牧丹(목단)
                                    叙光 張喜久

    모란이 피기까지 추운 한 철 시름 묻고
    울타리 꽃 잔치에 온 동네가 시끌벅쩍
    부귀를 상징했었다지, 충만함을 벽에 걸고.
    牧丹優雅長籬東   滿發恒常孟夏中
    목단우아장리동   만발항상맹하중
    富貴象徵憐自古   家家掛壁感情充
    부귀상징련자고   가가괘벽감정충

 

동쪽 울에 피는 매화 만발하게 피었구나, 
부귀 상징 여기었고 감정 충만 했었구나

 

1934년 4월 [문학(文學)]를 통해 발표된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떠올린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라는 전반부다. 이 작품은 ‘찬란함’과 ‘슬픔’을 결합시킨다는 점에서 이색적이다. ‘모란’은 단지 객관적 대상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마음과 합일된 대상이다. 시인은 모란이 우아하게 동쪽 울타리 길게 피어서, 이른 여름 가운데 항상 만발하게 피어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옛부터 부귀를 상징하여 어여쁘게 여기었고(牧丹)로 제목을 붙인 칠언절구다. 작자는 서광 장희구(張喜久:1945∼ )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모란이 우아하게 동쪽 울타리에 길게 피어있고 / 이른 여름 가운데에 항상 만발하게 피어있구나 // 옛부터 부귀를 상징하여 그대를 어여쁘게 여기었고 / 집집마다 벽에 걸어두고 감정이 충만했네]라는 시상이다. 서문격 여덟 줄 초입문장은 이 글의 요점이자 가이던스가 된다. ‘동쪽 울에 피는 매화 만발하게 피었구나, 부귀 상징 여기었고 감정 충만 했었구나’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모란을 보면서]로 의역된다. 김영랑 시인은 마지막 행에서 어려운 상황도 참고 기다리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이라고 끝을 맺는다. 기다림이 무산되어버리는 순간 다가오는 절망감을 시인은 ‘설움’의 감정 속에 농축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행에서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리겠다는 화자의 의지는 절망을 절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시인은 영랑 김윤식의 모란 작품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시상을 일으킨 것이 아니냐는 생각에 빠지게 한 시상의 멋을 본다. 그래서 모란이 우아하게 동쪽 울타리 길게 피어있는데, 이른 여름 가운데에 항상 만발하게 피어있다고 했다. 여름이면 모란꽃의 송이 송이가 덕지덕지 붙어서 피어있는 모양은 군락을 이룬다기보다는 차라리 모란 특유의 부끄러움을 감싸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시인의 입을 빌은 화자는 모란에 대한 예찬 한 마디로 우러나오는 후정의 시심을 다독이고 싶었을 것 같다. 그래서 예로부터 모란을 부귀를 상징하면서 어여쁘게 여기었고, 집집마다 벽에 걸어두고 감정만을 충만하게 했었다고 했다. 그녀는 분명 부궈한 집 귀동녀라는 착각을 넓적한 보자기에 덥썩 싸 안은 꼴을 연상하게 된다. 

【한자와 어구】
牧丹: 모란. 優雅: 우아하다. 長籬東: 동쪽 긴 울타리. 滿發: 만발하다. 恒常: 항상. 孟夏中: 한 여름에. // 富貴: 부귀. 象徵: 상징. 憐自古: 옛으로부터 (모란을) 아꼈다. 家家: 집집마다. 掛壁: 벽에다 걸어 두다. 感情充: 감정을 충분하게 했다. 감정이 충만했다.

저작권자 © 광양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