哭勉菴先生(곡면암선생)[9]

                                      매천 황현
사장에 과혁할 일 그 먼저 어긋났고
복 외쳐 유의 덮고 숙연한 바람 천둥
얼굴이 생시와 같이 일월처럼 빛나네.
裹革沙場事已違   殊邦呼復尙儒衣
과혁사장사이위   수방호복상유의
精靈不散風霆肅   顔貌如生日月輝
정령불산풍정숙   안모여생일월휘
 
과혁한 일 어긋났고 복 외치고 유의 덮고, 
바람 천둥 정령 숙연 얼굴 모습 일월처럼
 
시어로 쓰인 ‘호복(呼復)’은 사람이 죽었을 때, 그 혼이 떠돌지 못하도록 초혼(招魂)하는 옛 의식을 말한다. [주자의 가례]에는 시자 1인이, 망자가 평상시에 입었던 웃옷 상단을 가지고 왼손과 오른 손을 번갈라 사용한다 했다. 
왼손은 목단 안쪽 령 부분을, 오른손은 허리부분을 잡은 채, 앞쪽 처마를 통해서 북쪽을 향하여 웃옷으로 초혼(招魂)을 하면서 ‘아무개는 돌아오라(某復)’고 세 번씩을 외친다고 했다. 시인은 사장에서 과혁할 일 이미 어긋났으니, 타국에서 복 외치고 유의를 덮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얼굴 모습 생시 같아 일월처럼 빛나네(哭勉菴先生9)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 아홉 번째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사장에서 과혁할 일 이미 어긋났으니 / 타국에서 복 외치고 유의를 덮었네 // 정령이 흩어지지 않아 바람과 천둥 숙연한데 / 얼굴 모습 생시 같아 일월처럼 빛나네]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과혁한 일 어긋났고 복 외치고 유의 덮고, 바람 천둥 정령 숙연 얼굴 모습 일월처럼’ 이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면암 최익현 선생의 죽음을 통곡하며9]로 번역된다. ‘대본’의 한자에서 오자가 있어 바로 잡는다. 기구(起句)의 처음 한자가 대본에는 ‘裏(속 리)’라고 되어 있으나 ‘裹(쌀 과)’의 오자이므로 바로 잡았음을 밝힌다. 어구로 쓰인 ‘裹革沙場(사장에서 과혁할 일)’에서 사장은 병사들이 전투하다가 죽어 간 전장을 가리킨다. 
과혁은 가죽에 싼다는 뜻으로, 나라를 위해 장렬하게 적과 싸우다가 전사한 뒤 말가죽에 싸여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후한의 복파장군 마원이 “사나이라면 마땅히 전쟁터에서 죽어 말가죽에 시체가 싸여 돌아와 묻혀야 한다”라고 말한 데에서 유래한다고 했다.
시인은 모래밭의 과혁(裹革)이라는 전문적인 언어의 마술을 보이면서까지 자기 소신을 피력해 보인다. 모래사장에서 과혁할 일 이미 다 어긋났으니, 타국에서 복을 외치고 유의를 이 죽음으로 다 덮었다는 비유법 덩어리를 한 줌 싸고 있다. 면암은 분명 유명을 달리하여 싸늘한 죽음으로 돌아왔지만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자기 소신을 피력하고 있다.
화자는 시어로 쓰인 ‘정령(精靈)’은 이미 육체를 떠난 혼백(魂魄)을 뜻하는 어휘다. 정령이 결코 흩어지지 않아 바람과 천둥이 숙연하기만 한데, 시신의 얼굴 모습이 마치 생시와 같아 일월처럼 빛나고 있다고 했다. 반드시 누워있는 면암의 얼굴을 본 후정의 시상이다.
 
【한자와 어구】
裹革沙場: 사장에서 과혁한 일. 事已違: 일이 이미 어긋나다. 殊邦: 타국. 呼復: 거듭 부르다. 尙儒衣: 유의를 덮다. // 精靈: 정령, 不散: 흩어지지 않다. 風霆肅: 바람과 천둥이 숙연하다. 顔貌: 얼굴 모양. 如生: 생시와 같다. 日月輝: 해와 달이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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