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희 구 (필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시조시인 / 문학평론가 / 문학박사
閔輔國永煥(민보국영환)[8]
/ 매천 황현

전사한 동래부사 적인들 서로 놀라
평양성 기쁜 승첩 아무도 못 기다려
중흥의 새로운 조짐 드러나고 있었네.
宋公一死之   敵人相顧愕
송공일사지   적인상고악
不待平壤捷   中興驗已鑿
불대평양첩   중흥험이착
 
송공 전사 뒤로부터 적들 서로 놀랐었네, 
평양 승첩 못 기다려 중흥 조짐 드러나고
 
민영환에게 똘똘 뭉쳐 둘러 쓴 일도 다음과 같은 점이 있었을 개연성이 매우 크다고 하겠다. 충정공이 비록 몰락하는 시기이지만 전제군주 사회에서 왕이나 왕후를 지목해 비판을 하는 것이 금기(禁忌)시 되었기 때문에, ‘군주를 측근에서 잘 보필하지 못하고 미혹케 하는 간신’이라는 식으로 에둘러서 신하, 관리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경우가 많았기에, ‘고종과 명성황후’가 받아야 할 비난을 대신 덮어썼을 것이다. 시인은 송공이 그곳에서 전사한 뒤부터는, 적인들은 서로들 돌아보면서 놀랐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중흥의 새로운 조짐은 이미 드러났었다(閔輔國永煥8)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배율이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송공이 그곳에서 전사한 뒤로 부터는 / 적인들은 서로들 돌아보면서 놀랐었다네 // 평양의 기쁜 승첩을 미처 다 기다리지도 않고 / 중흥의 새로운 조짐은 이미 드러났었다네]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송공 전사 뒤로부터 적들 서로 놀랐었네, 평양 승첩 못 기다려 중흥 조짐 드러나고’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민영환의 자결을 슬퍼하며8]로 번역된다. 민영환은 이후 의정부 참정대신(參政大臣), 탁지부대신을 거쳤고, 건의에 의해 설치된 원수부의 회계국 총장, 표훈원 총재, 헌병사령관을 역임했고, 육군 부장(현재의 중장에 상당)에 오르면서 ‘훈일등태극장과 대훈위이화장’을 수여받았다. 참정대신은 의정대신의 다음 직위로, 내각의 좌의정 급에 해당한다. 조병세가 의정대신을 맡았으나 사직을 했으므로 사실상 국무총리, 국무총리 대리에 가까웠다. 이 직위는 한규설이 맡았고 을사조약에 분노해 사임하자 이완용을 앉힌 실질적인 총리자리다.
시인은 시적 상관자가 이런 처지에 있었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송공이 그곳에서 전사한 뒤부터는, 적인들은 서로들 돌아보면서 자기네들끼리 놀랐었다는 선경의 시상을 떠올리고 있다. 시어로 나온 ‘송공’은 임진왜란 당시 동래 부사를 지냈던 송상현(宋象賢, 1551~1592) 공이 갑작스럽게 쳐들어 온 일본의 침공에 의해 그들의 손에 죽었다는 시상을 떠올리고 있다.
여기까지 생각했던 화자는 평양의 기쁜 승첩을 미처 기다리지도 않고, 중흥의 새로운 조짐은 이미 드러났었다는 후정의 그림은 완만해 보이는 경향이다. 당시에 선조가 평양을 거쳐 의주로 몽진하는 수난을 받아 평양성 사수에 노력하는 가운데 밀고 당기면서 평양성을 탈환했음을 다시 한 번 떠올리고 있다.
【한자와 어구】
宋公: 송공. 一死之: 그곳에서 죽다. 敵人: 적국의 사람들. 相顧愕: (송공의 죽음에 대하여) 서로 돌아보면서 놀라다. // 不待: 기다리지도 않는다. 平壤捷: 평양의 대첩. 中興: 중흥. 驗已鑿: 조짐이 이미 드러나다. 이미 드러났다.
 
저작권자 © 광양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