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희 구 (필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시조시인 / 문학평론가 / 문학박사
血竹(혈죽)[2]
/ 매천 황현

네 딸기 아홉 가지 제각각 다 푸른데
서른 세 입이 그리 어찌도 아름답나
옷에는 향기가 남아 자결 당시 본 듯이.
四叢九幹綠參差    三十三葉何猗猗
사총구간록삼차    삼십삼엽하의의
衣香未沬刀不銹    怳復重見含刃時
의향미매도불수    황복중견함인시
 
네 떨기에 아홉 줄기 서른 잎이 아름다워, 
녹슬지도 않는 칼날 자결 당시 보는 듯해
 
1905년 11월 30일 아직 어둠이 짙게 드리운 새벽녘이었다. 종로 전동(典洞)의 한 집에 민영환(閔泳煥)이 불을 밝힌 채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깊은 상념에 잠겨 있던 그는 갑자기 자신의 명함을 꺼내 들더니 그 위에 한문으로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의 엄숙한 표정만큼이나 구절구절 비장함이 배어 있었던 것이다. 글을 마친 뒤 그는 결심한 듯 단도(短刀)를 집어 들었고 주저 없이 한 일(一) 자로 할복하였다. 시인은 네 떨기 아홉 줄기가 제 각각이 다 푸른데, 서른세 잎이 어찌 그리도 아름다운가하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자결하시던 그 당시를 다시 보는 듯하네(血竹2)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배율이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네 떨기 아홉 줄기가 제 각각이 다 푸른데 / 서른세 잎이 어찌 그리도 아름다운가 // 옷에는 향기가 남아 있고 칼날도 녹슬지 않았으니 / 자결하시던 그 당시를 다시 보는 듯하네]라고 번역된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네 떨기에 아홉 줄기 서른 잎이 아름다워, 녹슬지도 않는 칼날 자결 당시 보는 듯해’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피로 얼룩진 대나무를 보고2]로 번역된다. 자신의 몸을 난자하기로 결심이라도 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할복하려는 칼날이 깊이 들어가지 않자 그은 곳을 여러 번 계속 그었고 그래도 여의치 않자 자신의 목을 수차례 난자하고 말았다. 숨이 멎고도 한동안 피가 솟구쳐 옷을 적셨다. 한참 뒤에 급보를 듣고 시종무관 어담(魚潭)이 달려왔을 때에도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다. 후에 어담이 “민대감은 원망하는 듯 노한 듯 부릅뜨고 있는 양쪽 눈은 처절하고도 가여웠다. 참으로 장절한 죽음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었다 한다.
시인은 다소의 치사가 있음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해서 유명을 달리한 독실한 민충정공의 보국에 대한 일념이 한 결 같았음을 보이게 되었다. 혈죽의 네 떨기 아홉 줄기가 제 각각이 다 푸르기만 한데, 서른세 잎이 어찌 그리도 아름다운가를 묻는 선경의 시상이 땅이 꺼지는 듯, 하늘에 사무치는 듯 쩌렁쩌렁하기만 했으리라.
그래서 화자는 민충정공의 예리한 칼날에 휘둘러 쓰러진 은은한 향기에 대한 소신과 당시의 모습이 선하다는 후정의 시상을 다독이게 된다. 아직도 옷에는 잔잔한 향기가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칼날도 녹슬지 않았다고 했다. 남아 있는 흔적은 자결하시던 그 당시를 다시 보는 듯하다는 시상을 만지게 된다. 자결한 그 보습을 그림을 그리듯이 했다.
 
【한자와 어구】
四叢: 네 떨기. 九幹: 아홉 줄기. 綠: 푸르다. 參差: 제 각기. 三十三葉: 서른세 개 잎. 何猗猗: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 衣香: 옷에 향기가 남다.未沬刀: 낯을 씻지 않다. 不銹: 녹슬지 않다. 怳復重見: 멍하니 거듭 보다. 含刃時: 자결하던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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