簡易-讀國朝諸家詩[간이-독국조제가시](9)

                                      매천 황현
깊지도 장하지 않고 스스로 높이면서
백발에 의기 양양 명성을 탐하였네
안목도 없는 가아가 일시에 추켜세워.
非雄非奧自崢嶸   白首沾沾喜噉名
비웅비오자쟁영   백수첨첨희담명
寧遠家兒無眼力   一時推轂使人驚
녕원가아무안력   일시추곡사인경
 
장하고 깊지 않으면서 백발에 명성 탐해, 
영원 안목 없으면서 그를 추겨 놀랐었네
 
 
시제(詩題)로 선택한 시적상관자인 간이(簡易)는 최립(崔岦, 1539~1612)의 호다. 자는 입지(立之)이고, 다른 호는 동고(東皐)다. 1555년 17세에 진사가 되고, 1561년 식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탁월한 문장 실력으로 외교 문서 작성에 관여하였으며, 세 차례에 걸쳐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역학에도 밝아 [주역본의구결부설]을 지었다. 그의 산문과 차천로의 시, 한호의 글씨는 개성인 송도삼절로 널리 불렸다. 시인 장하지도 깊지도 않으면서 스스로 높이면서, 백발에도 의기양양하고 명성을 탐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일시에 그를 추켜세워 사람을 놀라게 했네(簡易 崔岦[9]:1539~1612)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장하지도 깊지도 않으면서 스스로 높이면서 / 백발에도 의기양양하고 명성을 탐하였네 // 영원의 가아는 안목도 없으면서 / 일시에 그를 추켜세워 사람을 놀라게 했네]라는 시상이다. 이어진 오른쪽 평설에서 시상의 범상함을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장하고 깊지 않으면서 백발에 명성 탐해, 영원 안목 없으면서 그를 추겨 놀랐었네’라는 화자의 상상력이다.
위 시제는 [간이 최립의 시를 읽고]로 의역해 본다. 시어 ‘영원(寧遠)의 가아(家兒)’는 임진왜란 때 원병을 이끌고 파견되었던 명나라 장수 이여송을 가리키는데, 그의 아버지가 ‘영원후’에 봉해졌음을 가리킨다. 이렇게 보면 이여송이 簡易의 시를 매우 극찬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조의 ‘일득록 문학조’에 간이의 시에 ‘하주에서 위세를 떨치매 요동 땅이 절로 안정되었고, 평양에서 승전하니 한성의 왜적이 사라졌네(威起夏州遼自重  捷飛平壤漢仍空)’ 했었는데, 같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감탄하였다한 것을 근거로 삼아야 될 것 같다.
시인은 정조가 대신들 앞에서 간이의 시를 칭찬했다면 조선말의 한시를 대표하는 대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장하지도 깊지도 않으면서 스스로를 더 높이면서도 나이가 든 백발에도 되레 의기가 양양하고 그 명성을 탐했다고 했다는 선경이 시상은 도톰해 진다. 나이가 들어도 돈과 명예를 탐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간이를 생각하게 한다.
화자는 이러한 시적인 배경을 삼아 시적상관자인 간이의 입지적 인물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 영원의 가아는 구체적인 안목도 없으면서도 일시에 그를 추켜세워 사람을 놀라게 했다는 깜짝 쇼 같은 후정의 시상을 담아내고 있다. 표현의 아름다움도 있겠지만,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묘미도 있다.
 
【한자와 어구】
非雄非奧: 장하지도 않고 깊지도 않다. 自崢嶸: 자신을 높이다. 白首: 백발. 沾沾: 의기양양하다. 喜噉名: 명성을 탐하다. // 寧遠: 영원(이여송) 家兒: 그 아이. 無眼力: 안목이 없다.  一時: 일시에. 推轂: 추켜세우다. 使人驚: 사람들을 놀라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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