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희 구 (필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시조시인 / 문학평론가 / 문학박사
閔輔國永煥(민보국영환)[5]
/ 매천 황현

서명한 조약문서 츤박 신세 다른 것을
말소리 들려오면 귀 막아 듣지 말고
눈 감고 보지 않으면 편하겠지 세상이.
紛紛署約書  幾何異櫬縛
분분서약서  기하이츤박
欲聞耳可瑱  欲見眼可矐
욕문이가진  욕견안가학
 
조약 서문 많은 문서 츤박 신세 얼마던가, 
듣지 말라 귀를 막고 보지 말라 눈 감으면
 
민영환은 1884년 바로 이조참의로 복직되었고, 도승지, 전환국 총판, 홍문관 부제학, 이조참판, 내무협판, 개성유수, 해방총관, 친군연해 방어사, 기기국 총판 등을 역임했다. 1887년에는 상리국 총판, 친군전영사, 호조판서가 되었고, 1888년과 1890년 병조판서를 2차례나 역임하는 중심적 인물이었다. 1893년에는 형조판서, 한성부윤, 1894년엔 독판내무부사, 형조판서가 되고, 1895년에는 주미 전권공사가 되었다. 시인은 말이 들리려고 하면 귀를 막으면 될 것이고, 보이려 하면 눈을 감으면 될 것이라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츤박의 신세와는 과연 얼마나 다를 것인가(閔輔國永煥5)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배율이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조약에 서명한 많고 많은 저 문서들 / 츤박의 신세와는 과연 얼마나 다를 것인가 // 말이 들리려고 하면 귀를 막으면 될 것이고 / 보이려 하면 눈을 감으면 될 것이네]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조약 서문 많은 문서 츤박 신세 얼마던가, 듣지 말라 귀를 막고 보지 말라 눈 감으면’ 이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민영환의 자결을 슬퍼하며5]로 번역된다. 민영환은 이후에도 탁지부 대신, 표훈원(表勳院) 총재 등의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그는 당시로서는 해외 경험이 풍부한 사람으로, 개화 정책을 실천하고자 유럽 열강의 제도를 모방하여 정치 제도를 개혁하고 민권을 신장시킬 것을 지속적으로 고종에게 상소하였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고종은 전제군주정을 지향하고 있었으므로 이런 상소는 거부되고 군사개혁안만 받아들여졌다. 당시의 대한제국의 상황이 기초적인 제도나 기반도 없이 표면적인 모방만을 추구했던 군사개혁은 지나친 시도였다.
시인은 버티고 버틴 끝에 굴욕적인 조약이 체결되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모습을 보인다. 보호조약에 서명했던 많고 많은 저 문서들은 우리나라가 마치 츤박의 신세와는 과연 얼마나 더 다른 것이 더 있는가를 묻고 있다. 시어로 쓰인 ‘츤박(櫬縛)’이란 시어는 오동나무로 만든 널에 묶는다는 뜻으로 항복하여 포로가 된 신세를 뜻하고 있으니 자유롭지 못한 처지를 뜻한다.
화자는 이와 같은 점을 감안하여 기막힌 후정의 한 구절을 담아내고 있다. 어이없는 광경에 취한 시적인 상관자는 더운 그림자라는 말이 들리려고 하면 귀를 막으면 될 것이라고 했고, 보이려 하면 눈을 감으면 될 것이라고 했다. 귀와 눈을 막을 수밖에 없다는 시상이 커만 보인다.
【한자와 어구】
紛紛: 많고도 많다. 署約書: 조약에 서명하다. 幾何: 얼마나 될 것인가. 異櫬縛: 츤박이 다르다. ‘츤박(櫬縛)’은 항복하여 포로가 되는 일(櫬縛: 널츤, 묶을 박). // 欲聞: 말소리가 들리고자 하다. 耳可瑱: 귀를 틀어막다. 欲見: 보고자 하다. 眼可矐: 눈을 감으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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