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北風寒雪(북풍한설)
                                     叙光 張喜久

북풍이 엄습하며 기러기 떼 자주 날고
근역의 산하에는 은세계로 꾸몄구나
시낭이 너무 좁아서 재주 펴기 어렵구나.
北風寒雪最嚴辰   向渚高飛雁陣頻
            북풍한설최엄신   향저고비안진빈
            槿域山下銀世界   奚囊狹窄叵才伸
            근역산하은세계   해낭협착파재신
 
북풍한설 엄습할 때 기러기 떼 높이 날고, 
근역 산하 은세계로 시주머니 재주 못펴
 
동지가 지나고 나면 매서운 추위가 엄습해 온다. 매서운 추위는 반드시 북풍을 동반하면 몰아치기 일 쑤다. 온갖 생물이 추위가 싫다고 긴 동면에 들어가지만 두 날개를 펄쩍 들고 훨훨 날아든 손님들이 있다. 북에서 온 귀한 손님들인 기러기다. 찬 얼음을 깨고 목욕이라도 할 양으로 자맥질 하는 모습은 겨울의 진풍경이다. 추위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네들은 그것이 마냥 좋기만 하단다. 시인은 북풍한설이 가장 심하게 엄습하는 때에, 물가를 향해 높이 날으는 기러기 떼가 잦는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시주머니 너무 좁아서 차마 재주 펴기 어렵구나(北風寒雪)로 제목을 붙인 칠언절구다. 작자는 서광 장희구(張喜久:1945∼ )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북풍 한설이 가장 심하게 엄습하는 때에 / 물가를 향해 높이 날으는 기러기 떼가 잦구나 / 근역의 산하에는 온통 은세계로 물들이고 있는데 / 시주머니가 좁아서 차마 재주 펴기가 어렵구나]라는 시상이다. 평설과 감상은 다르다. 시인의 품속에 들어가서 시상을 살펴본다. ‘북풍한설 엄습할 때 기러기 떼 높이 날고, 근역 산하 은세계로 시주머니 재주 못펴’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차가운 북풍한설을 맞이하며]로 의역된다. 선현들의 시상 주머니를 가만히 열어 보았더니 선경후정先景後情이란 열정적인 이치가 있었다. 먼저는 경치를 읊고, 다음은 정적인 자기 심회를 쏟아 붓는 방식이다. 이런 시심에 덕지덕지 비유법을 붙인다면 좋은 시상이고 훌륭한 작품이라고 했다. 시상은 전면적인 흐름은 북풍이 불고 차가운 눈이 심하게 몰아치는 계절이었음을 보인다.
시인은 이를 감안하여 어깨를 움츠리면서 손을 긴 호주머니에 담으면서 시상을 일으켰다. 북풍한설이 심하게 엄습한 계절을 맞이하여 물가를 향해 높이 나는 기러기 떼가 잦다는 선경先景의 시상이다. 소리치는 시상이 있는가하면 말없이 가만히 두는 시상도 있어 시인의 깊은 시낭을 활짝 펼쳐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북풍한설과 기러기 떼라는 조화를 은근슬쩍 놓고 가는 시인의 뒷모습을 보게 된다.
화자는 이제 주머니를 훌훌 털고 심회에 찬 후정後情을 엮어야 할 차례에 많은 정감에 다 피력하지 못한 변명어린 한 마디를 쏟고 만다. 근역의 산하에는 온통 은세계로 깊숙하게 물이 들었는데 차마 시주머니가 좁아 재주 펴기가 어렵다고 했다. 좁은 시주머니라면 많은 시작의 연습과정이 있어야 가능하겠다는 경험을 소박하게 털어내는 시인들도 있음을 주목할 일이다.
【한자와 어구】
北風: 북쪽에서 부는 바람. 寒雪: 차가운 눈. 最嚴辰: 가장 심하게 엄습한 때에. 向渚: 물가를 향해. 高飛: 높이 날다. 雁陣頻: 기러기 떼가 잦다. // 槿域: 근역. 우리나라. 山下: 산하. 銀世界: 은세계. 奚: 어찌. 囊: 시주머니. 狹窄: 협착. 좁다. 叵: 어렵다. 才伸: 재주를 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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