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夏(초하)
                                    叙光 張喜久

    초여름 닥쳐오니 따뜻함 묻어나고
    반가운 비가 내려 신록 몸피 선연해라
    협소한 시주머니 적어 붓 거두니 어렵네.
    日暄初夏已當頭   喜雨霏霏漲水流
    일훤초하이당두   희우비비창수류
    新綠鮮然如碧海   詩囊狹窄筆難收
    신록선연여벽해   시낭협착필난수

초여름이 닥쳤는데 바가 내려 물이 불고, 
신록 선연 바다 같고 시주머니 협소하네

초하는 여름에 막 접어든 시기다. 느긋한 봄이 지나고 기지개를 켜면서 나른한 여름을 맞이하는 계절이다. 바쁜 농사일이 끝나고 조금이나마 허리를 펴면서 쉴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시창 한 수를 부여잡고 노래하는 한량도 있었다 하니 초하의 즐거움은 더했으리. ‘집을 나온 연자가 말하는 것이 더듬고 / 벗을 부른 꾀꼬리가 말솜씨를 자랑한다’고 했었단다. 시인은 날이 따뜻하니 초여름 이미 가까이 닥쳤는데, 반가운 비 주룩주룩 내려 불어난 물 흐른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시주머니 이만큼 협소하니 붓 거두기 어렵구나(初夏)로 제목을 붙인 칠언절구다. 작자는 서광 장희구(張喜久:1945∼ )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날이 따뜻하니 초여름이 이미 가까이 닥쳤는데 / 반가운 비가 주룩주룩 내려 불어난 물이 흐르네 // 신록은 선연하여 푸른 바다와 같기만 한데 / 시주머니가 이만큼 협소하니 붓 거두기 어렵구나]라는 시상이다. 평설과 감상은 다르다. 시인의 품속에 들어가서 시상을 살펴본다. ‘초여름이 닥쳤는데 바가 내려 물이 불고, 신록 선연 바다 같고 시주머니 협소하네’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초여름을 맞이하면서]로 의역된다. 농촌에서는 그래도 여름이 되면 한가해진다. 논둑에 쏘옥 나오는 잡초도 베야하고 논과 밭에 김도 매야하는 처지이지만, 그 나름으로 다소의 한가한 시간을 갖기도 한다. 정자에 앉아 있는 한량한 사람은 장구를 갖다 놓고 이를 힘껏 두드리는가 하면 다음과 같은 가사에 맞추어 시창 한 곡조를 뽑는다. ‘눈에 가득찬 경치가 좋지 않은 것이 없는데 / 좋은 놀이 다하지 못한 중에 석양이 비낀다’는 가사에 맞추러 멋진 가락을 뽑아낸다.
시인은 이렇게 좋은 초하의 어느 날 시적인 착상으로 중얼거리더니만, 구수한 타령조 한 마당을 장구와 함께 자기 심회를 길게 읊어보려고 했다. 날씨가 따뜻하니 초여름 이미 가까이 닥쳤는데, 반가운 비가 주룩주룩 내려 불어난 물이 흐른다고 했다. 여름이 되면 어김없이 비가 내려야 농사에 지장이 없기 때문에 초여름의 날씨와 농사는 밀접한 관련이 있었음을 알게 한다.
화자는 이제 초여름의 신록에 취하여 시원한 그늘을 찾아 자연을 음영하는 순간이 그렇게도 좋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신록은 선연하여 푸른 바다와 같기만 한데, 시주머니가 이만큼 협소하니 차마 붓 거두기 어렵다고 했다. 시인은 시간만 나면 시를 써야 한다는 소명과 같은 의식이 있음을 시주머니에서 털어낸다.
【한자와 어구】
日暄: 날씨가 따뜻하다. 初夏: 초여름. 已當頭: 이미 가까이 닥치다. 喜雨: 반가운 비. 霏霏: 주룩주룩 비가 내리다. 漲水流: 물이 불어나 흐르다. // 新綠: 신록. 鮮然: 선연하다. 如碧海: 푸른 바다와 같다.   詩囊: 시주머니. 狹窄: 현소하다. 筆難收: 붓을 거두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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