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희 구 (필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시조시인 / 문학평론가 / 문학박사
龜峯-讀國朝諸家詩[구봉-독국조제가시](8)

                                      매천 황현
당적에 연루되어 부평초 신세 됐네
송유의 이학에다 당시 풍 겸했나니
동방의 손꼽아 볼 이 구봉 노인뿐인걸.
白首嶔奇黨籍中   十年關塞感萍蓬
백수금기당적중   십년관색감평봉
宋儒理窟唐詩調   屈指東方有此翁
송유리굴당시조   굴지동방유차옹
 
노년 험난 당적 연루 십년 변방 부평초 신세, 
당시 풍을 겸한 이는 동방 구봉 이 노인 뿐
 
시제(詩題)로 선택한 시적상관자인 구봉(龜峯)은 송익필(宋翼弼, 1534~1599)의 호이고 자는 운장(雲長)이고 시호는 문경(文敬)으로 알려진다. 과거를 단념하고 학문에 몰두하여, 성리학 및 예학에 깊은 조예를 이루었다.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 서인을 막후에서 지휘하였다. 원래 노비의 집안이었다가 이후 벗이나 문인들의 집을 전전하며 불우하게 살다 죽었다. 시와 문장에 모두 뛰어나 선조대의 8문장가로 칭해졌다. 시인 송유의 이학에다 당시풍도 겸한 이는, 동방에서 꼽아 볼 때 이 구봉 노인이 있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십 년을 변방에서 부평초신세 절감했었다네(龜峯 宋翼弼[8]:1534~1599)으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노년에 험난한 당적에 연루되어 / 십 년을 변방에서 부평초신세 절감했었다네 // 송유의 이학에다 당시풍도 겸한 이는 / 동방에서 꼽아 볼 때 이 노인 있었네]라는 시상이다. 이어진 오른쪽 평설에서 시상의 범상함을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노년 험난 당적 연루 십년 변방 부평초 신세, 당시 풍을 겸한 이는 동방 구봉 이 노인 뿐’ 이라는 화자의 상상력이다.
위 시제는 [구봉 송익필의 시를 읽고]로 의역해 본다. 아버지 송사련이 공신에 책봉되고 상관에 올랐는데, 그것이 조작임이 밝혀져 형제들이 안씨 집의 노비로 환속되는 등 불우한 삶을 살았던 전력이 있었던 인물이다. 구봉의 시는 이백(李白)을 표준으로 하였고, 문장은 좌구명(左丘明)과 사마천(司馬遷)을 위주로 하였으니 당대의 큰 인물이로 자리 잡았음도 기억할 일이다. 시어로 쓰인 ‘당적(黨籍)’은 서인을 조정했다는 점으로 기억한 듯하고, ‘부평초 신세’는 노비의 신세에 대한 고초를 겪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는 듯하다.
똑똑한 인물은 하늘이 낸다는 말을 실감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시인은 이런 점을 생각하면서 선경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구봉이 노년에는 서인(西人)인 험난한 당적에 연루되었음을 상기시키면서, 십년을 변방에서 부평초신세를 절감했음을 떠올리고 있다. 노비의 신세였음을 은근하게 빗대는 모양새다.
그렇지만 시적인 대전환을 가져오는데 성과를 거두는 화자의 진솔한 모습을 만난다. 송나라 유학의 이학으로 알려진 천주교는 물론 당시풍도 겸한 사람은 오직 그래도 동방에서 꼽아 볼 때 이 구봉만이 있을 뿐이라는 후정을 담아냈다. 시어로 쓰인 ‘이굴(理窟)’은 ‘진리가 숨겨져 있는 동굴’이라는 뜻으로 여기에서는 천주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구봉의 끊임없는 노력을 높이 사고 있다.
【한자와 어구】
白首: 노년이 되다. 嶔奇: 험난하다. 黨籍中: 당적에 연루되다. 十年: 십년. 關塞: 변방에서. 感萍蓬:부평초 신세를 절감하다. // 宋儒: 송나라 유학. 理窟: 천주교. 唐詩調: 당시의 풍조. 屈指東方: 동방에서 손꼽아 보다. 有此翁: 이 노인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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