閔輔國永煥(민보국영환)[3]
/ 매천 황현
 
국가적 유신 이후 걱정한 나라 쇠함
큰 사명 받았었네 현로를 다하였고
보궐로 있을 때에는 납약했던 부지런함.
自從維新後   一念憂國削
자종유신후   일념우국삭
啣命忘賢勞   補闕勤納約
함명망현노   보궐근납약
 
 
늘 곧은 생각으로 나라 쇠함을 걱정하였네(閔輔國永煥3)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배율이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국가적인 유신이 있은 이후로부터는 / 늘 곧은 한 생각으로 나라 쇠함을 걱정하였네 // 큰 사명을 받고서는 현로를 다하였고 / 보궐로 있을 때는 부지런히 납약했네]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국가 유신 이후부터 나라 쇠함 걱정하고, 사명 받고 현로 다해 보궐 납약 부지런히’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민영환의 자결을 슬퍼하며3]로 번역된다. 민영환은 이전에도 청나라와 일본에 방문한 적이 여러 번 있지만, 러시아 니콜라이 2세 대관식 참석을 위해 1896년 5월 축하사절단 참석을 위한 여행을 전후해서 본격적으로 서구 문물에 눈을 뜬 계기가 되었다. 러시아로 향하는 길에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제국 등 당시의 서구 열강을 순회 방문할 수 있었으며, 이들의 발전된 문물제도를 직접 체험하면서 개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가 개화의 물결을 타고 세계와 견주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시인은 친부(親父)의 실정이나마 다 덮으려는 듯한 정의감은 결국 국가의식과 나라 의식으로 화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음을 보인다. 국가적으로 새로운 유신(維新)이 있은 이후로부터, 늘 곧고 야무진 일념으로 나라가 쇠퇴함을 걱정했었다고 선경의 시상을 흔들어 깨우는 모습을 보인다.
화자는 이와 같은 커다란 사명감을 갖고 생활하던 차 이제는 더불어 하려는 깨어난 의식은 특별함을 보였다는 시상을 일군다. 그를 화자는 충정공은 큰 사명을 받고서는 어질고 밝은 수고로움인 현로(賢勞)를 다하였다하면서 보궐로 있을 때는 부지런히 납약을 했었다는 후정이다. 모든 시상 속에 스민 고사의 적절한 인용은 감히 혀를 내두를 정도다.
 
【한자와 어구】
自從: ~으로 부커는, 維新後: 유신이 있는 뒤로부터. 一念: 한 생각으로. 憂國削: 나라 쇠함을 걱정했네. // 啣命: 사명을 받다. 忘賢勞: 현로를 다하다. 조국의 앞날을 생각하다. 補闕: 보궐. 초의 문하부에 딸린 낭사 벼슬에 있을 때. 勤納約: 납약(약속을 들이는 일)을 부지런히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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