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희 구 (필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시조시인 / 문학평론가 / 문학박사
繂曳(율예)[1] ] / 매천 황현

발꿈치 굳게 딛고 일제히 목을 뒤져
얼굴을 들어봐도 밝은 달 눈에 들어
코밑의 검은 연기가 언 땅에는 구덩이.
千趾錯植項齊彎    仰面不見天月明
천지착식항제만    앙면불견천월명
黑塵蓊勃出鼻底    剗平凍地翻成坑
흑진옹발출비저    잔평동지번성갱
 
 
발꿈치 딛고 목 젖혀 얼굴 들고 달은 못봐,
 검은 먼지 나오더니 언 땅에는 구덩이가
 
줄다리기는 민속놀이의 한 가지로 여러 사람이 두 편으로 나뉘어 줄을 마주 잡아당겨 많이 끌어당기는 편이 이기는 놀이다. 풍년을 비는 농경 의식으로, 예로부터 주로 정월 대보름날을 전후하여 행해졌다. 지방에 따라서는 단옷날이나 백중날, 한가위에 하기도 했다. 이 놀이는 남녀노소가 함께 참여하는 단체 놀이 가운데 규모가 큰 놀이로서, 큰 마을에서는 하루에 그치지 않고 며칠에 걸쳐 놀았다. 시인은 발꿈치 굳게 디딘 채 일제히 목을 뒤젖혔는데, 얼굴을 들어도 밝은 달은 눈에 들어오지 않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평평했던 언 땅에서는 큰 구덩이가 생기던데(繂曳1)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배율이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발꿈치 굳게 디딘 채 일제히 목을 뒤젖혔는데 / 얼굴을 들어도 밝은 달은 눈에 들어오지 않네 // 검은 먼지가 진하게 코밑에서 나오더니 / 평평했던 언 땅에는 구덩이가 생기던데]라고 번역된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발꿈치 딛고 목 젖혀 얼굴 들고 달은 못봐, 검은 먼지 나오더니 언 땅에는 구덩이가’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줄다리기1]로 번역된다. 줄다리기의 시인이 시제로 지적한 율예(繂曳) 외에도 삭전(索戰)․조리지희(照里之戱)․갈전(葛戰)이라 했다. 줄다리기의 기원에 대해서는 당나라 봉연(封演)이 쓴 봉씨문견기에 춘추시대 오(吳)․초(楚) 사이의 싸움에서 유래하였다고 하고 있으나, 그보다는 풍년을 비는 농경의식으로 그 이전부터 행하여졌다고 했음을 안다. 그것은 이 놀이의 초기 이름이 ‘발하(拔河)’로서 강을 사이에 두고 함으로써, 농사와의 관련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알려지기도 한다.
시인은 상대방에게 잡은 줄이 끌려가지 않고, 내 쪽으로 힘차게 당김에 따라 끌려오는 것이 이기는 목적이며 방법이라고 믿었다. 발꿈치를 굳게 디딘 채 일제히 목을 뒤젖혔는데, 얼굴을 들어도 밝은 달은 눈에 들어오지 않다는 선경의 시상을 이끌고 있다. 줄다리기는 협동과 단결을 제일의 목적으로 생각했으니 한 편이 힘을 모아야 함을 알게 한다.
화자는 힘을 쓰다 보니 입과 코에서 한꺼번에 몰아쉬는 숨을 고르는 모습의 검은 색깔임을 보였음을 알게 한다. 열심히 줄을 당기다 보면 검은 먼지가 진하게 코밑에서 나오더니, 평평했던 언 땅에는 발로 버티던 구덩이가 생겼었다는 후정을 담아냈다. 청군과 백군, 아랫마을과 윗마을에 대한 승부가 걸린 일이었다.
 
【한자와 어구】
繂曳: 줄다리기(동아줄 율, 끌 예). 千趾錯植: 발꿈치 굳게 딛다. 項齊彎: 일제히 목을 젖히다. 仰面: 얼굴을 들다. 不見: 보지 않다. 天月明: 밝은 달. // 黑塵: 검은 먼지. 蓊勃: 진하다. 出鼻底: 코밑에서 나오다. 剗平凍地: 평평하게 언 땅. 翻成坑: 구덩이가 생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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