閔輔國永煥(민보국영환)[9]
/ 매천 황현

당시에 동쪽에서 원병이 왔던 군사
모발이 송연하여 독실히 논하였네
강개한 민 참정이여! 옛 사람만 못하리.
當日東征士   髮凜篤論各
당일동정사   발름독론각
慷慨閔參政   何渠不古若
강개민참정   하거불고약
 
동쪽 원병 군사들이 모발 송연 독실하게, 
강개하신 민 참정님 옛 선인들 본을 받고
 
민영환은 늘 큰 그림을 그렸다. 일본과 청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 힘을 빌려 근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활동한 친러파였음을 생각할 일이다. 1886년 청나라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와 밀약을 맺을 것을 건의했으나 민영익이 반대하여 성사되지 못했다. 이후 도승지, 이조 참판에 있었으나 1895년 을미사변 직후 물러난다. 을미사변 직전에는 주미 전권공사로 임명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시인은 당시 동쪽으로 원병이 왔던 군사들이, 모발이 송연하여 독실하게 논하였던 것이라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어찌 그를 옛사람만 못하다 할 수 있으리(閔輔國永煥9)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배율이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당시 동쪽으로 원병이 왔던 군사들이 / 모발이 송연하여 독실하게 논하였던 것이네 // 강개하기 그지없던 민 참정공이시여 / 어찌 그를 옛사람만 못하다 할 수 있으리오]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동쪽 원병 군사들이 모발 송연 독실하게, 강개하신 민 참정님 옛 선인들 본을 받고’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민영환의 자결을 슬퍼하며9]로 번역된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전 의정대신인 조병세를 대표로 조약을 반대하는 신하들을 규합해, 이를 철회하고 을사오적 등의 조약 찬성파 신하를 처벌하라는 공동 상소를 올렸다. 이런 점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300여 년 전의 벌어진 임진왜란 연상 선상에서 생각했으니 을사조약이나 한일합방은 제2의 임진왜란으로 생각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으리라.
시인은 이와 같은 구체적인 생각을 하면서 당시 동쪽으로 원병이 왔던 군사들이, 모발이 송연하여 독실하게 논하였던 것이라고 했다. 당시에 쇠퇴한 명군 보다는 청군의 위세가 등등했다. 청은 1911년 10월 10일에 발발한 신해혁명으로 인해 1911년 멸망하기는 했지만, 1905년 을시조약, 1910년 경술국치를 눈으로만 보았으리라.
화자는 이런 점을 감안하면서 지난날의 조선을 충정공의 당시의 생각과 연계지어 본다. 강개하기 그지없었던 민 참정공이시여를 부르짖으면서 어찌 그를 옛사람만 못하다 할 수 있겠는가를 묻고 있다. 
참정공은 그는 이에 분노해 귀가 후 자신의 명함 앞뒷면에 유서를 남기고 칼로 자신의 목을 베어 자결했다. 이를 알고 있는 시인 매천은 끝구에서 [사직을 연장할 수가 있으련만(社稷庶少延) / 이분 통해 나라 운명 점칠 수 있겠네(倚此龜可灼)]라고 이 글의 말미에 통탄했다.
【한자와 어구】
當日: 당시. 혹은 당일날. 東征士: 동쪽으로 정벌을 왔던 군사들. 髮凜: 모발이 송연하다. 篤論各: 독실하게 각자를 논하다. // 慷慨: 강개하다(슬퍼하고 한탄함). 閔參政: 민 참정이시여. 何: 어찌. 渠不古若: 옛 사람만 크지 못하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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