閔輔國永煥(민보국영환)[4]
/ 매천 황현

한밤중 홀로 앉아 눈물만 비 오듯이
두려움 없는 듯이 몸 둘 바를 알지 못해
시월의 어느 밤 깊어 벼락 맞듯 부서져.
中宵獨雨泣   怔營靡所托
중소독우읍   정영미소탁
嗚呼十月夜   宮門雷碎鑰
오호십월야   궁문뢰쇄약
 
한 밤중에 눈물 흘려 두려움에 몸 둘 바를, 
벌써 시월 밤은 깊어 궁문 빗장 부서지고
 
체불된 급료가 적자 구식 군대들은 격분하여 난동을 벌였다. 이에 민겸호는 주동자를 색출하여 체포하는 등 강경하게 진압했는데, 오히려 기름에 불을 붙인 격이 되었다. 난동은 곧 한양 도성을 휩쓸어 버린 반란이 되면서 임오군란으로 발전하였고, 민겸호는 6월 10일에 반란군에게 살해당했다. 이 때, 민영환도 구식군대의 처단 표적이 되기도 했으나 살아남았다. 이 때 기록을 ≪사구속초(使歐續草)≫로 남겼다 한다. 시인은 한밤중에 홀로 비 오듯이 눈물을 흘리니, 두려움에 차마 몸 둘 바를 알지 못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궁문의 빗장은 벼락 맞듯이 크게 부서졌네(閔輔國永煥4)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배율이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한밤중에 홀로 비 오듯이 눈물을 흘리니 / 두려움에 차마 몸 둘 바를 알지 못했구려 // 아아, 벌써 시월의 어느 날 밤이 깊어 가는데 / 궁문의 빗장은 벼락 맞듯 부서졌네]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한 밤중에 눈물 흘려 두려움에 몸 둘 바를, 벌써 시월 밤은 깊어 궁문 빗장 부서지고’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민영환의 자결을 슬퍼하며4]로 번역된다. 귀국 후 의정부 찬정을 지내던 중 광무개혁과 대한제국이 선포되면서 그는 군부대신으로 임명되었다. 군부대신을 지내면서 군대의 근대화를 주장하게 되었고, 원수부(元帥府)를 설치하고 군령권이 황제에게 직속되도록 만들었다. 1897년에는 영국ㆍ독일ㆍ프랑스ㆍ러시아ㆍ이탈리아ㆍ오스트리아ㆍ헝가리 6개국의 특명전권공사로 발령받았다. 유럽에 체류하면서 특명전권공사의 자격으로 영국 빅토리아 여왕(1897년)의 즉위 60주년 기념식(다이아몬드 희년)에도 참석한 바 있다. 
이처럼 친부에 대한 여론은 썩 좋지 않았지만 막상 충정공의 승진의 반대급부적인 시의를 입고 고속으로 승진했다. 시인은 구국의 일념만은 변치 않아 한밤중에도 홀로 비 오듯이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떨리는 마음으로 두려움에 차마 몸 둘 바를 알지 못했다고 했다. 군부대신이라는 막중한 책무를 짊어진 것을 비롯해서 6개국 공사의 임명도 성실하게 수행했었음에도 초점을 흩트리지 않았음도 알게 한다. 
화자는 임오군란의 회오리로 나라의 군기가 문란 되어 가더니만, 급기야는 을사보호조약이란 극약처방이 내려지고 만다. 이를 탄식하면서 벌써 시월의 어느 날 밤이 깊어 가는데, 궁문의 빗장은 벼락 맞듯 부서졌다고 빗대는 후정이란 시상을 살며시 일으키고 있음 보인다.
 
【한자와 어구】
中宵: 한 밤 중에. 獨雨泣: 홀로 비를 맞고 울고 있네. 怔營: 두려워하다. 직역하면 두려움을 짓다. 靡所托: 의탁할 바를 모르겠다. // 嗚呼: 아아. 十月夜: 시월의 밤이로구나. 宮門: 궁궐의 문. 雷碎鑰: 벼락을 맞는 듯이 부셔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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