: 골목 가득하다. 小兒: 아이들. 無春寒: 봄추위를 잊다. 嚼冰: 고드름을 씹다. 如破: 깨뜨린 것 같다. 蕪菁根: 무 뿌리. // 西舍東隣: 이쪽저쪽, 서쪽 집과 동쪽 이웃. 相望呼: 서로 보고 부르다. 刁聒: 들썩들썩. 合杳: 떼를 짓다. 連村喧: 동네마다 시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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