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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과 민족을 사랑한 이순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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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22  09:4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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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1545년(인종 1년) 3월8일에 서울 건천동 (현 인현동1가)에서 덕수 이씨 가문의 12대손으로 아버지 정과 어머니 초계 변씨 사이의 4남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아기가 태어나기 전 시아버지에게서 “아기가 나면 반드시 귀하게 될 것이니 이름을 순신이라 부르라”는 현몽을 얻었다.
이순신은 자기 이름 속의 순임금을 삶의 지표로 삼아 자신도 그와 같은 인격자가 되고자 노력하였다.
이순신의 조상의 5대조인 이변은 세종 때부터 여섯 임금을 모시면서 형조, 공조판서와 예문관대제학을 역임하고, 사망하기 1년 전에는 최고위 관리직인 보국숭록대부 영중추부사(정1품)에 오른 분이고, 증조할아버지 이기는 세자를 가르치는 강관, 사간원 정언, 사헌부 장령 등을 역임하면서 원리원칙을 준수하는 선비의 표상이었으며, “호랑이 장령”으로 조정에 위명이 자자했었다. 다만, 조부 백록과 부친 이정은 벼슬에 나가지 못했지만 조상 대대로 자기 가문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인격자로서 성실과 정직, 공명정대를 숭상하며 살아왔다.
임진왜란 당시 명재상인 류성룡이 이웃동네인 묵정동에 살아 어린시절에 교분을 나누었는데 이때 각인된 이순신의 품행과 사람됨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져 이순신의 일생동안 좋은 후원자가 되어주었다.
이순신이 살던 이웃 동네인 신당동에 훈련원이 있어, 유년 시절에 군사 무관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고 이순신도 동무들과 군사놀이를 좋아했다.
이순신의 집안은 경제적 어려움이 있어 소년 시절에 외가가 있는 충청도 아산 고을 백암리로 이사하게 되어 아산이 고향처럼 되게 되었다.
이순신은 서당에 다닐 나이가 되자 회신, 요신 두 형과 함께 유학을 공부하고 인격자로서 인문적 소양과 지식, 교양을 쌓아 나갔다.
이때 이순신은 청렴 강직한 가풍의 영향을 받고 엄격한 부모님의 교육하에 스스로 치열한 정신수양과 단련, 인격완성에 매진하여 정돈된 인격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순신은 21세 되던 해 8월에 아산 인근 지역에 살던 보성군수를 지낸 방진의 외동딸과 결혼하게 되는데, 방진은 가세도 넉넉했고 명궁으로서 병학에도 일가견이 있어, 이순신의 무예 수련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장인의 영향인지 이순신은 결혼 직후인 22세에 자신의 인생진로를 심사숙고한 끝에 그전에 공부하던 문과 과거시험을 접고, 무과로 전향하였다.
이순신은 처가살이도 하면서 가난을 딛고 10년간 긴 세월 동안 무예 수련과 무학 공부에 전념하게 되는데, 이는 이순신이 가정사를 잊고 오직 병학과 무예 수련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도운 부인의 지혜로움과 내조 덕분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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