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희 구 (필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시조시인 / 문학평론가 / 문학박사
哭勉菴先生(곡면암선생)

                                      매천 황현
유소년 어린 나이 벽계 문하 들어가
남의 집 불을 끄고 벼슬 홀연 높았고
삼혼은 조정 높이쳐 희원에게 힘입고.
英年抱贄蘗溪門   救火人家位偶尊
영년포지벽계문   구화인가위우존
程氏三魂推趙鼎   考亭一脉賴希元
정씨삼혼추조정   고정일맥뢰희원
 
어린 나이 벽계 문하 벼슬 홀연 높아졌네, 
정씨 삼혼 조정 높이 고정 일맥 힘입었네
 
시제에 보인 시적상관자인 ‘면암(勉菴)’은 문신, 학자, 의병장으로 알려진 최익현(崔益鉉, 1833~1906)의 호다.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1855년 정시 문과에 급제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실세였던 흥선대원군의 실정을 낱낱이 상소하여 대원군 실각의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냈던 장본인이다. 일본과의 통상 조약을 체결하려 하자 격렬한 척사소를 올렸으며, 단발령에 극구 반대하였던 인물로도 알려진다. 시인은 정씨의 삼혼은 조정(趙鼎)을 높이치고, 고정의 일맥은 희원에게 힘입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남의 집 불을 껐더니 벼슬 홀연 높아졌다네(哭勉菴先生1)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 첫 번째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어린 나이에 벽계의 문하에 들어가서 / 남의 집 불을 껐더니 벼슬 홀연 높아졌다네 // 정씨의 삼혼은 조정(趙鼎)을 높이치고 / 고정의 일맥은 희원에게 힘입었네]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어린 나이 벽계 문하 벼슬 홀연 높아졌네, 정씨 삼혼 조정 높이 고정 일맥 힘입었네’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면암 최익현 선생의 죽음을 통곡하며1]로 번역된다. 시어로 나온 ‘벽계(蘗溪)’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에 있는 마을로, 이곳에서 태어난 이항로(李恒老, 1792~1868)를 가리킨다. ‘정씨(程氏)의 삼혼(三魂)’에서 정씨는 송나라 때의 유학자인 이천 정이이다. 삼혼은 그 제자 중에서 조정은 존혼, 왕거정은 강혼, 양시는 환혼이라고 불렀으며, ‘조정(趙鼎)’은 남송의 재상이자 문장가다. ‘고정(考亭)’은 송나라의 유학자 주희의 호다. ‘희원(希元)’은 송나라의 유학자인 진덕수의 자이니, 조선과 중국에 알려진 벌쭉한 문인들이다.
시인은 인물들의 열거에만 그치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면서 인맥을 형성했던 점을 강조한다. 아직은 어린 나이에 벽계의 문하에 들어 가 남의 집 불을 끄는데 앞장섰거니 홀연히 벼슬이 높아졌다는 선경의 시상은 도톰해 보인다. 남의 집 불을 끄고 벼슬이 높아졌다는 것은 국가의 화급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고 상소를 올리고 호조 참판에 임명되었던 일을 가리킨다.
화자는 위와 같은 일맥의 사실에 관심을 두고 시상을 일으키고 있다. 그래서 정씨의 삼혼은 조정(趙鼎)을 높이치면서 고정의 일맥은 희원에게 힘입었다고 했다. 성리철학을 확립시켜 유학사와 동아시아 사상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유학 경전에 대한 주석은 후세 학자들의 필독서가 되기도 했음을 기억할 일이다.
 
【한자와 어구】
英年:어린 나이. 抱贄: 지내다, 들어가다. 蘗溪門: 벽계의 문하.  救火人家: 남의 집 불을 끄다. 位偶尊:벼슬 홀연 높아지다. // 程氏三魂: 정씨의 삼혼. 推趙鼎: 조정을 높이 받들다. 考亭一脉: 고정의 일맥. 賴希元 : 희원에 힘을 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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