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희 구 (필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시조시인 / 문학평론가 / 문학박사
賣暑(매서)[2]
/ 매천 황현

입술 혀 부르트게 불러도 대답 없고
답한 자 있다면은 은 덩이 주겠는데
잘 잊는 사람 만나며 내 더위를 이긴 듯.
唇焦舌倦呼不應    如有應者銀一錠
진초설권호불응    여유응자은일정
驀地偶逢善忘人    我暑我暑如獲勝
맥지우봉선망인    아서아서여획승
 
불러 봐도 대답 없고 은 한 덩이 누구 주나, 
잊은 사람 만나기도 내 더위를 이긴 듯이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에는 여름철에 더위를 막는 것이 큰일이었고, 거기에다가 더위에 들면 딴 병을 들게 하여서 몸을 해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미리 더위를 먹지 않도록 예방하려는 주술적 방법이 생기게 되어 더위팔기와 같은 세시풍속으로 정착되었다. 대보름날 사람만 더위를 파는 것이 아니라, 가축들도 더위를 피하기 위한 예방으로 소·개·돼지의 목에다 왼새끼로 만든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시인은 입술과 혀가 부르트도록 불러도 대답 없으니, 답하는 자 있으면 은 한 덩어리 주리라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내 더위, 내 더위하며 이긴 듯이 좋아하네(賣暑2)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배율이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입술과 혀가 부르트도록 불러도 대답 없으니 / 답하는 자 있으면 은 한 덩어리 주리라 // 깜빡 잘 잊는 사람들을 만나기라도 한다면 / 내 더위, 내 더위하며 이긴 듯이 좋아하네]라고 번역된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불러 봐도 대답 없고 은 한 덩이 누구 주나, 잊은 사람 만나기도 내 더위를 이긴 듯이’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내 더위사세요2]로 번역된다.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서 이웃 친구를 찾아가 이름을 부르며, "내 더위 사가라" 또는 "내 더위, 내 더위, 먼디 더위" 하면 곱절로 두 사람 몫의 더위를 먹게 된다는 속신이다. 따라서 대보름날 아침에는 친구가 이름을 불러도 냉큼 대답하지 않으며, 때로는 미리 "내 더위 사가라" 하고 응수한다. 그러면 더위를 팔려고 했던 사람이 오히려 더위를 먹게 된다고 한다. 더위는 한 번 팔면 되지만 익살맞은 장난꾸러기들은 여러 사람에게 더위를 팔수록 좋다고 이집 저집 찾아다니며 아이들을 골려주기도 했다.
시인은 다른 사람이 더위를 먹지 않기 위해서 대답을 참는 태도를 그대로 연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서 입술과 혀가 부르트도록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았으니, ‘답하는 자 있으면 은 한 덩어리 주리라’로까지 외치게 된다는 선경을 담고 있다. 내가 불러 ‘내 더위’를 불렀고, 상대가 대답해 ‘내 더위’를 사갔으니 무탈을 기원했음을 알게 한다.
화자는 상대에게 내 더워 파는 것을 으뜸으로 생각했음을 알게 했음을 생각했던 시상이었음도 짐작하게 하게 했다. 이를 깜빡 잘 잊는 사람들을 만나기라도 한다면, ‘내 더위, 내 더위’ 외치며 이긴 듯이 좋아했었다는 후정 한 사발을 담아냈다. 서로 웃고 파는 것을 시원하게, 팔린 것을 아쉽게 생각했다.
 
【한자와 어구】
唇焦舌倦: 입술과 혀가 부르트도록. 呼不應: 불러도 대답 없다. 如有應者: 대답하는 자가 있으면. 銀一錠: 은 한 덩이 주다.// 驀地: 공연히. 괜히. 偶逢: 우연히 만나다. 善忘人: 잊는 사람을 만나다. 我暑我暑: 내 더위 사라, 如獲勝: 이긴 듯이 좋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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