哭勉菴先生(곡면암선생)[11]

                                      매천 황현
어룡도 오열하고 귀신도 시름터라
명정을 펄럭이며 바다 위 떠왔구려
곡소리 삼백고을에 배 한 척에 실려왔네.
魚龍嗚咽鬼神愁   獵獵紅旌海上浮
어용오인귀신수   엽엽홍정해상부
巷哭相連三百郡   國華滿載一孤舟
항곡상련삼백군   국화만재일고주
 
어룡 오열 귀신 시름 붉은 명정 바다 위에, 
곡한 소리 삼백 고을 배 한척에 국화 가득
 
면암이 살아 돌아오리라 모든 백성들은 믿었다. 나라의 운명이 파리 목숨과도 같았던 위급한 상황에서 어서 오시라고 나라는 염려하면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기를 기대했다. 그렇지만 살아서 숨을 쉬는 면암이 아니라 숨을 쉬지 못한 혼령이 되어 돌아왔다. 삼 개월이면 짧지 않지만 면암은 이 기간을 단식과 아픔으로 더는 참지 못하고 숨을 거둔 것이다. 부산포가 눈물바다가 되었다. 매천도 울고 산천도 울었다. 시인은 어룡도 오열하고 귀신도 시름터라, 붉은 명정 펄럭이며 바다 위에 떠왔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외로운 배 한 척에 국화 가득히 실렸네(哭勉菴先生11)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 열한 번째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어룡도 오열하고 귀신도 시름터라 / 붉은 명정 펄럭이며 바다 위에 떠왔네 // 거리마다 곡한 소리 삼백 고을에 이어지고 / 외로운 배 한 척에 국화가 가득 실렸네]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어룡 오열 귀신 시름 붉은 명정 바다 위에, 곡한 소리 삼백 고을 배 한척에 국화 가득’ 이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면암 최익현 선생의 죽음을 통곡하며11]로 번역된다. 시어로 쓰인 ‘국화(國華)’ 나라의 광영, 보배, 또는 나라를 빛낼 만한 위업을 남긴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시구에서도 보인 바 면암의 시신은 국화 가득 한 척에 실려 왔다는 시심을 일구어냈다. 이 시를 쓴 매천뿐만 아니라 시신을 실은 배가 당도하기를 기다리던 수많은 우국지사와 백성들은 말없이 돌아온 면암의 혼령이나마 편하게 지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면암은 그렇게 갔다. 면암의 죽음은 일본으로부터 자유를 되찾는 길을 열었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결국은 3년이 지난 후에 한일합방이라는 터무니없는 올가미를 씌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시인은 이런 점을 생각하면서 외로운 배 한 척이 선생의 시신을 싣고 부산포로 돌아오는 초라함을 보고 통곡의 염을 금할 수가 없었음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어룡도 오열하고 귀신도 시름했었던 시상과 함께 붉은 명정이 펄럭이며 바다 위에 둥둥 떠서 왔다는 시상을 일구어 냈다.
 화자는 온 국민이 통곡하는 그 때의 심정이었겠지만, 차분한 마음으로 선경의 시상을 일으키고 있다. 거리마다 곡한 소리 삼백 고을에 이어졌고, 외로운 배 한 척에 국화가 가득 실려 왔다는 시상에 그 때의 상황을 알게 한다. 살아서 대마도를 향했던 면암이 시신으로 돌아온 그 때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한자와 어구】
魚龍: 어룡. 고기와 용. 嗚咽: 오열하다. 鬼神愁: 귀신도 근심하다. 獵獵: 펄럭이다. 紅旌: 붉은 명정. 海上浮: 바다 위에 뜨다. // 巷哭相連: 거리마다 곡소리가 이어지다. 三百郡: 삼 백 개 군.  國華滿載: 국화가 가득하다. 一孤舟: 한 척의 외로운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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