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1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39년 만에 피고인 신분으로 광주 법정에 섰다. 작년 8월에는 알츠하이머, 올 1월엔 독감 증세를 이유로 2차례나 재판에 불출석하더니, 불출석사유에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법원이 구인장을 발부하자 마지못해 법정에 선 것이다.
검찰은 2018년 5월 전두환을 사자의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다. 2017년 4월 발간된 「전두환 회고록」에서 1980년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는 조비오 신부를 거짓말쟁이라고 한 것이 사자(死者)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것이다. 2008년 사망한 조비오 신부는 1988년 청문회와 자신의 저서, 1995년 검찰 조사 등을 통해 일관되게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밝혀왔다.
형법 제308조는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자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허위의 사실을 적시할 것을 요하므로, “헬기사격을 목격하였다는 조비오 신부의 말은 거짓말이다”는 회고록 내용이 사자의 명예훼손죄가 되려면 헬기사격이 실제 있었고, 전두환이 헬기사격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회고록에 위와 같은 표현을 썼다는 점이 증명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난 해 9월 광주에서 현장조사를 벌인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보고서에 “육군은 1980년 5월 21일과 27일 이틀에 걸쳐 공격헬기 500MD와 UH-1H를 이용해 광주시민을 향해 사격을 가했다”는 내용이 있고, 최근 KBS에서 정선덕씨가 헬기로부터 직접 위협사격을 받았다고 증언하였다고 보도한 점 등을 종합해보면 당시 헬기사격이 있었던 것은 객관적 사실로 보인다.
그리고 헬기를 이용해 시민들에게 사격을 가한 중대한 사항이 육군 보안사령관으로서 광주진압의 총 책임자였던 전두환에게 보고되지 않았을 리 없으므로, 전두환이 헬기사격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개연성이 매우 크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전두환은 범죄를 전면 부인하며 광주 시민사회의 간절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은 채 뻔뻔하게 얼굴을 들고 돌아갔고 말았다.
오히려 전두환은 이번 재판이 광주에서 열리는 것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여 왔다. 공소제기가 토지관할을 위반했으며 범죄의 성질, 지방의 민심, 소송의 상황, 기타 사정으로 재판의 공평을 유지하기 어려운 염려가 있으니, 광주에서 재판을 해서는 안 되고 자신이 살고 있는 서울로 이송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광주 법원에 관할권이 없다는 것은 법률적으로 말이 되지 아니하거니와 광주의 민심 운운하며 재판의 공정성을 거론하는 것은 이 재판이 정치적 보복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몰고 가려는 의도라고 보아야 한다.
이 밖에 전두환 전 대통령 재임시절 공보비서관 민정기는 “회고록에서 조비오 신부를 거짓말쟁이로 표현한 부분은 사실 내가 썼다”고 느닷없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는 “조비오 신부, 피터슨 목사 등 일반 사람도 아닌 성직자들이 자꾸 ‘광주에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거짓말 하길래 그런 표현을 쓴 것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책이 전두환 회고록인 점, 민정기가 일부 내용을 정리하였다 하더라도 주요 내용은 전두환이 직접 쓰거나 구술하고, 민정기는 전두환 입장을 정리하면서 전두환의 기본 의도나 주장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오탈자 교정이나 부수적으로 문구 수정 정도의 역할, 즉 심부름꾼[使者]의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점에서 이 주장은 이유 없다. 형사재판을 지연시키고 전두환에 대한 법적책임을 벗기 위한 노림수에 다름 아니다.
그간 5.18을 비하하는 주장들이 있어 왔지만, 그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쉽지 않았다.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거나 광주시민과 전라도를 비하해도, 특정인이 아니라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 명예훼손죄 성립이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특정이 가능한 헬기사격 부분만을 떼어 내 고소를 함으로써 공소제기가 가능했던 것이다. 조비오 신부의 조카인 고소인 조영대 신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애를 쓴 결과다.
이번 재판을 통해 군인들이 정권을 잡을 목적으로 국민을 공격하면서 심지어 헬기까지 동원해 시민들에게 사격을 하였는지 여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내려지게 된다. 역사적 재판이라 할 수 있다. 눈 똑똑히 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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