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봉선

광양시 진상면 섬거리

시간의  연속이 이어져 벌써 한해의 문턱인 동짓달이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우리 마을은 한땐 전국에서 제일 크다는 마을이라고 할 만큼 큰 동네였으며, 지금도 200여호의 각각 다른 성씨들이 살고 있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동네가 크기 때문에 예부터 마을 이장의 역할을 맡으면 상당한 중요한 역할과 권위를 가지게 되고 또한 희망자들이 많아 선거 과정을 거쳐 마을 이장을 뽑기도 한다.
나는 오랜 공직생활을 마치고 전북 전주에서 아파트 관리하는 업무에 종사해왔다. 그러던 중 이곳 거대한 시골에 홀로 살고 있던 노모가 자주 다쳐 병원신세를 지곤 했었다. 넘어져 늑골이 부러지고, 또 고관절에 금이 가는 등 장남인 나의 뇌리에 너무 걸리었다. 
양 무릎에 인공관절을 끼고 생활하는 노모는 점점 쇠약해져가는 몸을 가누는데 힘겨워 했다. 멀리서 이러한 소식을 들을 때면 자식 된 도리로서 정당한 일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자식들이 4형제가 있지만 나를 뺀 모두가 자기 일들 때문에 어머니 곁에 있을 수 없어 내가 마음을 고쳐먹을 수 밖에 없었다. 하던 일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와 어머니와 같이 생활하게 되었다. 
나는 부식 및 반찬 등 먹을거리를 구입하여 집으로 가지고 오면 어머니는 이걸 요리하고 조리하여 먹음직스런 둘만의 음식으로 만들곤 하는데 다행이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치매가 심하지 않아 모든 생활이 정상적이다.
그렇지만 무섭다는 치매! 예방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하는 일이라면 모든 걸 다 해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노모와 생활을 같이 하고 있다. 5일마다 돌아오는 시골 장날이 되면 노모와 함께 시장을 구경하고 생필품·먹거리 등을 손수 구입하고 돈 거래도 하며 거의 모든 걸 혼자 해결하도록 하고 있는데, 너무 많이 사려고 하는데 이럴 때면 심하게 말다툼이 일어날 때가 허다하다.
어제는 집 뒤의 텃밭에 심어져 뿌리만 묻혀 있는 토란에 복토를 해야 한다며 노모는 호미를 들고 나섰다. 머리엔 비틀어진 털모자, 다리가 성하지 못해 기어야 하기 때문에 양 무릎은 수건으로 감싸고 고무줄을 이용 동여맸고, 내가 입고 다니던 허름한 점퍼를 걸치고, 허리엔 보호대를 두르고 지팡이를 든 모습은 왕년의 구걸하던 그 사람들의 모습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노모가 즐겨 하고자 하는 일이면, 치매예방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냥 지켜보곤 한다.
또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는 이때, 노모가 내게 전해준 정어린 얘기가 떠오른다. 봄철 어느 때인가 어머니가 각종 모종 가게에서 가지모종과 고추모종을 사던 중 돈이 부족하여 가게주인에게 “집에 가서 가지고 와 챙겨준다”고 하고 있을 때 이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좀 젊은 아줌마 한분이 나머지 돈을 주인에게 건네주고 가셨다는 얘기였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 아줌마는 동네 김양식이라는 분의 부인으로 평소도 자주 노인들에게 베풀며 지냄을 알게 되어 가슴이 뭉클해졌다. 
또 다른 봄철 어느 날, 지팡이에 의지하며 운동삼아 동네를 한 바퀴 돌아오던 중, 각종 씨앗을 햇볕에 말리는 모습을 보고 그 씨앗을 조금 얻고 싶어 그 집 주인에게 씨앗들 중 “녹두씨 한 주먹만 얻자”는 말을 했는데, 거의 1kg 정도를 비닐봉지에 담아주며 “남으면 죽 끓여 잡수셔”라고 하며, “팥씨도 필요하면 가지고 가라”고 하시어 노모가 비싼 녹두 값을 주려고 돈을 꺼내니까 “아니에요, 씨앗으로 쓰려는 건 절대 돈 받는 거 아니다”면서 노모의 걸음걸이를 걱정해 집 밖에까지 보내주셨던 아줌마!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시는 김진선씨의 부인이었다. 점점 개인화 되어 가고 옛정이 식어 가고 있다는 요즈음! 한해를 보내며 시골의 정어린 이웃들의 모습을 다시 한 번 기억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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