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독자기고
순천 왜교성 전투의 역사적 조명 - (完)
광양만뉴스  |  webmaster@gymnews.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02.21  09:31:5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고니시의 왜교성은 해상에서 퍼붓는 포와 화살만으로는 절대 함락시킬 수 없었다. 서로군의 지상공격이 필수적이지만 유정 제독은 그것을 회피하고 있었고, 고니시는 뇌물로 유정을 매수하려고 하였다. 10월 5일에 이덕형과 권율이 싸우기를 눈물로 호소했으나 유정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10월 5일 설상가상으로 중로군이 참전한 사천왜성에서 조명연합군이 대패했다는 소식이 유정에게 전해졌다.
중로군의 제독 동일원이 진주로 진격해 남강을 넘고 곤양까지 점령한후 시마즈 요시히로가 지키고 있는 사천왜성을 공격하다가 성문을 부수고 치려는 순간 모유격의 진중에서 화약에 불이나 황급히 불을 끄려는데 왜적이 문을 열고서 갑자기 나와 포를 쏘자, 중국군사가 급히 퇴각하다가 전사자가 7천여명이나 되었고 군량 2천여섬도 불태우지 못하고 빼앗겼으며, 많은 군량과 무기를 잃고 제독은 성주까지 후퇴한 것이였다. 
또한 동로군 마귀도 울산왜성 전투에서 지난 9월에 이미 패하고 있었다. 중로군과 동로군이 패전했다는 소식을 들은 유정은 전혀 싸울생각이 없었고 세월만 무사히 보내다 본국에 귀환할 꿈만 꾸고 유정은 주둔만으로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순천왜교성은 동,남,북쪽이 절벽으로 바다에 접한 지형으로 이루어진 위치에 있었고 공성을 위해서는 서쪽으로만 접근해야 했는데, 접근폭이 좁고 질퍽질퍽한 땅이었기 때문에 접근하기 어려웠다.
육군과 수군의 수륙합동작전이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왜교성이 천혜의 난공불락이었던 점도 있었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명나라 육군 제독의 참전 태도에 있었다. 그는 울산왜성 전투와 사천왜성 공격의 참패사실을 잘알고 있었기에 전투에 임하는 태도가 모호하였다.
왜교성 전투는 이순신으로서는 수군 대 수군의 넓은 바다에서 싸움이 아니고 육지의 철옹성같은 성에 주둔하고 있는 육군과의 싸움이었으므로 커다란 승전이 없는 지루한 싸움이 되고 우리측도 많은 피해를 본 전투였다.
사실 10월 중순부터 유정과 고니시는 강화협상을 진행했는데, 유정이 고니시 군대의 철군을 허락하는 대신 고니시는 왜교성을 넘겨준다는 것이 골자였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다.
또 다른 면은 명의 육군과 수군의 알력 또한 무시 못 할 이유였다.
유제독과 진린 도독이 사이가 좋지 않은 것도 당초부터 공을 서로 다투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왜교성 전투초기에 유제독이 수군을 장악하려는 시도도 있었고, 유제독의 진린에 대한 시기와 견제의도도 있었다.
또한 유정의 사천성 군사들과 진린의 절강성 군사들의 반목과 질시가 심했고, 상대편이 전공을 세우는 것을 원치 않았다.
결국 이순신은 도원수 권율로부터 “유정이 후퇴하여 달아나려고 한다”는 편지를 받고는 분노와 통탄을 금치 못하였다. 진린도 분개했다.
드디어 10월 7일 제독 유정의 차관이 와서 “도독부에서 육군은 잠시 순천으로 물러가서 다시 정비해서 전진하려고 한다” 했다.
유정은 왜교성을 공격할 장비를 다시 갖추어 공격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까지 유정의 행적을 보면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려웠다. 애초부터 싸울 의지가 없었던 유정은 10월 7일밤 철수해버렸다.
왜교성에서 순천에 이르기까지 서로군이 철수하면서 흘린 쌀이 길바닥에 낭자했다.
검단산성에 남은 식량도 아직 3천여섬이나 되었는데 모두 불태우라고 명령을 내렸으나 타지 않은 것은 왜적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이순신과 진린의 수군은 유정이 퇴각한 10월 7일에도 또그다음날인 8일에도 수군 단독으로 왜교성을 계속 공격했다. 그러나 더 이상 육군의 공격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 고니시군의 저항은 매우 격렬했다.
결국 이순신과 진린은 10월 9일 왜교성 앞바다에서 물러나 12일에는 고흥 나로도에 진을 쳤다.
동로군과 중로군의 공격 실패와 함께 서로군과 수로군의 공격도 실패로 끝났다.
서로군에 의한 총공격은 그화려함에 비해 결과는 보잘 것 없었다.
결국 남은 것은 또다시 대치국면, 즉 소강상태였다.
그 소강상태는 최후의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이 깨뜨릴 때까지 계속되었다.
보고를 받은 선조도 “호남일은 유제독에게 배신당한 것 같다”고 불쾌한 심정을 밝혔다.
필자는 이글을 쓰는 도중인 2018년 10월 2일에 왜교성과 부근에 있는 충무사를 답사했다. 왜교성은 2007년도에 보수하여 천수단과 두 개의 문지등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고 해자도 그대로 있는데, 중간부분이 주차장으로 메꾸어져 있어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순천왜교성은 북쪽에서 바라보니 꼭 호랑이가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감흥이 벅차올랐고 왜교성의 조감도도 사실적으로 잘그려져 있었다.
사진으로 찍고 참배하였는데 옆에 있는 이순신사당인 충무사도 사당과 주위가 잘 보존되어 있었고, 이순신장군의 초상화도 사실적으로 잘그려져 있었다.
왜교성 앞 바다가 메꾸어져 현대제철 냉연공장이 앞에 있고 멀리 장도와 송도가 보였다.
여수와 순천에 여행 오면 꼭 한번 탐방하라고 권하고 싶다. 천수기단의 규모가 대단히 컷다고 생각된다. 일본여행객들이 가끔 찾아온다고 한다. 우리국민들도 비참한 역사현장을 직접 보았으면 좋은 경험과 역사 공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끝)
광양만뉴스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기획특집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길
전남 광양시 사동로 2  |  대표전화 : 061-791-0911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전남 다 00181호  |  발행인 : 황망기  |  편집인 : 황망기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망기
Copyright © 2013 광양만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