血竹(혈죽)[5] 
/ 매천 황현
 
푸른 빛 무성하여 빽빽한 묶음 같고
백번을 보고 봐도 대나무로 보였다오
늦은 봄 금봉을 풀고 찬옥 기운 흔들며.
靑葱扶踈森似束    百回拭眼看是竹
청총부소삼사속    백회식안간시죽
殘春窅窱解錦綳    一氣凄凜搖寒玉
잔춘요조해금붕    일기처름요한옥
 
 권7에서는 다음 4언 혈죽명(血竹銘)이 전한다. [충정을 남김없이 다 쏟은 뒤에(情量所窮) / 몸을 던져 하늘로 돌아갔나니(乃歸於天) / 하늘이 그 충성 기리는 것이(天之奬忠) / 어쩌면 이렇게도 치우쳤는가(若是其偏) // 그 몸을 죽여서 떠나게 하여(與其身後) / 신령의 남다름 드러낼 바엔(標此靈異) / 나라에 큰 복을 내려 주어서(曷若祚宋) / 공 아니 죽게 함이 낫지 않은가(無俾公死)]라고 했다. 시인은 푸른빛 무성하여 빽빽하기가 묶음 같은데, 백번을 눈 씻고 보고 또 봐도 대나무로 보였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늠름한 한 기운이 찬 옥을 흔드는 듯했네(血竹5)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배율이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푸른빛 무성하여 빽빽하기가 묶음 같은데 / 백번을 눈 씻고 보고 또 봐도 대나무로 보였었네 // 늦봄에 살짝이 금붕을 풀고 나왔으니 / 늠름한 한 기운이 찬 옥을 흔드는 듯하네]라고 번역된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빽빽하기 묶음 같고 백번 봐도 대나무네, 늦봄 살짝 금붕 풀고 늠름 기운 찬 옥 풀고’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피로 얼룩진 대나무를 보고5]로 번역된다. 위 서문구에 이은 혈죽명(血竹銘) 9행~12행을 지면 사정을 감안하여 여기에 놓는다. [공의 충정 만세에 길이 빛나고(千秋萬歲) / 사해와 온 누리에 전해지리라(四海九州) / 아름다운 몇 줄기 푸른 대나무는(娟娟數竿) / 우리나라 전역을 숙연케 했지(肅我靑丘)라고 했다. 매천의 혈죽명은 모두 24행으로 되어 있는데 그 신묘함을 충정공 보국이란 커다란 뜻이 부활이란 명제 앞에 큰 무게를 두는 형국이었음을 알게 한다. 혈죽과 연관성을 갖고 있기에 12행까지를 여기에 놓았다.
시인은 혈죽은 혈죽명과 아울러 시인 매천의 예리한 통찰력과 철학이 담겨진 명문으로 규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그래서 시인은 푸른빛 무성하여 빽빽하기가 묶음과도 같았는데, 백번을 눈 씻고 보고 또 봐도 대나무로 보였음을 거듭 천명하고 있다. 어쩌면서 올곧은 대나무의 기상을 충정공의 참 뜻에 대비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갖게 한다.
화자는 수십만의 군중이 충정공의 집 앞에 와서 혈죽을 구경하는 민중에게 부탁하는 소망어린 한 마디를 담아내는 모습이다. 늦봄에 살짝 죽순으로 상징되는 금붕(錦綳: 비단 묶음)을 풀고 나왔다고 하면서 늠름한 한 기운이 찬 옥을 흔드는 듯했다는 후정의 시상을 만들어 냈다. 믿기지 않는 신묘한 일을 발견했음을 보인다.
 
빽빽하기 묶음 같고 백번 봐도 대나무네, 
늦봄 살짝 금붕 풀고 늠름 기운 찬 옥 풀고
 
【한자와 어구】
靑葱扶踈: 푸른빛이 무성하다. 森似束: 빽빽하기가 묶음 같다. 百回拭眼: 백을 눈을 씻고 보다. 看是竹: 대나무로 보이다. // 殘春: 늦봄, 窅窱: 살짝. 解錦綳: 비단 묶음을 풀다. 곧 여기서는 ‘죽순’을 뜻함. 一氣凄凜: 늠름한 기운. 搖寒玉: 찬 옥을 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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