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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과 민족을 사랑한 이순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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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05  09: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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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거북선을 이용한 새로운 해전 전술을 개발하여 가장 먼저 거북선이 진격하여 적의 지휘선을 향해 30m 앞까지 돌격하여 선수에 있는 용의 입구에서 현자총통을 발사하고 지휘부를 궤멸시킨 다음 현측에 설치된 총통을 활용해 지휘선을 격파한다.
그다음 주력함선인 판옥선이 전진하여 일본함대를 각개격파 하는데, 먼저 화포를 쏘아 함선의 갑판과 상부 구조물을 격파하고, 은신처를 잃은 병사들에게는 조선 병사들의 장기인 활을 사용한다. 그리고 갑판 위가 조용해지면 화약과 짚을 버무려 불을 붙인 물체를 투척하여 태워버린다. 이런 해전 전술은 임난해전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준비 없는 승전은 없다.”는 것을 몸소 실천한 이순신이었다.
한편 임진왜란 때 경상좌수군 절도사인 박홍은 부산 수영구에 있던 본영을 버리고 자신이 지휘하던 대소군선 103척을 바다에 가라앉힌 뒤 근왕을 핑계로 도망쳤다. 또한 경상우수군 절도사인 원균은 한산도를 바라보고 있는 거제 동부면 오아포를 본영에 두고 있었는데 적형세가 거창하고 부산진 성이 참혹하게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수영을 불태우고 1만여명의 수군을 해산시키고 전선 60여척과 화포, 군기 등을 모조리 수장시키고 부하 율포만호 이영남, 옥포만호 이운룡 등 과 배4척에 나누어타고 우수영에서 200여리나 떨어진 곤양으로 달아났다가 다시 사천으로 도망가 적을 피하려고만 했다.
여기에서 제일먼저 바다에서 왜전함선을 격파해야할 경상수군들이 도망가기 바빳고 전선을 이끌고 전략상 후퇴를 해도 될 것을 굳이 수장을 시켜서 수군전략을 말살시킨 것과 이순신의 준비된 행동과는 너무나 차이가 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순신은 명량대첩후 고하도에 108일 동안 주둔하면서 부하들을 모우고, 판옥선을 건조하여 화포를 만들고 군량미 확보에 전력을 다하였다.
이순신은 소금을 구워팔고, 군량미확보를 위해 고심 끝에 해로통행첩을 발행하였는데, 이로 인해 단 열흘만에 군량에 1만석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고하도에서 전선은 42척으로 늘어났고 군사들은 8천명으로 불어났다.
또한 이순신은 고금도에 주둔하면서도 수군 재건사업에 박차를 가해 전선수를 85척으로, 군사의 수를 1만여명으로 확장하여 한산도 본영시절을 능가하는 수완를 보여 항상 유비무환으로 전력증강에 온힘을 다했다.
이순신은 한산도에 전라좌수군의 임시본영을 삼은 것은 해상전투가 주로 경상도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견내량이라는 남해안의 수로를 지켜 왜군이 남해안의 해상권을 확보하여 서해로 진출하려는 것을 저지시키기 위함이었고, 이어 명량의 울돌목을 지켜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것, 고하도, 고금도에 다시 3도 수군 본영을 설치한 것 등은 남해안 수로의 길목을 지켜 서해로의 군사나 무기, 식량등의 병참을 서해로 진출시키지 못하게 함이였다.
(다음 호에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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