遼東穿榻-管寧(요동천탑-관녕)[2]

                                      매천 황현
백발된 요동 서리 동경으로 왔더니
광풍이 부는 사해 홀로서 깨끗하고
수선대 봄풀이 저리 천추 공경 부끄럽게.
遼霜頭白戴東京   四海狂塵一帽淸
요상두백대동경   사해광진일모청
受禪臺前春草綠   千秋流汗漢公卿
수선대전춘초록   천추류한한공경
 
요동 서리 백발된 채 광풍 사해 깨끗했네, 
봄풀 저리 푸른데도 천추 공경 부끄럽네
 
본 시제는 병오고(丙午稿: 병오년 원고-1906年) 제병화십절(題屛畵十絶: 병풍 그림에 제하다) 두 번째다. 
관녕(管寧)은 삼국 시대 위나라 주허 사람으로 자는 유안이다. 한말 황건적의 난 때 요동으로 피난을 갔는데 따르는 자가 매우 많았으며 관녕의 덕화에 백성이 감화되어 다투거나 송사하는 일이 없었다. 난이 평정되자 본군으로 돌아갔는데 조정에서 누차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항상 검은 모자를 썼단다. 시인 요동 서리에 백발이 된 채 동경으로 왔더니, 광풍이 부는 사해에서 홀로 깨끗했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천추토록 한나라 공경 부끄럽게 여겼다네(遼東穿榻-管寧2)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요동 서리에 백발이 된 채 동경으로 왔더니 / 광풍이 부는 사해에서 홀로 깨끗했었다네 // 수선대 앞에는 봄풀이 저리 푸른데도 / 천추토록 한나라 공경을 부끄럽게 여겼다네]라는 시상이다. 이어진 오른쪽 평설에서 시상의 범상함을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요동 서리 백발된 채 광풍 사해 깨끗했네, 봄풀 저리 푸른데도 천추 공경 부끄럽네’라는 화자의 상상력이다.
위 시제는 [요동에서 의자를 뚫다-관녕2]로 의역해 본다. 시어로 쓰인 ‘동경(東京)’은 한나라의 수도인 낙양을 말한다. 다음 시어는 ‘수선대(受禪臺)’로 중국 하남성에 있는 대로서, 위나라 왕 조비가 한나라 헌제로부터 황제의 자리를 물려받았던 곳이다. 앞에는 한나라의 공경과 장군 등 지도층이 황제를 받아들이라고 힘써 권한 사실을 기록한 비석이 있다. 이어진 다음 시어로 ‘한공경(漢公卿)’으로 일반적인 한나라 공경일 수도 있으나, 여기서는 특히 [화흠(華歆)]이란 사람을 가리킨다. 훗날 화흠이 조비를 섬겨 위나라의 고관이 되었다가 병을 핑계로 관녕에게 자신의 벼슬을 양보했으나, 관녕은 끝내 거절했던 고사가 전한다.
시인은 관녕의 의기에 찬 기개는 몰론 그의 인간성을 잘 알고 시적 상관자로 선택했을 것으로 보인다. 요동의 찬서리에 백발이 된 채 동경으로 왔더니만, 광풍이 부는 사해에서 홀로 깨끗했었다고 했다. 사람이 지탱할 수 없을 만큼 거센 바람 앞에 흔들림 없이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했었다는 시인의 기개에 참 행동을 엿볼 수 있겠다.
화자는 아무린 폭정은 하더라도 죽고 나서 나의 뜻을 펼 수가 없는 것이다. 수선대 앞에는 봄풀이 저리도 푸르기만 한데, 천추토록 한나라 공경을 부끄럽게 여겼었다는 의기를 보인다. 살기 위해선 한나라를 공경한 척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자와 어구】
遼霜: 요동의 서리. 頭白: 머리가 희다. 戴東京: 동경으로 오다. 四海: 사해. 狂塵: 광풍이 불다. 一帽淸: 한 폭이 깨끗하다. // 受禪臺前: 수선대 앞. 春草綠: 봄풀이 푸르다. 千秋: 천추. 流汗: 땀을 흘리다. 漢公卿: 한나라의 공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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