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은 선거를 치르면서 공약(公約)을 제시한다. 정치인의 공약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비전의 제시이기도 하다. 어떤 후보가 어떠한 비전을 제시하느냐를 보고 유권자는 투표를 하고, 이러한 공약을 제대로 이행해야 신뢰받는 정치인이 될 수 있다.
최근 문재인대통령이 자신의 선거공약인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이행할 수 없다고 밝히자 야당들이 거칠게 비난하고 나선 것은 후보시절 제시한 공약의 무게가 어떠한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정치인의 공약이행이 때로는 공동체의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후보시절 제시한 한반도 대운하 공약이 그것이다. 이 공약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표공약이었지만 당선 이후 국민들의 거센 반대여론에 부딪쳤고, 당시 정부는 대운하사업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사업은 4대강사업으로 변질되어 추진되었고, 그 결과가 얼마나 끔찍한 재앙이 되고 있는가는 매년 여름 극성을 부리는 4대강의 녹조가 말해주고 있다.
 
정현복 시장이 후보시절 제시한 제1 공약은 어린이테마파크 조성이었다. 1,500억원의 사업비를 투자하겠다는 이 공약은 선거 당시부터 재원조달 방식 등을 둘러싸고 상당한 논란이 일었다. 그리고, 당선 후 광양시는 시장의 제1 공약인 테마파크 조성을 의욕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광양시의 제반 여건을 고려할 때 대규모 테마파크 조성에 대한 여러 우려들이 제기되고, 의회 일각의 문제제기에 따라 이 사업은 가족형 테마파크로 명칭을 바꾸어 추진되고 있지만 그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광양시의회는 올해 본예산 심사 당시 테마파크 조성과 관련된 부지매입비 등을 승인하면서도 테마파크 계획 수립을 위한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한 바 있다. 여전히 테마파크 조성의 타당성이나 실현 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정리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가족형 테마파크 조성과 이순신 해변관광테마거리 조성사업 등 정현복 시장의 핵심 공약들에 대해 지역내 시민사회단체들이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다. 정 시장이 내건 핵심공약들을 이행할 경우 오히려 지역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선거가 끝나면 당선자가 자신의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는지를 감시해야 할 시민단체들이 공약사업의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일상적인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시민사회의 이러한 문제제기는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인구 16만명이 안되는 지방 중소도시에서 1,5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재원을 투자해 테마파크를 건립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지난 해 광양시와 의회는 테마파크 조성과 관련, 선진지 견학이라는 명목으로 국내 테마파크들의 운영실태를 점검한 바 있다. 또 지난 해 진행된 공무원들의 해외연수 역시 테마파크 관련 시설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막연한 장밋빛 청사진만으로 지역의 미래를 결정해서는 안된다. 공약사업이라 하더라도, 해당사업이 지역의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인지, 부담이 될 것인지에 대한 평가가 우선돼야 한다. 때로는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으로 만드는 것이 더 현명한 방책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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