西臺慟哭-謝翶(서대통곡-사고)[8]

                                      매천 황현
찬 바람 추운 강가 애닲게 지는 낙엽
저녁때 조각배는 자름대 정박하고
난세에 나는 건 고역 거친 하늘 오가네.
風急寒江落木哀   扁舟暮泊子陵臺
풍급한강락목애   편주모박자릉대
茫茫桑海生爲苦   地老天荒獨往來
망망상해생위고   지노천황독왕래
 
추운 강가 지는 낙엽 조각배가 정박하고, 
난세 삶이 고역이니 거친 하늘 홀로 가네
 
본 시제는 병오고(丙午稿: 병오년 원고-1906年) 제병화십절(題屛畵十絶: 병풍 그림에 제하다) 여덟 번째다. ‘사고(謝翶)’는 송나라 단종 때의 절사이자 시인이다. 그는 문천상이 원나라에 대항해 군사를 일으키자 향병 100여 명을 거느리고 합류하였으며, 문천상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는 서대에 올라 그의 신주를 마련한 뒤 통곡하면서 초혼(招魂)의 노래를 불렀다고 하며, 이어서 [서대통곡기(西臺慟哭記)]를 지었다고 한다. 시인이 바람 세찬 추운 강가에 지는 낙엽이 애달픈데, 저녁이라 조각배 자릉대에 정박하였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땅 늙고 하늘 거친데 홀로 오고 간다네(西臺慟哭-謝翶8)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바람 세찬 추운 강가에 지는 낙엽이 애달픈데 / 저녁이라 조각배 자릉대에 정박하였네 // 망망한 난세에는 사는 것이 이리 고역이니 / 땅 늙고 하늘 거친데 홀로 오고 간다네]라는 시상이다. 이어진 오른쪽 평설에서 시상의 범상함을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추운 강가 지는 낙엽 조각배가 정박하고, 난세 삶이 고역이니 거친 하늘 홀로 가네’라는 화자의 상상력이다.
위 시제는 [서대에서 통곡하다8-사고]로 의역해 본다. 시어로 쓰인 ‘자릉대(子陵臺)’는 누대의 이름으로 여러 사객들이 이 대에 올라 시가를 읊고 풍류를 즐겼던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사고가 세파와 어울려 살면서 가장 위안을 받았던 곳으로 알려진다. 다음 이어진 ‘지노천황(地老天荒: 땅은 늙고 거친데)’는 시간이 매우 오래 지났다는 뜻으로, 왕조가 바뀐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을 형용한 말로 적절한 비유법을 썼음을 알 수 있다. 桑海(상해)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다는 뜻으로, 세상이 몰라 볼 정도로 바뀐 것이나 세상의 모든 일이 엄청나게 변해버린 상황을 뜻한다.
시인의 시상을 가만히 살펴보면 난세에 고통스럽게 사는 것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바람 세찬 추위가 불어 닥쳐 강가에 지는 낙엽이 애달프기만 한데, 저녁이라서인지 조각배 자릉대에 정박하였다. 다음 구를 읽을 것도 없이 이미 ‘보국(輔國)’의 의미와 자결을 생각했을 것이란 섬뜩한 생각까지 든다.
그래서 화자는 매몰찬 시대의 어려움을 한 장의 종이 위에 접어 두는 묘미를 부린다. 세상이 이리 망망한 난세인데 사는 것이 이리도 고역을 느끼니, 땅이 늙고 하늘이 거친데 홀로 오고 간다고 했을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의 경우를 생각하면서 자국의 처지까지 생각해 본다.
 
【한자와 어구】
風急: 바람이 세차다. 寒江: 차가운 강. 落木哀: 낙엽이 애달프다. 扁舟: 조각배. 暮泊: 저물녘에 정박하다. 子陵臺: 자릉대. // 茫茫桑海: 망망한 난세. 生爲苦: 사는 것이 괴롭다. 地老: 땅이 늙다. 天荒: 하늘이 거칠다. 獨往來: 홀로 왕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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