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희 구 (필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시조시인 / 문학평론가 / 문학박사
月夜(월야) 
/ 매천 황현

흰 시내 동서쪽에 비 그쳐 경내 빈 듯
서늘한 달빛 속에 잠 못 든 이 밤인데
사방엔 온통 물소리 그득하게 흐르고.
沙晴樹白澗西東   宿雨初收境若空
사청수백간서동   숙우초수경약공
凉月滿簾人未寐   四隣都在水聲中
량월만렴인미매   사린도재수성중
 
모래 맑고 나무 흰데 비 그치자 경내 빈 듯 
잠못 드는 달빛 밝고 물소리만 그득하네
 
흔히 달 밝은 밤이라고 한다. 
주간보다는 야간 생활에 훨씬 더 역동성 있는 일들이 통해서 이루어진다. 공부도 밤에 하고, 남녀 간의 아기자기한 데이트도 밤에 한다. 
낮에 다 하지 못한 친구간의 정담, 직장 상사간의 발전지향적인 일들도 밤에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밤에 이루어지는 새로운 아이디어 내면서 대화하는 ‘술 문화’라는 역사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진하게 술을 한 잔 하면서 역사를 일구어 낸다. 
시인 모래는 맑고 나무는 흰 시내 동서쪽인데, 오래 내린 비 그치자 경내가 빈 듯하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사방에는 온통 물소리가 그득하게 흐르네(月夜)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모래는 맑고 나무는 흰 시내 동서쪽에서 뜬데 / 오래 내린 비가 그치자 경내가 빈 듯하구나 // 주렴 가득히 서늘한 달빛에 차마 잠을 못 드는데 / 사방에는 온통 물소리가 그득하게 흐르네]라는 시상이다. 이어진 오른쪽 평설에서 시상의 범상함을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모래 맑고 나무 흰데 비 그치자 경내 빈 듯 잠못 드는 달빛 밝고 물소리만 그득하네’ 라는 화자의 상상력이다.
위 시제는 [달 밝은 밤에]로 의역해 본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직장 상사와 사무실에서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달밤에 벤치에 마주 앉자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면서 트인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 선술집에서 한 잔 두 잔 대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정이 가고 때에서 따라서 호형호제까지 나누면서 소통의 자리가 되는 수가 많다. 은하수가 뻗어있는 북녘하늘을 보면서 트인 마음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호반의 도시에서 물이 비친 자연의 경관 속에 우러나오는 시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줄줄 한 줄의 시가 되고 노래가 되기도 한다.
시인은 달밤의 정경에 취하면서 모래밭을 걷는 청순한 마음에 취했으리라. 모래는 맑고 나무는 흰 시내를 가로 지르는 동서쪽인데, 오래 내린 비가 그치자 경내가 빈 듯하다는 시상은 한 폭의 그림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동산에 올라 달을 구경하는 것보다는 바닷가의 모래사장이 훨씬 그 정경을 더했음을 알게 한다.
화자는 달밤의 정취에 취하면서 달과 소통의 한 마디의 대화는 그대로 잠자리에 들기에는 아까운 밤이었을지도 모르게 한다. 주렴 가득하게 늘어선 서늘한 달빛에 차마 잠을 못 드는데, 사방에는 온통 물소리가 그득하게 흐르고 있다는 시상은 그만 물소리에 그만 발을 멈추고 만다. ‘처얼썩 처얼썩’ 내리치는 소리에 취한 모습이다.
 
【한자와 어구】
沙晴: 모래가 맑다. 樹白: 나무가 희다. 澗西東: 동서의 시내다. 宿雨: 비가 그치다. 初收: 처음 거두다. 境若空: 경내가 빈 것 같다. // 凉月: 서늘한 달. 滿簾: 주렴 가득하다. 人未寐: 사람이 잠 못 들다. 四隣: 사방 이웃. 都在水聲中: 도시가 물소리 가운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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