哭勉菴先生(곡면암선생)[12]

                                      매천 황현
단력을 되돌리려 주먹 불끈 쥐었어라
술 다한 서대에는 찬 해가 저무는데
사 참군 백발 머리에 가득히 눈이 덮혀.
握拳豈待還丹力   藏血翻驚化碧秋
악권기대환단력   장혈번경화벽추
酒盡西臺寒日暮   謝參軍亦雪盈頭
주진서대한일모   사참군역설영두
 
단력 돌려 주먹 불끈 장혈 놀라 벽옥 되고, 
서대에는 저문 찬 해 사 참군도 백발 가득
 
대마도에 가면 면암 최익현 선생의 넋이 서린 수선사(修善寺:슈젠지)를 만나게 된다. 황수영 박사가 쓴 비문의 전면에는 [大韓人崔益鉉先生殉國之碑]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고, 후면에는 [면암 최익현 선생이 1907년 1월 1일 대마도 경비대 억류지에서 사망하여 상여가 본국으로 운구될 때에 이 절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선생의 사적이 사라질까 두려워 이 비를 세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시인은 술이 다한 서대에는 찬 해가 저무는데, 사 참군도 백발이 머리에 가득하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단력을 되돌리려고 주먹을 불끈 쥐었으랴(哭勉菴先生12)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 열두 번째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단력을 되돌리려 주먹을 불끈 쥐었으랴 / 장혈이 놀랍게도 벽옥이 되는 때라네 // 술이 다한 서대에는 찬 해가 저무는데 / 사 참군도 백발이 머리에 가득하네]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단력 돌려 주먹 불끈 장혈 놀라 벽옥 되고, 서대에는 저문 찬 해 사 참군도 백발 가득’ 이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면암 최익현 선생의 죽음을 통곡하며12]로 번역된다. 
시어로 쓰인 ‘장혈(藏血)’은 충성이 지극하여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음을 의미한다. 장자 외물편에 ‘장홍(萇弘)이 촉 땅에서 죽어 그 피를 보관하였는데, 3년이 지나서 벽옥으로 변해 있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전구와 결구로 쓰인 시구 전체는 술을 마시며 애통하게 최익현을 추모하고 있는 매천 자신도 이미 늙어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겠다. ‘서대(西臺)’는 존경하는 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곳을 말하고, ‘사 참군(謝參軍)’은 문천상(文天祥)이 원(元)나라에 대항하는 군대를 일으켰을 때 그 막하에서 자사참군을 지냈던 사고를 가리키는 시어다.
시인은 이와 같은 시어를 잘 찾아 적절한 자리 배정에 골몰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단력을 되돌리려고 연약한 주먹이나마 불끈 쥐어 볼까라는 의기를 보이더니만 장혈이 놀랍게도 벽옥이 되는 때라는 시상으로 잠시 머리를 돌리는 여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이제 시의 막을 내리려는 냉엄한 흔적을 만나게 된다.
화자의 시상은 서대의 죽음을 애통해 하면서 자기 소신이 만족하는 느낌을 받는 후정의 시상을 만난다. 술동에 가득찬 술이 다한 서대(西臺)에는 이제 찬 해가 저물어 가는데 사 참군도 백발이 머리에 가득하다는 엉켜진 고사를 만난다. 5수~8수 시를 제외했음을 밝힌다.
【한자와 어구】
握拳: 주먹을 쥐다. 豈待: 어찌 기다라랴. 還丹力: 단력을 되돌리다. 藏血: 장혈. 翻驚: 놀랍다. 化碧秋: 푸른 가을로 화하다. // 酒盡西臺: 술이 다한 서대(존경하는 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곳). 寒日暮: 차가운 날이 저물다. 謝參軍: 사 참군. 亦雪盈頭: 백발이 머리에 가득하다.
 
저작권자 © 광양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